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성과 위주 예산홍보 여전 ‘역대 최대, 최초’ 수식어 되풀이 국회의원‧단체장, 자화자찬 일색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시상식의 계절이다. 정치와 경제·문화체육계, 그리고 시민사회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각종 ‘상(賞)’이 쏟아진다. 함께 축하할 일이지만 부정적 시각도 있다. 시상식이 ‘빛나는 사람’을 찾아내 그 업적을 칭송하는 자리가 아니라, ‘빛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애써 조명을 비춰주는 자리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게다가 정치인과 지자체장들은 연말이면 스스로 수상자가 돼 업적을 자랑하기 바쁘다.
해마다 빠지지 않는 그들의 셀프 시상, 자랑거리가 바로 국가예산이다. 12월 국가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국회의원과 단체장들은 곧바로 그 성과를 화려하게 포장해서 내놓는다. 지역발전 사업의 성패가 예산 확보에 달려 있다 보니 단체장과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역할이 요구되고, 실제 이들의 치열한 노력이 있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렇게 지금 치열한 전투가 끝나고 전리품을 자랑하는 시간이 됐다. 사실 전투라기보다 ‘구걸’, 전리품이라기보다는 ‘동냥’에 가깝다. 이는 중앙정부 국가예산 배분구조의 문제점에서 비롯된다. 현재의 중앙집권적 예산구조에서 지역은 ‘심사 대상’일 뿐이다. 게다가 예산 편성, 심의 과정에서 지역예산은 사업의 타당성과 필요성이 아니라 지역정치권의 영향력, 중앙부처와의 관계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니 단체장들은 지역발전 구상과 전략보다 ‘누구를 만나 무엇을 어떻게 부탁할 것인가’에 더 치중한다. 전국의 광역·기초단체장들이 모두 똑같은 행보를 하니 장·차관은 만나기도 어렵고, 중앙부처 실무 과장 앞에서도 ‘을(乙)’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단체장과 국회의원들은 보도자료와 SNS, 현수막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 ‘전략적으로 대응했다, 내 역할이 컸다’는 식의 생색내기에 치중한다. 그러면서 ‘역대 최대’, ‘사상 최초’, ‘국가예산 ○○원 시대’ 등 온갖 수식어를 동원한다. 사실 국가예산은 전년에 비해 감소하는 일이 없다. 한 푼이라도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러니 ‘역대 최대’라는 표현은 의미가 없다. 그런데도 마치 현 국회의원과 단체장의 능력이 탁월해서 전대미문의 대단한 기록을 세웠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숫자에 의미를 부여한다. 올해도 그랬다. 2026년도 정부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한 다음날인 3일, 전북특별자치도는 ‘국가예산 사상 첫 10조원 시대를 열었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각 시‧군도 ‘역대 최대’라는 수식어를 갖다 붙이며 성과를 자랑했다.
물론 지자체는 주민들에게 새해 예산을 투명하고 상세하게 공개해야 한다. 주민 삶과 직결된 공적 자산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홍보가 ‘성과 중심’에 치우쳐 있고, 정작 주민이 알아야 할 예산의 실제 내용과 변화, 책임 구조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국가예산은 국가가 지역주민에게 당연히 제공해야 하는 기본적 공공서비스의 재원이다. 개인의 역량과 인맥으로 끌어온 전리품으로 포장돼서는 안 된다.
지자체가 중앙의 눈치를 보며 예산을 구걸하고, 정치적 영향력이 과도하게 작용하는 예산 배분의 구조적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으면 지방의 치욕적인 예산 쟁탈전은 매년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연말이면 그들은 예산 행보를 나열하고, 성과 자랑에 치중하면서 이 같은 구조적 문제점을 애써 덮어버린다. 그래서 불편하다. 빛나고 싶은 욕심에 스스로 조명을 끌어와 연말 셀프 시상식을 만들어내는 그들의 행태를 지켜보는 게 편치 않다. 본질을 외면한 채 눈앞의 실리만 챙기려는 그들의 생색내기를 이제는 그만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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