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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분노

임주아 물결서사 대표시인 내 십 대와 이십 대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알 수 없는 분노라 말하기엔 이미 많은 걸 알게 된 분노였고, 알아버린 분노라 말하기엔 시작조차 되지 못한 분노였다. 무엇이 나를 화나게 했나? 이 화를 어떻게 해야 하나? 마주 보고 견뎌야 하나, 모르는 척 돌려보내야 하나? 잘 모르지만 잘 다스려야 하나, 아니면 어느 날 잘 터뜨려야 하나? 생각에 생각은 허공에 잽을 날리는 것처럼 무모해 보였지만, 매일 힘쓰는 팔에 근육이 붙듯 생각을 거듭할수록 내 내면엔 끝없는 방문이 열렸다. 중학교 1학년,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 한밤중 부스스 일어나 어디에 홀린 듯 정신없이 써 내려가던 나는 알고 싶었다. 나를 둘러싼 기울어진 것들에 대해. 둘러싼 기울어진 것들이 가리키는 방향에 대해. 그 방향이 모여 이야기하는 정확한 말들에 대해. 알아야겠다는 마음이 몰라도 된다는 마음보다 클 때 그것을 향하는 화살촉은 더 뾰족해지고 길어졌다. 곧 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화살은 날았다. 극렬한 불화의 기억을 지나, 한부모 가정이란 딱지 너머, IMF로 타오른 경제적 추락을 향해. 뜻하지 않게 가장이 된 가족에 의지하며 곤궁에 갇힌 집에 구사일생은 없었다. 걸어도 걸어도 푹푹 빠지는 뻘판 뿐. 개인의 행동에서 부모 공동의 일로, 가족이란 공동체에서 다시 개인이란 개체로, 돌아왔지만 우리는 여전히 삶과 빚에 졌다. 함부로 대결할 수 있는 상대도 아니고, 비겨보려 덤벼들 계제도 아니었다. 꾸역꾸역 살아 천천히 밀어내고 다시 쌓을 수밖에는. 그 속에서 우리는 파라솔 아래 부는 시원한 바람과 살갗에 닿던 파도의 물결, 훈기 돌던 바닥과 온화한 손짓을 잊었다. 무엇보다 그것이 두려웠다. 가장 가깝고 친밀했던 공동체가 실패의 기억을 강렬하게 공유하는 집단이 되어 내면의 공포를 간직한다는 것. 나는 그것이 두려웠다. 불행했던 공동체의 기억을 강력한 공포로 새긴 내가 또다시 무엇 하나 나아지지 않은 꽉 찬 도시에 비슷한 공동체로 살아야 한다는 것. 제도로 묶여야만 막막한 개인의 삶을 구출할 것처럼 여겨지는 세상에 또다시 살아가야 한다는 것. 내가 나를 밀지 않으면 누가 나를 떠밀고, 떠밀린 내가 나에게서 점점 멀어질지도 모른다는 것. 그때마다 시집을 펼치며 솟은 마음을 가라앉혔던 건 분노한 열네 살의 내가 미리 지시한 방향이었을까. 내가 조금 더 자라, 시에 마음을 열게 된 이유는 누구나 평등하고 공정한 세상 속에 놓이지 않았다는 것을 일찍이 알아채게 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시 속의 화자들은 공동체의 화목을 강요하지도, 계급과 서열을 나누지도, 남녀를 쪼개지도, 다수와 소수를 구분하지도, 기쁨과 슬픔을 남발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내가 나답게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자유와 평등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것이 시가 내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윤리 같았다. 그것과 다르게, 이제 이미 갖고 태어난 사람들의 돈이나 말 많은 이들이 돌아가며 하는 똑같은 조언은 내 머릿속에서 긍정도 부정도 낳지 못한다. 나는 그것에 더 이상 슬퍼하지도 분노하지 않는 나와 마주한다. 언제부턴가 무력감조차 무력화시킨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드넓은 거리, 성공과 실패라는 단단한 잣대, 희망과 절망이라는 거대한 언어 속 아직 나는 이 세계에 한 번도 적중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래서 더 뾰족하고 길어질 날들, 가리키는 곳은 이 태풍 속 어디쯤일까. 감히 질문해도 될까? /임주아 물결서사 대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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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9.22 18:20

청년과 명절 증후군

박혜령 전주시사회혁신센터 팀장 태풍 링링이 지난 뒤 무더위가 끝나고 시원한 바람과 청명한 하늘이 상쾌함을 더해주었던 기나긴 추석 연휴가 끝이 났다. 그러나 몇 달에 한번 가족친척 얼굴을 보는 명절이 청년에게는 달갑지 않은 지 오래다. 2017년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명절 최대의 스트레스로 잔소리, 불편한 친척과의 만남등 정신적 부담이 1위를 차지했다. 가족, 친척들의 공부, 취업, 결혼 등 생애주기별 걱정거리들이 청년들에게는 비수로 날아온다. 이로 인해 친척들의 잔소리를 센스 있게 극복한다는 잔소리 대처법까지 등장하기 이르렀다. 또한 청년 구직자 10중 4.9명(2019년 1월, 인크루트)은 명절에 가족들과의 시간 대신 취업 준비를 할 것이라고 응답하며, 팍팍한 청년들의 삶이 명절날 가족과 친척들 간의 정까지 메마르게 만드는 모양새를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여겨져 왔던 생애주기의 흐름이 상당히 느려졌음에도 친척들의 조언에 상처받고, 공부 잘하고 취업 잘한 가족들과 비교하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도대체 청년들이 명절증후군을 겪는 이유가 무엇일까? 과연 가족, 친척들의 질문 공세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필자는 이제 막 사회적 출발점에서 서서 새로운 주체로 진입하려는 청년에게 취업과 결혼이 어려운 과제가 되어버린 지금의 현실에 있다고 판단한다. 청년이 독립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자연스레 늘어가며, 내 한몸 건사하기에도 벅찬 시기가 늘어남에도 부모세대의 기준에 차는 성과를 내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노동시장에서 양질의 일자리는 극소수에 불과하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는 점점 커지고 있는 환경 속에 사회적 안전망은 부실하고 천편일륜적인 교육 및 사회 시스템은 개인의 적성을 발굴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기본적 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청년의 삶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이 우선 되어야 하며 모든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인간다운 삶의 보장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 오늘을 놓치면서 사는 희망을 잃은 청년에게 우리 사회의 진정한 주인으로서 차별받지 않고 배제 당하지 않고 뜻하지 않는 어려움에도 최소한의 삶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청년 세대의 문제는 곧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따라서 청년 세대의 문제를 노동의 영역만이 아닌 교육, 주거, 복지 등 복합적 사회문제로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범정부적 대책이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지금도 많은 청년들이 휴일 뿐 아니라 명절 때에도 도서관이나 학원에서 열심히 사회에 나가기 위해 구명보트에 매달린 조난자처럼 필사적으로 견디고 있다. 청년의 명절 증후군은 오랜 시간 축적되어 온 우리 사회의 모순의 표출이다. 홀로 서야할 청년이 마음 놓고 가족의 품을 느낄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박혜령 전주시사회혁신센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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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9.15 16:17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킵니다

이동훈 코끼리 가는 길 대표 저는 서울에서 10여 년을 살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유턴 청년입니다. 제가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큰 회사를 그만두고 내려올 때 주변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습니다. 이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부모님은 뭐라셔?였죠. 저희 부모님은 알아서 하라고 하셨습니다. 살아생전에 늘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며 농담처럼 진담인 듯 말씀하시던 외할아버지의 영향인 듯합니다. 똑똑해서 고향을 떠난 자식보다, 곁에 남아 군불이라도 때 주는 자식이 낫다는 뜻으로 쓰셨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최근에 저는 완주군에서 특정 대학교(국내 상위 12개 대학)에 들어가면 1천만 원을 장학금으로 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찾아보니 완주군인재육성재단에서 특별장학금이라는 이름으로 시행하고 있는 장학제도였습니다. 제가 깜짝 놀랐던 건 그동안 완주군이 청년들을 유치하기 위해 수많은 정책을 내놓아 왔다는 사실 때문이었지요. 고향을 떠나는 청년에게 1000만 원을 현찰로 주는 한편, 완주 전입 대학생 유치를 위해 전입 1개월이 지나면 20만 원, 1년이 지나면 30만 원을 줍니다. 인구증가유공자라는 제도도 있어 최대 500만 원까지 지급하기도 합니다. 더 찾아보니 무주군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카이스트, 포항공대에 들어가면 400만 원을 주며, 귀농귀촌하는 청년들에게는 소득세를 50% 감면하고, 심지어 집들이 비용도 30만 원이나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부안군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치의한의대, 카이스트에 가면 100만 원을 받는데 지방 캠퍼스는 제외됩니다. 그리고 부안군의 장학제도 중 유일하게 반값등록금제도를 중복해서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다른 장학금을 받는 사람들은 위의 학교 및 학과에 재학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값등록금제도를 중복 지원받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남들보다 공부를 좀 더 잘했다는 이유 하나로 청년을 서울로 보내는 데 예산을 쓰고, 다른 한쪽에서는 타 지역의 청년을 유치하기 위해 예산을 쓰는 모습을 바라보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저는 이러한 지원을 모두 중단하라거나, 제도가 온통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서울?수도권으로 우리 지역을 떠나는 청년들보다 남아서 전북을 지키고 끌어나가는 청년들이 더 많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높은 확률로 지역에 돌아와 살지 않을 사람들 말고, 여기. 우리 곁에 남아 함께 살아가고 있는 지역의 청년들이야말로 더는 굽은 나무가 아닌, 우리 지역을 지켜낼 바른 나무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땀과 사랑이 모여 전달되는 혜택이 적어도 절반씩은 나뉘어 전달돼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올려보냈는데도 전북이 자꾸만 뒤로 밀려나고, 어느 순위든 아래쪽에 있다면 작전을 좀 바꿔볼 때도 되지 않았나요? 장학제도를 운용하시는 분들에게 제안합니다. 적어도 관청에서 운영하는 기관의 장학혜택을 보는 이들만이라도 각종 혜택이 내가 잘나서 얻어낸 전리품이 아닌, 감사한 마음으로 받는 지역사회의 선물이라 느낄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 방법은 혜택을 받는 동안 우리 지역에서의 봉사활동 00시간 이상이라든지, 해당 지역을 홍보하기 위한 기자단 활동 등으로 다양하게 고민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지역을 지키고 함께 살아가고 있는 우리 곁의 바른 소나무들에 대한 지역 어른들과 선배님들의 따뜻한 격려와 사랑을 부탁드립니다. /이동훈 코끼리 가는 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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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9.08 17:07

모든 아이들이 똑같이 즐기고 배울 수 있는 권리

박세진 디자인에보 대표 2019년 8월 한국 서울에서는 종합 메이커 스페이스를 표방하는 에듀테크기업 비비타(손태장 회장)의 비비스톱 서울이 개소하였다. 아이들이 스스로 무엇이든 만들고 실험하는 놀이공간을 표방한 비비스톱은 4차산업 특성의 교구재들을 활용하여 기존 공교육의 한계를 뛰어넘는 체험 위주의 특화형 교육을 경험케 한다. 다만 미래교육의 공공성 확보를 위한 예약제를 통한 전면 무료화라는 파격적인 운영 방침에도 불구하고 과연 모든 지역 아이들에게 공평한 혜택이 주어질 것인지는 다시 생각해 볼 문제이다. 특히, 전북 내 수많은 미취학 혹은 취학아동, 그 중 결손, 결식, 위기학생 등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까지 고려한다면 비비스톱은 섣불리 선택할 수 없는 그림의 떡일지도 모른다. 전북 지역 아이들에게도 언제든 문이 열린 메이커 스페이스는 없을까? 공공성으로 인하여 일부 운영 및 참여가 복잡한 공공 메이커 스페이스가 아닌, 치열한 경쟁 속에서 보다 양질의 교육 기회를 제공하기 위하여 계속 연구하는 민간(기업) 차원의 진짜 메이커 스페이스는 없을까? 2019년 7월 중소기업청 창업진흥원에서는 2019년 메이커 스페이스 구축운영사업 선정 결과를 발표하였다. 전북지역에서는 수백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주)셈스게임즈(전주), 용성고등학교(남원) 외 1개소(추가) 등 최종 3개소가 선정되었다. 3D프린팅 교육을 필두로 7년간의 노하우를 가진 (주)셈스게임즈는 필자 개인적으로도 SNS를 통하여 연락을 주고 받을만큼 관심있는 회사이자 콘텐츠였다. 전북에 없는 새로운 콘텐츠를 가진 메이커 스페이스를 만들자는 목표를 세우고, 지난 3년 여 간의 삼고초려 끝에 (주)셈스게임즈를 전북지역기업으로 유치하는데 성공하였다. 첫 공동 프로젝트로 진행된 메이커 스페이스 사업에서 2019년 전북 민간영역에서는 유일하게 플레이하우스(Playhouse)가 선정되는 기염을 토하였다. (주)셈스게임즈는 현재 법인의 지점화(전북)를 진행중이다. 플레이하우스는 어린이, 창업자, 예술가를 위한 창의적 공간를 표방한다. 색다른 타깃들 속에 숨겨진 공통 분모인 창의력(Creativity)을 발굴하고, 빠른 실행력과 지속적인 개선책을 제시하며, 3D프린팅, 모델링, 코딩 등 교육을 통한 아이디어의 실현을 그 목표로 한다. 4차 산업혁명의 대두와 미래 산업과 직업의 변화에 관한 아이들의 미래적응성을 키워주고, 독자적인 어린이 메이커 프로그램을 통하여 전북 내 모든 아이들이 수도권 수준의 양질의 교육을 경험케 하고자 한다. 또한 기존 단순 멘토링에서 벗어난 양방향성의 창업자간, 기관 및 창업자간 아이디어 퍼실리테이션을 제공하여 다양한 사업 아이템을 공유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자 한다. 또한 아이디어를 빠르게 실행하고, 초기 제품의 문제점을 미리 파악 및 개선해나가는 신속한 사업 프로세스를 지원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3D프린팅 예술작품을 지원하는 예술가(Artist)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지역 내 3D프린팅 아티스트, 건축가 등을 발굴 및 지원하여, 전북 기반의 글로벌 아티스트로의 성장을 도울 것이다. 본 프로그램은 2018년 현재에도 진행중이다. 2019년 플레이하우스(Playhouse)는 기존의 수익성 실패라는 현실 문제를 고민하고, 민간 영역에서의 수익성 실현과 공공성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박세진 디자인에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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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9.01 17:06

물속으로 가기

임주아 물결서사 대표시인 눈을 감으면 만져질 것처럼 감각되는 기억이 있다. 여름방학이 오면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물 좋은 계곡으로 갔다. 물가에서 마음껏 놀게 해주고 싶은 마음은 알았지만 나는 물이 싫었다. 물장구를 크게 쳐서 옷이 다 젖으면 쨍쨍한 날에도 오들오들 떨렸고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물살이 뒤를 덮칠 것 같아 무서웠다. 이런저런 이유로 계곡물이나 바닷물에 들어가는 것은 무방비상태라는 인상을 심어주었고 그 기억은 어린 시절 내내 알 수 없는 공포로 남아 있었다. 물가와 풍경을 보는 일은 좋지만 직접 물에 들어가 내 살갗이 접촉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실체였다. 시간이 지나 수영 강습도 받고 관광지에서 얼떨결에 스킨스쿠버도 하며 막연한 공포는 막연하기만 하다는 걸 알게 됐지만, 아직 물속은 친숙해지지 않는 공간이다. 그렇다고 피하고 모른 척 두면 영영 물과 가까워지지 못한다는 사실이 더 두렵다. 어쩌면 물을 알고 있다는 경험이 알지 못하는 공포를 끌어당길 수도 있다.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쉽게 가늠하지 않기 위해 물과 자주 닿고 싶다. 계속 헤매고 있다고? 내가 그쪽으로 갈게! 책방을 찾아오는 지인들과 통화하며 자주 하는 말이다. 주소를 찍어도 정확하게 잘 안내되지 않아 손님을 찾으러 밖으로 나가는 일이 많다. 그날도 어김없이 근처를 헤매는 여자 후배들을 발견하고 책방으로 함께 왔다. 이십 년 넘게 전주에 살았지만 한 번도 온 적 없는 동네라는 말이 따끔했다. 2월, 오후 다섯 시가 넘자 해는 뚝 떨어지고 있었다. 컴컴해진 창을 보며 마감하려던 찰나, 책방 앞에 낯선 손님이 찾아왔다. 족히 190cm가 넘어 보이는 장신의 외국인 남성 두 명이었다. 유리창을 기웃하며 보는 그들의 눈빛은 몹시 갈급해서 해맑아 보이기까지 했다. 드디어 책방에 온 첫 외국인 손님인가? 나는 그저 반가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들은 해사하게 웃으며 물었다. 얼마야? 한국말이었고 발음도 정확했다. 나는 그들의 의도를 망각하고 명랑하게 다시 물었다. 책이요? 그들은 책이나 서점이란 우리말도, 북이나 북스토어라는 영어도 알아듣지 못했다. 책을 들고 손짓을 보탰지만 상황은 더욱 이상해졌다. 저녁의 성매매 집결지, 활짝 열린 유리문의 책방, 마주 본 이방의 얼굴들, 서로 느꼈을 여기는 어딘가, 나는 누군가 영업 중인 성매매 집결지 한가운데 문 연 책방은 여러 사람의 머릿속을 물음표로 채우고 있었다. 모르고 시작한 것도 아니고 예측하지 못한 것도 아니나 중요한 것은 이날부터 선미촌을 향한 감각이 더욱 선명해졌다는 사실, 이때부터 내 안에 새로운 질문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용기도 아니고 깨달음도 아닌, 실체라는 말도 어쩌면 거추장스러운 자연스러움. 그들과 무사히 안녕한 후 책방 문을 닫고 선미촌을 걸어 나오며 후배들이 말했다. 찾아오기 쉽지 않아서 더 오고 싶은 공간이 될 거에요. 꿋꿋이 찾아와준 이들의 말 속에 질문이 있었다. /임주아 물결서사 대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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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8.25 18:10

청년기본법 제정의 필요성

박혜령 전주시사회혁신센터 운영지원팀 청년세대의 문제가 실업과 소득 정체, 부채 증가, 주거불안정 등 소득의 영역을 넘어 자산, 주거, 교육, 문화, 건강 등 다층적 영역에서 격차가 맞물려 회복이 불가능한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청년 세대의 문제는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음에도 대한민국의 법률 중 청년에 대한 법률은 딱 1개, 청년고용촉진특별법이 유일하다. 이 법에서 청년은 취업을 원하는 사람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나이에 해당하는 사람을 말한다. 청년 문제를 사회경제적 다방면의 문제로 확대인식하기 시작하면서 2015년 서울시부터 시작하여 올해 2월 인천을 끝으로 17개 광역자치단체에서 청년 기본조례가 완료되었지만, 이들 조례도 청년을 조금씩 다르게 정의하고 있다. 이처럼 청년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불평등과시민성연구소 박이대승 소장은 우리 사회에서 사용하는 상당수의 언어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개념 언어가 아닌 사용하는 주체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진 정치언어로 공통된 개념 언어가 부재 한다라고 진단했다. 즉, 청년이라는 언어를 공통적으로 사용하면서도 화자에 따라 다양한 정치적 목적으로 그 의미가 바뀌어 사용되기 때문에 명확한 정의를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청년이라는 범주를 임의적으로 설정하다보니 범위가 축소되기도 확대되기도 하며 오히려 당사자인 청년들의 혼란만 더욱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법령에서 청년을 취업을 원하는 사람으로 정의하다보니 청년과 관련된 사업은 노동시장의 진입에만 국한되어 있어 매년 수조원의 청년 일자리 예산이 투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청년 관련 컨트롤 타워의 부재로 청년의 다층화된 문제에 대한 대응은 전무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청년 세대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사회적 문제가 남아 있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더 이상 투입 대비 산출을 따지는 투자의 원리로 청년을 바라볼 수 는 없다. 시민의 권리를 국가가 적절한 수준으로 책임지는 보장의 원리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청년의 삶을 중심에 놓고 시민으로서 권리를 보장하며 전국적 수준에서 균형적이고 종합적인 청년 정책의 수립과 시행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 청년이 직면한 고용, 주거, 복지, 문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정책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상황 속에 균형적, 종합적 청년 정책의 수립과 시행을 위한 제도적 기반인 청년기본법 제정이 시급하다. 청년기본법은 청년의 권리를 법으로 보장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다층적인 청년 문제 해결을 위해 책임 있게 나서야 하는 법적 근거이다. 청년 규정을 19세에서 34세로 확대하고 고용, 주거, 복지, 교육,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청년 정책을 도입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는 기본법이다. 일하는 청년으로 책임 부여만이 아닌 시민으로 책임과 권리를 함께 행하고자 하는 청년들의 담론이 발전하며 나타난 청년기본법은 청년문제 해결의 출발선이자 다음 사회를 준비하기 위한 변화의 시작이다. 현재 국회 원내의 모든 정당은 청년기본법 제정의 필요성에 공감했지만, 복잡한 국회의 환경 속에서 미래세대의 지속가능성을 제기하는 청년정책의 논의는 우선순위로 검토되지 못하고 있다. 청년들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시기를 겪고 있다. 청년들의 삶에 안전망으로서 기능을 할 수 있는 청년 기본법을 통해 변화를 모색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박혜령 전주시사회혁신센터 운영지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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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8.18 17:07

전북 아이들의 자존감을 부탁해

이동훈 코끼리 가는 길 대표 자존감이란 자신이 소중한 존재이며 어떤 성과를 이룰 수 있는 유능한 사람이라고 믿는 마음입니다. 아이의 성장에 있어서 자존감이 중요한 이유는 자존감이 아이의 행동과 말, 판단, 감정, 능력 등을 담당하는 정신 건강의 척도이기 때문입니다. 새삼스럽게 자존감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진실처럼 굳어진 전북지역 아이들의 학력이 낮다는 말과 그로 인해 우리 아이들이 받을 상처에 대한 우려 때문입니다. 우리 지역 아이들의 학력이 꼴찌라고 까지 하는데, 어린 시절 전북의 학생이었던 한 사람으로서, 지역의 선배로서 정말 그런지 궁금하기도 해서 한 번 따져보기로 했습니다. 정말 우리 아이들이 전국 꼴찌일까요? 수능성적이 전국의 아이들 가운데 전북 지역 아이들의 학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객관적 지표라 생각하여 살펴보았고, 그동안 들어온 이야기들과는 달리 전북 아이들의 학력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2018년 수능시험 결과발표에 따르면 전북은 지역별 재정자립도 및 사회문화 여건이 유사한 8개 도권역을 비교한 결과에서 1~2등급 등급비율에서 국어는 3위, 수학가 4위, 수학나 2위, 영어도 2위에 올랐습니다.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기초학력미달 범주라고 볼 수 있는 하위 12%, 즉 수능 8, 9등급의 학생 수가 8개 도 권역 중 가장 적었다는 것입니다. 반면 국영수 3개 영역 모두 최상위 12% 즉 1, 2등급 학생의 수가 8개 도 권역 중에서 비교적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고, 이 결과는 지역의 경제적 수준이 학생들의 학력 수준과 비례한다는 오랜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결과이기도 합니다. 2019년 전북의 재정자립도는 21.6%로 평균(36.9%)에 한참 못 미치는 전국 최하위권입니다. 재정자립도야말로 전국 꼴찌 수준인 상황에서 꾸준히 중상위권을 놓치지 않는 전북의 학생들에게 칭찬을 해줘도 모자랄 판에 전북지역 학생들의 학력이 낮다는, 심지어는 꼴찌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 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무엇을 근거로 말하는 것입니까? 의도가 어찌되었든 간에 그 분들의 주장이 우리가 살고 잇는 전북의 미래를 이끌어 갈 아이들의 자존감에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도 꼭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전북의 젊은 유권자로서, 그리고 교육시민운동가로서 도민들께 제안합니다. 자신의 정치적 이해득실을 목적으로 전북 아이들에게 부당한 꼴찌 프레임을 씌우는 이들에게 현혹되지 마십시오. 그리고 지역의 발전을 위해 다가올 총선에 출마를 고려하고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는 분들께도 부탁드립니다. 제발 눈앞의 승리를 위해 전북의 미래를 내팽개치는 일, 우리 아이들의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일 만은 하지 마십시오. 또 학력의 순위가 좀 낮으면 어떻습니까? 전북 교육은 지난 몇 년 간, 적어도 현장에서 보기에는 아이들의 개성을 존중하고, 행복감과 자아 효능감을 높이고, 자존감을 지켜주는 방식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모두가 입을 모아 4차 산업혁명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정작 그에 부합하지 않는 구시대적 평가에만 매달리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할 일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리지만, 우리 전북의 아이들은 잘 하고 있습니다. 어른들만 잘 하면 됩니다.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이고, 힘을 가진 세계 속의 인재로 길러내는 방법은 근거 없는 비난과 질책이 아닌, 지역 선배인 우리 어른들의 한결같은 사랑과 격려입니다. / 이동훈 코끼리 가는 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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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8.11 17:54

시간은 돈이다, 시안은 돈이다

박세진 디자인에보 대표 오늘날 디자인의 시작은 산업화와 그 태생을 함께 한다. 18세기 기술 혁신과 사회구조의 변혁을 일으킨 영국의 산업혁명 직후 순수미술이 가진 고유의 심미적 요소들을 분석활용하여 대량생산과 기능주의 등이 함몰된 기계 만능주의에 대한 반성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는 19세기 말 영국의 윌리엄 모리스의 미술공예운동에서 잘 드러난다. 기계, 기술에 의한 대량생산품이 외형적 예술성이 결여된 채 마구 생산되는 현실을 부정하고, 중세 이후 수공예품의 심미적 아름다움을 회복시키자는 취지의 문화반성운동으로써 근대적 조형 이념을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즉, 미술이 가진 심미성이 미술품으로써 내적, 정신적 가치를 벗어나 일상제품으로의 접목을 통한 외적, 효율적, 경제적 가치로써 그 역할을 확대하면서 수요자는 소유욕을 부담없이 해결할 수 있고, 생산자는 걸맞는 경제적 이윤을 추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사건이었다. 오늘날 디자인이란 현대 산업사회 속에 대량생산된 다양한 상품들을 각각의 아이덴티티로 구분하기 위한 목적으로 심미적 가치를 부여하고, 이를 통하여 제품과 기업이 가진 마케팅을 포함한 무형적 가치를 극대화하여 시장경제와 지속저긍로 소통하는 탈장르 예술 분야로 성장하였다. 그렇다면 오늘날 디자인의 사회적 지위 상승만큼 과연 디자이너들의 직업적 지위는 성장하고 있을까 필자는 지난 10여년 간 다양한 지역 디자인 실무를 진행해 왔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19세기 산업혁명 시대의 초라한 예술가적 지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느끼곤 한다. 필자 이전의 선배 세대들은 그 느낌이 더했을 것이며,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타 학문과 별반 다르지 않는 전문학사, 학사, 석사, 박사 등의 시스템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디자인은 단순한 도구적 수단으로 머물러 있다. 시안을 먼저 받아볼 수 있을까요? 지난 업체는 모두 그렇게 했습니다. 실무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한번 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일부 업체들의 생존 노력은 스스로 덫을 만들어 또다른 불합리함을 낳았다. 이는 산업 시대의 아이콘인 디자인이 결국 산업화 즉, 자본주의에서 철저히 외면받는 상황으로 변질되었다. 얼마전 지역 모 센터의 무리한 업무요청을 받았다. 지나친 일정과 데이터 부족 등 많은 난제가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그들의 상황을 거절할 수가 없어 업무는 진행되었다. 일주일 간의 주말과 퇴근없는 디자인 격무와 함께 반복 수정 및 협의를 거쳐, 마무리 인쇄작업 준비로 지쳐갈 쯤 당황스러운 일이 발생하였다. 이후 일정은 다시 감안할테니 디자인을 처음부터 다시 추가진행해주세요. 죄송하게도 윗분이 주말에 어디선가 본 책자 디자인이 맘에 드셨나 봅니다. 지난 일주일 간의 시간이 무참히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결국 필자는 불합리함을 이유로 해당 업무를 중단시키고 말았다. 그들 눈에는 디자인이 얼마나 초라하고 옹색한 도구적 행위였을까. 또한 본질적인 갑질을 죄의식 없이 범하는 그들이 대중 속에서 평등과 갑질 철폐라는 공공연한 외침을 하고 있다는 점, 그 이중성에 소름이 돋는다. 디자인은 산업 시대의 산물로, 자본주의의 중심에 있다. 그들에게 시간은 돈이고, 그들에게 시안은 시간이며 돈이다. 즉, 디자인이란, 디자이너의 함축된 시간의 산물인 것이다. 누구도 의사에게 수술 이후 결과를 볼모로 비용지급을 논하지는 않는다. 그게 상식이니까. /박세진 디자인에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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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8.04 16:46

책방에서 만난 작은 이웃들의 마음

임주아 물결서사 대표시인 선미촌으로 출근하는 토요일, 불 꺼진 유리방들 사이 좁은 골목길을 지나 책방 문을 연다. 아이고, 왔어? 잘 지내셨어요! 책방 옆집 할머니들과 인사를 주고받아야 비로소 책방에 도착한 같은 기분이 든다. 어떤 사이는 시간보다 마음에 비례하는 걸까. 지난 봄날엔 마당에 나가 국숫집 할머니가 끓여온 국수를 함께 먹었다. 고물상할머니가 주신 빗자루로 책방 바닥을 깨끗이 쓸었다. 할머니가 고물을 주우러 가거나 병원에 가는 날이면 할머니가 아들이라 부르는 강아지와 골목을 산책하기도 하고, 국숫집 할머니가 종종 휴대폰을 들고 종종걸음으로 들어오는 날에는 휴대폰 속 중복된 아들 이름이나 세상을 떠난 이름을 지워드리기도 했다. 이웃이라는 말과 멀리 떨어져 걷던 시간들이 점점 가까이 회복되는 책방에서 나는 조금씩 동네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다. 깊은 잠에 빠진 낮의 선미촌 건물 사이, 골목골목 책방으로 찾아들어오는 손님들 중에는 빨간 오토바이를 타고 오는 아주머니가 있다. 골목 끝에서부터 부릉 소리가 나면 오셨나보다, 하고 기다리게 되는 손님. 책방에는 새 책을 판매하는 조금 넓은 공간과 헌책을 사거나 빌리고 기증할 수 있는 작은 공유책방이 있다. 손님들이 한권한권 기증한 책들이 모여 어느새 꽉 찬 다락같은 방이 된 이곳에 이 아주머니가 단골이 됐다. 그는 끈으로 단단히 묶은 책들을 내려놓으며 좋아하는 책만 가져왔다고 말했다. 그의 목록엔 브레히트 시집도 있고 518 기록을 담은 책도 있고, 과학 이론 서적도 있다. 나는 이 범상치 않은 목록도 좋아하지만 그가 빨간 헬멧을 쓰고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는 것도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을 주고 싶은 마음, 골라두었다가 끈으로 묶어 실어오는 마음. 차곡차곡 담아 망설임 없이 한곳으로 직행하는 마음. 책끈을 풀어 한 권 한 권 진열할 때마다 문득 겸허해졌던 건 그의 마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자 그 책을 정기적으로 빌려가는 주민도 생겼다. 그냥 빌려가는 게 미안하다며 꼭 박카스 한통을 사들고 오는 동네 아저씨는 마지막장을 넘기는 게 너무 아깝다는 독서광이자 다독가다. 그는 책방에서 빌려간 책들을 주민 세 명과 돌려보며 함께 읽는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최근 알려주기도 했다. 어떤 책을 가져가면 다같이 좋아할까 궁리하며 책을 고르는 그의 모습을 보며 선미촌에 과연 어떤 공간이 있어야 이들이 기쁘게 살아갈까 생각하게 된다. 그런 고민은, 책방이 두 달에 한 번 정하는 주제와 내용으로도 연결됐다. 지난 6월 이웃은 그 자리를 지켰다를 주제로 서노송동에 사는 젊은 성악가의 데뷔콘서트를 열어 주민과 예술가들과 함께한 책방은 퍽 다정하고 행복했다. 생존에서 예술로, 예술에서 이웃으로 주제의 폭을 넓혀오는 동안, 이곳을 찾는 이웃들은 선미촌에 책방에 있어야할 이유에 대해 더 이상 묻지 않는다. 마음을 주고받은 사이, 존재만으로 힘이 되는 것이 있다. /임주아 물결서사 대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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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7.28 17:10

청년 인구 유출 문제에서 청년 정책으로 패러다임 전환해야

박혜령 전주시사회혁신센터 팀장 사람은 나면 한양으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내라라는 옛말이 있다. 여전히 옛말은 아니다. 지역을 떠나 대도시로 집중하는 청년 인구 이동 현상이 계속되고 있으며 인구감소 및 지방소멸의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2019 전주시 지속 가능 지표 평가보고서에서는 지난 10년간 청년 인구의 타 시도 유출은 지속해서 이어지고 있으며 청년 인구의 감소는 결과적으로 지역의 존립 위기를 초래한다고 발표했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한국의 지방소멸 2018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시군구 228곳 가운데 소멸 위험지역은 89곳이며, 전북지역 14개 시군 가운데 10곳은 지속적인 인구감소로 소멸위험에 처해있다는 분석결과가 나왔다. 인구감소가 지역에 큰 위기인 것은 사실이지만 청년 인구 유출문제를 너무 비관적으로 바라본 나머지 청년들의 다층적인 사회경제적 조건은 무시한 채 단순히 일자리 문제로 수렴되고 있는 상황은 우려스럽다. 청년들이 겪고 있는 사회문제는 일자리에서 주거, 문화, 복지 등 전반적인 분야로 확대됨에 따라 다양하고 복잡해지고 있으며, 청년 세대 역시 단일하지 않은 상황에 비해 청년 정책은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여전히 취업률, 창업 팀 수, 참여 인원, 수료율 등 피상적정량적 목표로 평가하고 성과를 측정하는 행정편의 중심적 정책의 실패 사례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청년이 지역을 떠나는 것을 문제로 정의하는 것을 넘어 청년이 지역의 다양한 조건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상황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적 고려를 해야 한다. 기존의 청년 정책의 주요 문제점 중 하나는 청년들이 마음껏 상상하고 자유롭게 도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지 않았다는 것과 지역에서 청년들이 공동체 안에서 사회적으로 성장하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소홀하였다는 점이다. 공동체 안에서 청년들은 동료를 만나고 서로 지지하고 도움받는 사회적 지지를 경험하며 지역 사회에 애정을 가질 수 있고 이는 지역에 정착할 요인이 된다. 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의 설문결과 많은 청년(72.2%)이 현재의 지역에서 머물고 싶어 하며, 절반 이상의 청년들이 사회적 관계망과 심리적 안정감을 꼽았다. 결과보다 과정, 새로운 시도 그 자체를 지원하며 공동체 안에서 개인은 더 적극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경험을 만들며 자신에 대한 탐색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정책적 지원을 해야 한다. 지역에서 바로 시작할 수 있는 공동체 단위의 작고 다양한 실험들을 지원할 필요가 있으며, 실제로 사회혁신 리빙랩프로젝트는 공동체 단위의 실험이 더 창의적이고 혁신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시작할 수 있고, 실패해도 재도전할 수 있는 안전망이 필요하며, 지역 내에서 혁신적인 실험들이 계속될 수 있도록 사람 자체를 지원하고 실험의 과정이 지역 혁신으로 이어져 지역에서 살고 싶은 의지에 힘을 보태주어야 한다. 더이상 다른 자치단체의 청년 정책 모델을 우리 지역에 단순 복제하여 특성 없는 정책의 무분별한 나열만 해서는 안 된다. 지역에서 살고 싶은 청년을 위한 정책 모델을 발굴하는 실천적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청년은 그저 취업하고 출산해야 하는 시대의 일꾼이 아니다. 청년이 살고 싶은 지역을 만들기 위한 현실적인 노력과 해결을 위한 청년 정책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박혜령 전주시사회혁신센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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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7.21 15:51

잘 살기 위해 아이들은 놀아야 합니다

이동훈 코끼리 가는 길 대표 450만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등장으로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 약 400만년 정도는 원시 인류의 시대였고, 산업화와 함께 지금 모습의 학교가 나타난 것은 고작 100여년 안팎에 일어난 일입니다. 추측컨대, 우리는 450만년의 세월동안 야생의 새끼동물들처럼 어린 시절 몸 안에서 마구 쏟아져 나오는 생명 에너지를 내뿜으며 친구들과 뛰고 달리고 구르며 자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회가 급격히 바뀌더니 좁은 학교에 새끼 인간들을 가두고, 가르치고, 강제하기 시작한 세월이 100년. 아직 새끼 인간들은 그렇게 빨리 진화하지 못했는데 갑자기 새끼 인간들이 갇혀 버렸습니다. 아이들은 어린 시절의 놀이를 통해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고, 모방하고, 싸우고, 양보하고, 뭉치고, 흩어지며 앞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마음의 힘, 신체의 힘, 관계의 힘을 기릅니다. 노는 게 아니라 서로 배우고 있는 것이죠. 본능에 따른 놀이를 통해 자기도 모르게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동물원의 좁은 우리에 갇힌 동물들은 정형행동이라는 것을 합니다. 드넓은 활동반경을 가지고 살던 동물들이 좁은 우리의 한쪽에서 계속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반복하거나, 같은 위치의 벽을 계속 긁는 등의 이상행동을 이르는 말이지요. 사람으로 치자면 정신질환을 앓게 되는 것입니다. 본능과 자유가 억압당했을 때 동물들은 그 상황을 견뎌내기 위해 이렇게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이게 되는 것이죠. 그동안에는 우리에게 없었던 왕따, 청소년 자살, 중2병 등을 어린 인간의 정형행동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생각일까요? 에너지는 한 곳에 고여 있을 수 없습니다. 에너지가 모여 담긴 그릇보다 더 커지게 되면 반드시 분출 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니까요.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의 새끼들은 어른들에 비해 더 많은 에너지가 작은 몸에 담기게 됩니다. 놀이를 통해 이를 건강하고 건전한 방법으로 해소해야 하는데 그 에너지를 작은 책상 앞에 가두고, 작은 교실 안에 가두니 아이들은 살기 위해 그 에너지를 나보다 약한 친구에게, 애꿎은 대상에게 폭발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학교에서 일어나는 가슴 아픈 일들은 아이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아이들을 놀지 못하게 하고, 배우지 못하게 하고, 자라지 못하게 한 우리 어른들의 잘못입니다. 미래학자 앨빈토플러는 한국에 다녀가며 한국 학생들은 하루 10시간 이상을 학교와 학원에서 자신들이 살아갈 미래에 필요하지 않은 지식을 배우기 위해, 그리고 존재하지도 않는 직업을 위해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아침 일찍 시작해 밤늦게 끝나는 지금 한국의 교육 제도는 산업화 시대의 인력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다.라며 안타까워 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 화두인 지금, 우리는 다가오는 미래를 아이들이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는 기본만 준비해주면 됩니다. 어린 시절의 놀이는 곧 학습이며, 놀이를 통한 즐거운 기억은 아이가 다음 세상을 살아가는 힘의 원동력이 됩니다. 드론조종사가 유망직종이 될 줄 알았던 사람은 20년 전 지구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만들어갈 세상을 우리 어른들은 다시 태어나도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아이들이 잘 헤쳐갈 수 있도록 우리는 기본만 준비해주면 됩니다. 지금, 귀한 당신의 아이를 놀게 하세요! /이동훈 코끼리 가는 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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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7.14 16:53

쌓여가는 일상 속, 느리지만 지속가능하기

박세진 디자인에보 대표 최근 산업구조의 변화로 신산업, 신도시 위주의 집중 개발은 많아졌지만, 구도심은 그 역할과 기능을 빼앗겼다. 이에 도나 시, 군은 공공 중심의 도시재생을 통해 구도심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많은 노력을 하였다. 단, 공공 중심의 공간재생 사업은 공간별, 지역별 스토리를 찾기 위한 적극적 탐색보다는 국내외 유명 사례를 무조건적인 벤치마킹을 통해 지역 특성이 없는 획일화되고 유명무실한 사례들로 전락했고, 인프라 구축 이후에는 임대료 및 주거비용 상승, 또다른 공동화 현상 등 젠트리피케이션을 수반한 많은 사회적 이슈들만 남긴 채 책임은 온전히 지역 주민들의 몫이 되었다. 우리가 한 번 해보면 어떨까? 그들보다 느린 건 괜찮아. 필자 부부는 4년 전 지역의 젊은 사업초년병들에게 무상으로 공간을 제공하겠다며 소규모 공간재생 사업을 진행하였다. 말이 공간재생이지. 회사의 공간을 남들과 공유하겠다는 단순한 공간무상대여서비스였다. 그러나 무리한 기획, 예산 부족, 콘텐츠의 부재, 신뢰 및 커뮤니티 형성의 실패 등으로 약 1년 만에 중도포기하였다. 패인은 월세살이하는 우리가 남에게 공간을 제공한다는 거 자체가 남들 눈에는 무척이나 철없어 보인 것이다. 실패 1년 후, 필자 부부는 서신동의 건물 한 동을 매입하였고, 예산을 아끼기 위해 부부와 지인들이 직접 건물 공사에 참여하였다. 그렇게 1년 간의 처절한 준비 끝에 서신동 공간재생은 완성되었다. 그리고 온전히 우리 것을 나누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문화 전시 및 행사, 콘텐츠 교육 등의 노력에도 민간의 공간재생은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다. 그들을 유입할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이 필요했다. 미디어 전공자인 필자는 지역 내 미디어아티스트의 지원 방안 부재에 주목하였고, 전북 최초의 미디어아티스트 육성지원을 위한 전문레지던시라는 공간 브랜딩에 성공했다. 2018년 (재)전라북도문화관광재단의 창작공간활성화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작가들에게 창작공간 및 창작지원금 등 일부 혜택을 제공할 수 있었고, 이에 힘을 얻어 2차 공간재생 프로젝트인 팔복오길을 기획하였고, 2019년 동사업에 선정되어 지역 내 신규 미디어아티스트를 위한 새로운 창작공간 만들기를 현재 진행 중이다. 3~40년 전 가난한 공장 근로자와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살던 좁은 골목과 작고 허름한 집, 그러나 오래된 향수를 간직한 전주의 대표 낙후지역인 팔복동의 낡은 주택이 바로 그 곳이다. 지역 아이들과 가족들이 행복할 수 있는 일상공간 서신동 공간재생과 긴 시간 우리 히스토리를 간직한 친근한 일상공간 팔복동 공간재생. 비록 공공의 공간재생이 가진 사업적 안정성은 부족하지만, 민간의 공간재생은 팔복오길과 같이 정책이 닿지 못한 더 낙후된 주거지역으로 직접 들어가, 보다 진실된 스토리 발굴과 같은 향수를 공유한 주민들과의 깊은 유대감 등을 형성할 수 있어 해당지역의 지속적인 발전에 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여전히 관심은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기존의 다양한 예산 지원 외에도 전라북도나 시, 군 차원의 민관합동형 공간재생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지역 간 행사, 전시, 교육 등의 프로그램을 일관성있게 운영할 수 있도록 다양한 행정적 지원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진정한 공존을 위한 공간으로써 그 역할을 다하게 되지 않을까 할머니, 시끄러울 거에요. 죄송해요. 괜찮아. 사람 소리만 들려도 좋지 머 /박세진 디자인에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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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7.07 16:23

선미촌 골목 한가운데 예술가 책방이 있다는 것

임주아 물결서사 대표시인 선미촌에 책방을 연다고? 일곱명이나 같이? 대체 어쩌려고? 지인들의 반응은 비슷했다. 혼자 조용히 창작하고 살기도 버거운데 굳이 같이 모여 어려운 길로 가야겠냐, 아직 곳곳에 문 열린 업소가 있는 성매매집결지 한가운데 누가 책을 사러 찾아오겠냐 하는 의견이 대다수. 일곱 명이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가며 책방을 본다는 말엔 운영비도 없이 그걸 왜 하냐는 핀잔이 돌아왔다. 책 한 권 팔아도 남는 건 뻔한데 돈이 벌릴 리 없다는 염려와 함께, 땅값만 오르고 예술가들만 상처받는 좋지 않은 모양이 될지 모른다는 엄숙한 조언도 이어졌다. 그렇게 올해 1월, 많은 이들의 걱정을 무릅쓰고 문제의 일곱 명이 전주 선미촌에 책방을 열었다. 책방 주소명를 따라 물왕멀이라 이름 지은 팀은 미술, 음악, 사진, 영상, 문학 등 각각의 장르로 창작하는 삼사십 대로 모두 전주에 살고 있다. 대표는 책방 운영 경험이 있는 사람이 하면 좋겠다는 의견에 따라 내가 맡게 되었다. 우리는 창작자이기도 하지만 이를 매개로 콘텐츠를 만들고 기획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란 공통점이 있다. 책방 이름을서사(書肆)라 지은 것은 서적방사의 줄임말인 서점이란 뜻만은 아니다. 예술가들은 자기만의 고유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라는 서사(敍事)의 의미를 우리 책방의 중심에 두고 싶었다. 선미촌에서 진행된 전시를 기획하거나 참여한 경험이 있는 팀원 비율이 반 이상이라 이곳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나 두려움은 옅었다. 매일 마주치는 이웃들과 오고가는 손님들이 이곳에 책방에 있어 다행이라는 말을 할 때면 마음이 쿵쾅거린다. 이제 선미촌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고민하는 지점 가운데 예술가와 책방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나 개인으로서는 아직 선미촌에 대해 하나된 의견이나 판단을 내리기는 어렵다. 누군가 정확한 답을 요청할 때마다 나는 그 질문이 정확하지 않다고 느낀다. 다만 우리가 이곳에 거주하다시피 발 딛으면서 목격하고 알게 된 것들을 중심으로 창작한 작업물이 점점 쌓여가고 있다는 것을 좀더 이야기한다. 우리는 지난 3월부터 SNS를 통해 매주 각자 코너에 새 콘텐츠를 연재하는 무모한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주제는 이곳 선미촌. 여기서 보고 느끼고 감지한 것을 토대로 음악, 사진, 드로잉, 영상, 시로 발표하고 있다. 매주 새로운 창작물을 내고 SNS에 공개까지 한다는 것이 떨리고 두렵지만 그것이 바로 이곳에 작은 책방을 낸 가장 중요한 이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모이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말에 격하게 공감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지역에 살면서 자기 작업을 지속하려는 창작자들에게 흩어짐만은 그리 뾰족한 수가 아닐 수도 있다. 더 나은 지대를 만들기 위한 고군분투는 홀로 해내기 어려운 까닭이다. 때문에 함께 느끼고 실천할 동료들과 가야할 길이 길다. 전주시가 4번째로 매입한 선미촌 4호점 건물, 오래 비어 있던 성매매업소가 작은 책방이 되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과 긴 시간이 증명하듯 우리는 계속 보폭을 맞춰가야 한다. 이제 7개월째 걸음마를 떼고 있는 일곱 명의 운영자들은 이 공간을 어떤 각도로 돌려놓게 될까? 동네 이웃들과 이곳을 찾아오는 분들과 함께 하는 진솔한 방법으로, 한 번도 해보지 않을 일들이 가져다줄 단단한 마음으로. 선미촌 골목 한가운데 작은 책방은 오늘도 문을 열고 있다. /임주아 물결서사 대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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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6.30 17:33

사과하는 법을 잃어버린 정치에게

김현두 여행작가 결국 청년이 사는 지방을 만들고, 청소년과 노년에 이르기까지 조화롭게 살아가는 전북을 만들어 내는 일은 정치적인 노력도 함께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기에 청년으로서 살면서 느낀 내 고장의 정치를 이야기하고자합니다. 지방의 작은 소도읍으로 갈수록 토호세력은 더욱 깊숙이 지역의 정치와 경제 전반에 걸쳐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수 십 년 새만금을 팔아서 사는 정치인들과 선거 전에는 싹 바꾸겠습니다 아우성치던 이들이 자기가 바뀌기는 것을 더 많이 봅니다. 최근에는 다문화가정을 향해 잡종이라는 표현까지 서슴치 않는 사람들이 우리 전북 행정을 이끄는 수장이라는 것이 정말 안타까워서요. 얼마 전 제가 사는 지역에서도 현직군수가 징역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되었습니다. 고향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살던 저에게 깊은 상처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들에게 사과 하는 어른들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몸담던 거대정당도 지역의 어떤 어른도 우리들에게 사과 하는 사람이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 불운의 정치인은 거대정당 소속입니다. 그런데 도당이나 중앙당은 그저 침묵합니다. 아직도 그들에게는 후보군들이 많기 때문일까요? 자기반성이나 군민들에게 사과하는 것이 먼저이지 않나요. 벌써 보궐선거에만 시선이 가는 지역의 어른들을 보면서 저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답니다. 내 고향을 너무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살아 온 우리들에게 누구도 지금의 현실을 말해주는 이가 없습니다. 이번만이 아니었습니다. 지역의 현안과 큰 문제들이 불거 질 때 마다 진실을 밝히지도 바로 잡으려 하는 어른들이 없었습니다. 요리조리 눈치만 보던 이들이 이제는 고장의 일꾼이 되겠다. 합니다. 정체성을 잃어버린 그들이 더욱 안타깝습니다. 그들은 선거 때만 되면 늘 세상을 바꾸겠다.말 합니다. 그 치열한 싸움을 위해서 평생 고향을 떠나 엘리트 집단에서 살아 온 이들이 고향으로 회귀하는 것을 봅니다. 마치 바다와 강을 오가며 사는 연어들처럼 말이죠.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엘리트 집단이라는 것이 그들이 누려온 오랜 부귀영화를 더 지속하려는 수단이 정치는 아닐까? 말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혐오스러운 것 또한 정치이죠. 이곳에서 태어난 것이 중요합니까? 아니면 이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중요할까요? 뭐 둘 다 중요하긴 하겠죠. 앞에서 잠시 말 한 연어는 산란기가 다가오면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거슬러 올라오고, 짝짓기를 마친 암컷과 수컷은 곧 죽고 부화한 새끼는 이듬해 바다로 내려갑니다. 정치인과 연어는 둘 다 회귀 본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회귀하기 위한 목적에는 차이가 있어 보이는 게 현실입니다. 연어는 자신의 출산을 위해 목숨을 바쳐 회귀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후대에 미래를 위한 투자인 것이죠. 권력도 정치도 할 줄 모르는 그런 연어들에게 우리들이 배워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희생입니다. 미래의 세대를 위한 희생 말이죠. 누군가의 아픔과 상처 앞에서 침묵 했던 이들이 권력을 가진 이가 된다고 해서 소외되고 아픈 젊은 청년세대들이나 우리의 가족들을 위해 함께 싸워주는 것은 아닙니다. 내 고장의 그릇된 현안과 큰 문제나 사건들이 등장할 때 마다 침묵했던 정당이나 정치인들에게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진안을 맡길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사과 하는 법을 잃어버린 그 어른들에게 말이죠. /김현두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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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6.23 16:10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소해진 사회복지사 10년 전 서울 반지하에 살 때 일이다. 룸메이트와 둘이 살았는데 휴일 낮에 tv를 보고 있자니, 창문 너머로 시커먼 눈알이 들어왔다. 너무 놀라고 경악해서 야!하고 소리치자 어떤 남자가 도망치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그 집은 초록색 대문을 열고 여섯 계단 아래 현관문이 있었고 세탁기는 그 옆 안쪽에 놓여있었다. 늘 세탁기 안쪽 시커먼 공간이 무서웠다. 어느 날 둘이 외출했다가 현관문을 열었는데 세탁기 안쪽 공간에 남자가 숨어 있었다. 자동 반사적으로 크게 소리치자 남자는 잽싸게 도망갔다. 해가 지지 않은 오후였고 남자를 쫓아 달렸으나 잡을 수 없었다. 대신 목청 높여 왜 남의 집에 들어오냐. 신고하겠다!고 다른 사람에게 도와달라는 신호를 보냈으나 누구도 나오지 않았다. 경찰에 신고하였으나 몇 번의 순찰을 나왔을 뿐 검거되지 않았다. 연일 뉴스에 보도된 신림동 강간 미수 CCTV 사건은 혼자 사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일이다. 그녀가 들어가자마자 1초 차이로 문을 열려는 그의 행동은 공포를 넘어선 범죄의 현장이었다. 이후에도 10분간 집을 배회하고 휴대폰 조명으로 현관문 도어록 비밀번호까지 열려는 집요한 행동 속에서 그녀는 홀로 사투했다. 경찰은 피해자의 신고를 받고 출동했지만, 6층에 있는 피해자의 집까지 올라가지 않고 건물 입구에서만 둘러보다가 철수했다. 이 사건이 화제가 된 것은 피해자가 직접 구해 트위터에 올린 CCTV 영상에 대한 강한 여론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경찰은 왜 피해자의 호소를 가볍게 여긴 것일까?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는 이번 사건이 현행법상 중한 범죄가 아니기 때문에 경찰이 움직이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극심한 공포와 좌절은 범죄 그 자체보다 피해 사실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사건 이후 가장 논쟁이 되었던 부분은 혐의 적용 부분이었다. 주거침입인가, 강간 미수인가? 이는 법 규정 자체보다 법 적용과 판단의 문제이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성범죄로 인해 목숨을 잃고, 삶이 망가져야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사실, 내가 궁금한 건 그 이후의 이야기다. 그녀는 그 집에서 살 수 있었을까? 휴식과 충전의 공간이었던 집은 위험한 공간이 되었을 것이다. 집으로 귀가할 때마다 누가 쫓아오진 않는지 잔뜩 긴장하게 되고, 잠금장치는 이중 삼중으로 강화하였을 것이고, 아마도 이사를 고려할 확률이 높다. 살 떨리는 공포와 위협의 시간을 홀로 다시 겪고 싶지 않을 것이다. 어느새 그녀의 불행은 우리 모두의 불행이 된다. 여성 1인 가구에게 안전한 집이 있을까? 성범죄는 해마다 늘어나고, 경찰은 피해 사실을 가볍게 여기고, 사법부의 처벌은 미약하다. 다시 10년 전 그 사건으로 돌아가, 우리는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였다. 경찰 신고 이후 직접적인 위험이 사라지자 폭발적인 분노가 치밀었다. A4 용지 20장에 그를 향한 분노와 저주의 언어를 주술처럼 적어 벽에 덕지덕지 붙여놓자, 공포에 눌린 에너지가 다르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주술이 통했는지 그 남성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안일한 공권력의 틈 사이에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은 무엇인가? 바로 당사자의 공포와 위협을 없는 것으로 취급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며 함께 싸울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지키는 힘, 우리는 그 집을 떠나지 않고 계속 살 수 있었다. /소해진 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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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6.16 16:45

당신도 관종이신가요

김지윤 청춘부보상 홍보담당 관종은 흔히들 알고 있듯이 관심 종자의 줄임말이다. 타인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지나치게 높은 상태를 나타내는 단어로, 그 욕구가 병적인 수준에 이르렀음을 뜻하는 관심 병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들은 타인에게 관심을 받을 목적으로 인터넷에 글을 작성하거나 댓글을 달고, 이목을 끌만한 사진이나 영상을 올리기도 한다. 나는 관종이다. SNS를 즐겨하고 사진 공유하기를 좋아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콘텐츠가 도달하게 하기 위해 해시태그를 하기도 하고, 좋아요를 많이 받기 위해 예쁜 사진들을 올리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나를 인스타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충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의미를 포함한다. 하지만 나는 관종이 결코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관심을 먹고 사는 사람들을 폄하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한번은 친구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는 만인관종설을 주장한다. 모든 사람들은 관종이고, 단지 그 정도가 다를 뿐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타인의 관심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나는 그의 의견에 적극 동감하는 바이다. 인간의 모든 행동이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남에게 인정받기 위함을 추구한다고 생각한다. SNS에 올리지 않더라도 옷을 입거나, 타인과의 관계를 맺는 것 자체가 그렇다. 모든 사람이 가진 특성은 곧 이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제 사람들의 그런 관종력을 이용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정도로 관종이 대세 중의 대세가 되었다. 미디어 환경이 아무리 발전해도 모든 미디어들의 주요 수입원은 광고라고 생각한다. 관종들은 이제 광고를 통해 수익을 낸다. 팔로워가 많은 SNS이용자는 자신의 계정으로 광고를 하고, 그 광고는 그의 모든 팔로워들에게 도달한다. 또 다른 관종인 유튜브 크리에이터의 소속사 개념인 MCN사업이 급부상한 이유도 그렇다.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의 주 수익원은 역시 광고이다. 구독자의 수가 많을수록 광고가 도달하는 범위가 넓어지고, 당연히 광고료는 상승한다. 따라서 채널의 이미지를 형성하고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콘텐츠를 기획하기위해 크리에이터들은 MCN의 도움을 받는다. 즉 구독자의 수를 늘리기 위함이다. 내가 최근 관심을 갖기 시작한 여행커뮤니티 여행에 미치다역시 그렇다. 사람들이 여행사진을 SNS에 업로드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정보공유의 목적도 있겠지만 관심을 받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여행에 미치다는 그들의 관종력을 이용해 광고수익을 창출하기도, 기업과 마케팅을 함께하기도 한다. 역시 커뮤니티를 함께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 도달범위를 높이기 위함이다. 이쯤 되면 어떤 광고든 SNS를 거치지 않는 것은 없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절대 관종을 얕봐서는 안 된다. 그들에게 마케팅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활용하고, 그들과 협업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관종들의 콘텐츠를 보고, 그들을 연구한다. 영향력있는 관종이 되거나, 그들을 연구하거나. 그 것이 미디어를 전공하고 있는 내가,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다. /김지윤 청춘부보상 홍보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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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6.09 16:24

반 자급자족적인 삶을 꿈꾸며

김지연 문화기획자 어렸을 때 농부를 꿈꾸던 아빠를 따라 가족들은 전주의 시골 어느 마을에서 지냈다. 어렸을 때라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아무래도 농사를 지어 먹고살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이후 초등학교에 입학 할 무렵 할아버지가 남겨두고 간 정원이 있는 예쁜 집으로 이사를 했다. 아빠가 생각한 이상과 현실의 차이는 컸었던 것 같다. 자식들은 커가고 나가는 돈은 많고, 현실과 타협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금전적으로 좋지 않은 상황들은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이 일어났고, 급기야 엄마가 노점을 시작하며 소위 하루 벌고, 하루 쓰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그래도 아주 불행하지는 않았다. 부족한 살림치고는 정원 있는 예쁜 집이 있었고, 힘들지만 밝은 엄마의 성격을 닮아서인지 엄마가 장사하는 곳에 따라다니며 같이 장사하는 일을 좋아했다. 그렇게 나의 유년시절은 어려운 경제적 현실을 받아들이는 내성이 생기고, 돈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도 더 커져만 갔다. 이런 상황들이 반복되다 보니 돈을 많이 벌어서 떵떵거리며 부족함 없이 살아야지라는 마음보다는 빚 없이만 살아도 최고다, 돈이 뭐길래 이렇게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지 돈 많이 없이도 잘 살아봐야지!와 같은 생각들을 더 하게 되었다.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사회복지사 계약직으로 일하며 넉넉지 않은 월급을 받고 자취를 하면서도 좋아하는 일을 하는 시간이 행복했다. 돈을 많이 벌어서 부모님께 다달이 용돈을 드리지 못하는 것이 종종 마음에 걸렸지만, 그래도 내 인생이니 조금 이기적이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모른척했다. 직장생활 5년, 부모님한테 말도 하지 않고 직장을 때려치고 꽃집을 운영했다. 물론 지인의 카페 안에서 아주 작게 테이블 하나로 시작했지만 그마저도 행복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을 한다니 내 상황을 아는 지인들은 걱정되는 마음에 말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만큼 많이 준비했고, 정말 하고 싶었기에 나만 생각했다. 그 때 만약 나만 생각하지 않았다면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것들을 경험하고 있었을까, 30대 초반이 된 이 시점에서 부모님의 노후를 걱정하면서도, 나의 미래를 생각한다. 하루하루를 잘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나지만, 앞으로 내가 살아가고 싶은 삶을 꿈꾸어보자면 반 자급자족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 돈에 끌려가지 않는 삶, 나의 주변 사람들보다 돈이 우선시 되지 않는 삶, 돈이 나의 삶에 일부로 적용하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결혼하고 애 낳고 살다보면 현실이 시작되고, 금전적인 부분이 많이 영향을 끼치게 된다고 알고 있다. 내가 경험해보지 않았지만 돈이 다는 아니겠지 싶다. 살다가 이런 나의 생각이 제발 바뀌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자급자족적인 삶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지금부터 천천히 공부도 필요할 것 같다. 대체 에너지에 대한 공부도, 직접 먹을거리를 장만하는 작은 농사를 짓는 공부도, 아파트와 멀어져 할 일 많은 주택을 관리하는 방법도. 나처럼 생각하는 청년들이 많지 않을까? 언젠가 TV에서 서울 도심 속 대체에너지와 같은 주제로 청년들이 자급자족저인 삶을 위해 모여 일하는 모습을 봤다. 지역에서도 이런 주제들이 많이, 중요하게 다뤄지면 참 좋겠다. 하나의 또 다른 삶의 형태로 말이다. 나는 오늘도 먼 훗날 반 자급자족적인 삶을 꿈꾸며 차근차근 준비하겠다 다짐한다. /김지연 문화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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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6.02 20:38

서른 살, 흔들려도 좋다

김현두 여행작가 나에게도 흔들리던 서른 살이 있었다. 흔히들 서른이 되면 새로운 도전을 꿈꾸며 여러 가지 준비들을 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마주한다. 여행을 떠난다거나 이직, 결혼, 공부 등 여러 이유로 삶이 다르게 흘러가기도 한다. 나는 서른 살에 직장을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그렇게 직장을 그만두고 일 년 동안 책과 여행, 커피를 만나고 공부하며 지냈었다. 타인보다는 나와의 만남을 위해 무작정 어디론가 떠나기 시작했다. 그 일 년이라는 시간은 나의 머릿속을 흔들어 놓았다. 8년 동안 회사원으로 살던 나의 20대를 내던져버렸다. 내 나이 갓 서른을 넘겼을 때였고, 주위 사람들에게 다시는 직장을 다니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여행자가 되어 살기로 결심했고, 책 속에서 만난 이야기꺼리 하나가 나를 여행자로 살게 하고 있었다. 일 년만 놀자 했던 그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직장을 그만 둔지 5년 가까이를 내 멋대로 살게 될 줄은 그 때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었다. 여전히 나는 내 삶에 만족하고 있었지만 나를 힘들게 하는 한 가지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돈이었다. 누구나 물질 앞에서 힘든 일들을 겪는다. 나도 2012년 그해 가을 너무나 힘이 들어 여행을 떠날 여유조차 잃어버렸다. 잠시 깊은 슬픔에 잠겼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다행히 친구의 도움으로 소금포대를 나르는 일을 몇 주 하면서 여행경비를 만들기도 했다. 소금포대를 나르는 일은 고단한 일이었다. 습기가 찬 소금에서 녹아 흐르는 짜고 쓴간수가 온몸을 적시고 있었다. 소금포대를 집집마다 가지고가서 쟁이는 일도 너무나 힘든 일이었는데, 그러다가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는 날이면 직장생활 그만두고 뭐하는 거냐는 걱정 섞인 타박도 들어야 했다. 그들이 묻는 안부는 나에게 더 이상 안부가 아니게 되었다. 그 때 내 주위의 어른들은 내 청춘을 안쓰러워했고, 다시 일을 하라고 권하기도 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괴로웠다. 그 괴로움을 떨쳐버릴 수 있는 단 한 가지가 내게는 커피트럭을 타고 떠난 여행이었다. 길 위를 떠돌던 어느 날 하늘 위를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면서 저 비행기에 앉아 있었으면 할 때도 있었고, 유럽으로 떠나는 혼자만의 배낭여행을 꿈꾸기도 하였다. 하지만 가진 것이 없는 나는, 이런저런 이유와 욕심을 버리지 못하던 나는 그저 때 묻지 않은 용기만으로 살아가자 하며 나를 다독이고 있었다. 서른 살 이후 나는 내게 들리는 세상의 외침에 귀를 닫으려고 노력했었다. 좋은 직장이나 인맥, 결혼과 가정을 일궈내는 일상적인 삶에서부터 세상이 말 하는 성공이라는 그 것들에 무반응하며 살고 싶었다고 해야 옳은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하늘 위로 떠다니는 비행기를 바라보던 서른 살의 그날, 푸르고 높은 저 하늘을 지붕 삼아 뙤약볕 아래 힘겹게 커피트럭을 몰며 향긋한 커피를 내리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그 서른 살의 여행 속에서 나는 제법 만족하며 지내고 있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공의 기준이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나는 오늘 내가 내 의지와 바람대로 살아가고 있는 중이라면, 자신의 삶에서 성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의지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남이 아닌 나의 의지대로 살아갈 용기를 내보도록하자. 누구도 내 삶을 대신 살아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결단코 스스로의 삶을 살자. /김현두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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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5.26 16:01

사는 게 뭐라고 먹방이 뭐라고

소해진 사회복지사 자기 전 하는 일이 있다. 뉴스를 읽으며 세상사 돌아가는 것을 파악하는 건 아니고, 유튜브 먹방을 본다. 이상하게 자기 전에 허기인지 헛헛함인지 모를 것들이 밀려와 먹방을 시청하곤 한다. 구독자와 조회 수가 저렇게 높은 걸 보면 나만은 아닌 것 같다. 하나같이 저 많은 걸 어떻게 질리지도 않고 먹을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인데, 한 번은 나도 먹방 유튜버 처럼 계속 먹었다가 다음 날까지 끄윽 끄윽 트림을 연발하며 소화제를 달고 살았으니, 먹방 유튜버는 역시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먹방을 보고나면 유투버가 먹었던 걸 휘리릭 검색하고 결제하거나, 다음에는 꼭 저걸 먹으리라는 다짐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잠이 든다. 어느 새 복잡한 마음은 단순해진다. 먹방이라는 용어는 일상적으로 쓰인다. 먹방은 먹과 방송의 방이 합쳐진 신조어다. 먹방은 미국의 유튜버 The Fine Brothers가 만든 서양 사람들의 먹방을 보고 난 뒤 리액션이 인기를 끌면서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로 퍼지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은 2009년 인터넷 플랫폼 아프리카TV에서 시작되었다. 이제 한국 먹방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져, 한국어 병음 Mukbang이 그대로 전 세계 유튜버들의 콘텐츠로 재생산되면서 고유명사화 되었다. 최근에는 시각뿐만 아니라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 자율 감각 쾌락 반응) 이라는 음식 먹는 소리를 극대화하여 들려주는 방송으로 진화하고 있다. 사실 삼시 세끼를 맛있는 것만 먹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맛있는 걸 만들거나 먹기 위해 정보, 돈, 에너지를 상당히 써야 하는데 어떤 날은 맛있는 것만 먹기 위해 혈안이 된 모습에 지치고 신경질이 나서 어떻게 만날 맛있는 것만 먹을 수가 있어!하고 스스로를 다그친 적이 있다. 그날은 결국 밥에 물을 말아 김치와 먹었다. 왜 이렇게 맛있는 것에 혈안이 되어있을까. 먹방이 내 삶에 영향을 끼쳤을까. 아니 내 삶은 왜 먹방을 찾게 되는 걸까. 영국 잡지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의 먹방이 인기가 있는 이유가 장기 경제 침체로 인한 널리 깔려있는 불안감과 불행 때문이라고 분석하였다. 먹방을 보는 심리 기저에는 한국 사회의 민낯이 숨어있다. 사회적 불평등과 불신, 치열한 생존 게임과 피로로 인해 즉각적인 쾌락과 만족을 찾기 위해 먹방을 보는 것이다. 나 역시 세상과 나의 온도 차로 인해 불안할 때가 있다. 30대 중반에 가진 것도 직업도 변변찮고 삶도 뜻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특히 아침 신문을 펼쳐보면 1인당 3만 달러 GDP와 5G 통신으로 한국 사회는 날로 발전한다는데, 사회적 약자일수록 크고 작은 불의들이 활화산처럼 덮쳐와, 이들이 주검으로 발견되거나 삶의 터전이 황폐화되는 걸 접할 때마다 지독한 약육강식 사회가 무섭다. 그나마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안전한 관계 때문이다. 비혼 여성이라는 사회적 위치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밀도 있는 관계, 세상 속에서 실패하고 존재를 상실할 때마다 방어선이 되어준 관계. 한국이 헬조선이 아닌 헤븐조선이었다면 어땠을까? 각자의 방구석이 아닌 공원 잔디밭에 앉아 사람들과 즐겁게 하하 호호 거리면서, 맛있는 음식보다 더 맛깔난 농담과 일상의 이야기로 버무려져 있으려나? /소해진 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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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5.19 18:49

내 예쁜 점

김지윤 청춘부보상 홍보담당 요즘 들어 돈을 잘 벌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한다. 월급을 많이 주는 회사에 입사하고 싶은 게 아니라, 잠을 잘 때도 돈을 버는 직업을 갖고 싶다. 근데 그런 직업을 모르겠다. 그게 쉬우면 다들 잘 벌었겠지. 싶다가도 그런 직업은 뭐가 있을지, 나는 앞으로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계속 고민이 된다. 그 고민의 시작과 해결 그 중간쯤에서 든 생각은 나만의 색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딘가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취업을 앞둔 세상의 모든 학생들은 그런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기 위해 어떤 길을 가야할지 한번 쯤 고민해봤을 것이다. 나는 지금 그런 학생이다. 고등학교 때 제빵을 하고 싶어 하던 우등생 친구가 있었다. 나는 그 친구가 왜 제빵학원이 아닌 수학학원을 다니는지 물어봤다. 내가 확실히 뭐가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 그래서 나중에 뭘 하고 싶어지든 공부가 그 발목을 잡지 못하게 하려고. 그 한마디가 내 인생을 통째로 뒤흔들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뭐라도 하는 것이다.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아서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사는 것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방향이 되었다. 그 후로 학교에서 진행하는 어떤 프로그램이든 일단 신청부터 했다. 그리고 그냥 했다. 여러 경험을 하며 흥미를 가졌던 분야를 찾았고, 진로를 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작은 것들이 내 대학 자소서의 전부가 되었다. 며칠 전 국내 최고의 여행커뮤니티로 손꼽히는 <여행에 미치다>의 안대훈 감독님의 강연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안대훈 감독님이 지금에 있기까지는 우연의 연속이었던 시간들이 있었다. 우연히 여행을 갔고, 우연히 가이드를 하게 되었고, 우연히 영상을 만들게 되었고, 그러다 우연히 그 영상으로 입사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그런 우연들이 일어나기 전 영감을 받았던 글귀를 소개해주셨다. 스티브잡스의 말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앞을 보면서 점을 이을 수는 없습니다. 오직 과거를 뒤돌아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점들을 연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재라는 모든 점이 당신의 미래와 어떻게든 이어지리라는 것을 믿어야만 합니다. 본능, 운명, 삶, 업보 등 그게 무엇이든 간에 점들이 결국 연결되어서 하나의 길을 만들리라는 것을 믿게 된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따르는 것에 자신감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 순간도 작은 점이 되어 긍정적 연결이 되길이라는 말로 강연이 끝났다. 그 강연의 끝에 나는 고등학교 시절의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제빵사를 꿈꾸던 친구와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잠시 잊고 있었던 내 방향을 다시 다잡을 수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의 사소하고 많은 점들이 대입 합격이라는 길이 된 것처럼.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맞는 방향인지 오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일단 하면 될 거라고 믿을 수 있는 용기를 줬다.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뭐가 하고 싶은지, 그리고 뭘 해야 하는지. 그래서 그냥 많은 예쁜 점들을 찍어보려 한다. 그 점들이 여러 길이 되어 나만의 방향으로 인도해줄 거라고 믿는다. 그러니 이 글을 보는 여러분도 지금의 점들을 겁내지 않고 조급해하지 말았으면 한다. 당신의 그 예쁜 점들이 모여 각자의 길로 안내해 줄 테니. /김지윤 청춘보부상 홍보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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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5.12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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