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 공동선언의 정신에 따라 각 분야에 걸친 남북대화와 제반 후속조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불과 얼마전까지만해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볼 때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세상일이란 역시 언젠가 때가 되면 변하기 마련인가 보다. 특히 그 중에도 이산가족 상봉이 다가오는 8.15 광복절을 기하여 제한적인 규모나마 현실적으로 실현을 앞두고 있고 그 구체적인 제반 준비절차가 착착 진행되고 있음을 보면서 이제는 제대로 되는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난다.
그런데 차제에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중대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납북자 송환문제이다. 이산가족 문제는 적극 다루면서 어찌하여 납북자 문제는 외면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인가. 물론 단계적으로, 접근이 용이한 부분부터 차근차근 추진하고자 하는 정부의 입장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이산가족 문제와 남한내의 비전향장기수 송환문제는 함께 연계하면서 납북자 송환문제는 연계시키지 않은 것은 형평성이나 상호주의 정신에도 배치되는 것이다. 이산가족 문제와 납북자 문제는 그 배경이나 성격이 전혀 다르다.
이산가족은 6.25 전쟁으로 인해 피차 불가피하게 파생된 것이다. 그러나 납북자는 말 그대로 북한의 대남혁명전략의 일환으로 북측에 의해 강제로 납치되어 지금까지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자들이다. 당사자 본인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 가족들의 경우에야 얼마나 치가 떨리고 몸서리 치는 일이었겠는가. 강제 납치는 명백한 범죄행위인 동시에 한 개인과 그 가정을 송두리채 무참히 파괴하는 반 인륜적인 죄악임을 알아야 한다.
비전향장기수는 인도적 차원이라는 견지에서 북한으로 선뜻 보내주면서 어찌하여 무고한 한 시민과 그 가족의 삶의 터전을 일시에 짓밟고 강제로 납치하여 지금까지 억울하게 억류되고 있는 납북자에 대하여는 그 송환을 강력히 요구하지 않고 있는 것인가. 인도적 차원이라면 그 누구보다도 저들 납북자 송환이 최우선시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비전향장기수의 경우는 자신들의 정치적 신념에 따라 탄압과 투옥을 스스로 감수하고 있는 자들이다. 일종의 확신범으로서 자업자득의 경우이다. 그러나 납북자의 경우는 그저 평범한 시민으로서 북한의 정치적 목적에 억울하게 이용당한 희생양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전향장기수의 인권은 중요시하면서 수많은 선량한 시민과 그 가족의 인권은 무시해도 된다는 말인가. 처지를 바꾸어 우리들 자신이 바로 납북자의 신세가 되었다고 가정해 보라. 그 얼마나 한이 맺히고 땅을 치며 통곡할 일인가. 최근 한 자료에 의하면 납북자의 전체 규모는 3천7백67명이며 그 가운데 현재까지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자의 수는 4백64명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외에도 국군포로문제가 있다. 지난 6월 20일 박재규 통일부장관은 국군포로는 법적으로 없다고 발언한 바 있는데 이는 그동안 북한측이 “북한에 국군포로는 한명도 없다”고 주장한 논리를 그대로 수용하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물론 박장관의 진의는 지금은 포로라고 하기보다는 넓은 의미의 이산가족이라는 논리인 듯하나 남북회담의 주무장관으로서 그 같은 발언에 대한 그 정치적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본다. 왜냐면 국군포로는 지금도 엄연히 북한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94년 국군포로로 있던 조창호소위가 40여년만에 탈북한 바 있고 그것을 계기로 국군포로 송환대책위원회가 설치되고, ‘국군포로예우등에 관한 법률’이 1999년에 제정되어 남한내 비전향장기수와의 맞교환문제까지 제기된 바 있었다. 또 양순용씨 등 국군포로와 그동안 수 많은 탈북자들의 증언에서 나타난 것처럼 ‘돌아오지 못한 국군포로’중 상당수가 북한에서 강제노역을 당하고 있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지난 6월 22일 조성태국방장관도 현재 북한내 국군포로는 1만9천여명에 이른 것으로 추정되며, 그중 3백12명의 명단을 확보하고 있다고 증언한바 있다.
이상과 같은 제반사실로 보아 북한내에 아직도 상당수의 국군포로가 있음은 분명하다 하겠다.
납북자 송환문제는 어느 의미에선 이산가족 문제보다도 더욱 화급하고 절실한 문제이다. 왜냐면 이산가족 문제는 피차에 전쟁이 낳은 숙명적인 비극이지만, 납북자 문제는 북한의 대남전략에 의해 무고한 시민과 그 가족집단이 너무도 억울하게 일방적으로 그 삶 전체를 짓밟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산가족의 한숨 뒤에는 남몰래 피눈물을 흘리는 또 다른 납북자와 그 가족이 있다는 점을 똑똑히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정부는 이산가족상봉문제는 그대로 꾸준히 추진해 나가면서 납북자송환문제에도 보다 적극적인 의지와 관심을 가지고 문제해결에 적극 나서기를 강력히 촉구하는 바이다.
/박종순(정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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