‘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 책을 많이 읽고 교양을 쌓으면 몸에서 책의 기운이 풍기고 문자의 향기가 난다는 뜻이다.
옛 선비들은 풍부한 학식과 인격이 뒷받침되면 서권기 문자향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추사 김정희는 “나는 칠십 평생에 벼루 열 개를 밑창 냈고 붓 일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무엇보다 추사는 형식(기술)보다 내용(정신)을 더 강조했다. 그의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 이론은 이를 상징한다.
류영근(70) 서예가는 40년 동안 추사의 가르침을 토대로 서예의 가치를 묵묵히 지켜온 인물이다. 오늘날 서예가 특정 계층의 사유물로 존재하며 문화로서 뿌리내리지 못했으나, 문자 예술로의 가치를 눈여겨 본 그에게 서예는 삶의 중심이자 세상 전부가 됐다.
전통 서예와 현대 서예의 경계를 넘나들며 서예의 영역을 확장하고, 대중들에게 문자 예술의 가치를 알려온 그가 한글 서예 초대 전시회 ‘이은 류영근展’을 열고 있다. 23일까지 전주 문화공판장 작당.
한국과 중국에서 13차례 개인전을 열고 대중들과 만나온 서예가는 지역 문인 15인이 쓴 명승지 찬시를 문자의 조형성으로 해석해 내놓았다. 특히 옛것과 전통 가치에 천착해 온 그의 서력(書歷)과는 달리 이번 전시에서는 현대적인 감각들이 돋보여 보다 새롭다. 서예 작품으로는 드물게 가로 1.5미터 세로 6미터짜리 대작도 2점이나 걸려 문자 예술의 강렬함에 압도된다.
전통의 영역을 견고하게 지키고, 창조의 영역에서 더 치열해진 그를 지난 10일 전시장에서 만났다. 지난 2023년부터 기획해 준비한 한글서예 초대전은 관람객에게 선보이기까지 꼬박 2년이 걸렸을 정도로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그럼에도 끝까지 해낼 수 있었던 이유는 서예의 힘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좋은 작품으로 꾸준히 서예 전시를 이어가겠다는 류영근 서예가는 한 가지 당부하고 싶다고 했다. 전통이 사라지는 오늘날, 서예가 특정계층의 사유물이 아닌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관심을 가지고, 계승해줄 것을 요청했다.
“서예는 20년 이상의 세월이 흘러야 비로소 어떠한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끈기로 일궈낸 예술로서 가치를 잘 들여다봐 줬으면 좋겠어요”
그에게 ‘서예’는 단순히 문자가 아니다. 먹(墨)을 벼루에 갈면서 인격을 수양했고, 자신만의 필치를 완성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이 뒤따랐다. 이를 통해 세상의 이치를 배웠다는 작가에게 서예는 어쩌면 인생의 총체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좋아하는 것. 서예는 그의 삶이자 직업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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