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광수 제17교구 금산사 신도회장 인터뷰 “열반에 드신 뒤에도 중생 위해 기도하고 계실 것”
“지금도 생전처럼 도량(불도를 닦는 곳)에 계신 것 같은 기분입니다.”
금산사에서 도영 큰스님의 49재 막재가 봉행 된 7일, 한광수(76·완주) 제17교구 금산사 신도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스님을 떠나보냈다는 실감보다 여전히 곁에 머무는 존재감이 먼저 느껴진다고 했다. 이날 금산사에는 사부대중(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니)이 함께 모여 스님의 마지막 재를 봉행하며 삶과 가르침을 되새겼다.
도영 큰스님은 법랍 65년으로, 60여 년을 수행자로 살아온 인물이다. 조계종 원로의원이자 금산사 조실, 대종사로 추대된 종단의 큰 어른이었지만, 스님의 삶은 늘 낮은 곳을 향해 있었다. 한 회장은 “스님을 떠올리면 인자한 모습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며 “열반에 드신 뒤에도 중생을 위해 기도하고 계실 것이라는 믿음이 자연스럽게 든다”고 전했다.
한 회장과 스님의 인연은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금산사 총무 시절부터 주지, 회주, 조실에 이르기까지 스님의 곁을 지켜본 그는 도영 큰스님을 ‘큰 스승이자 삶의 어른’으로 기억한다. 그는 “바쁘다며 찾아오지 말라고 하시면서도, 결국에는 먼저 전화를 주시곤 했다”며 “말씀보다 경청으로 사람을 대하셨다”고 회상했다.
신도회장은 도영 큰스님의 수행 철학을 ‘포교는 수행’이라는 말로 요약했다. 그는 “스님은 부처님의 법을 혼자 닦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많은 이들과 나누는 것을 수행자의 책무로 여겼다”며 “불국정토는 삶 속에서 만들어져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분명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도영 스님의 신념은 실천으로 이어졌다. 사찰이 어려웠던 시절 체면을 내려놓고 절 살림을 책임졌고, 포교원장 시절에는 템플스테이를 도입했다. 당시에는 비판도 적지 않았지만, 스님은 체험을 통한 포교의 가능성을 내다봤다. 한 회장은 “말이나 이론보다 직접 보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스님은 이미 알고 계셨다”고 말했다.
한 회장은 군포교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도영 스님의 업적이라고 했다. 실제 1970년대부터 시작된 군법당 지원과 장병 포교는 50년 넘게 이어졌다. 논산훈련소와 각 지역 부대를 찾아다니며 젊은 장병들에게 불법을 전했고, 이는 전북을 넘어 전국 군포교의 토대가 됐다.
불교세가 약했던 전북에서 스님은 포교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전북불교회관 건립과 청소년·대학생 포교 조직은 지역 불교 활성화의 전기가 됐다. 타 종단과 타 종교와의 관계에서도 스님은 늘 화합을 중시했다.
49재 막재를 마친 현재, 한 회장은 “큰스님을 기억하는 일은 결국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며 “자비로 사람 곁에 머물렀던 수행자의 삶을 남은 이들의 몫으로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한 원장은 전주영생고등학교와 호원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한 뒤 전북지역 JC특우회장과 전주대사습놀이 기능후원회 이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전주 남창당한약방 원장이다.
전현아 기자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