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2-17 04:41 (Wed)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기고
일반기사

[기고] 잊을 수 없는 8월의 그날들

◇ 망국의 설움 이겨낸 손기정

 

인류가 유사이래 서로 이해관계를 다투며 각 시대마다 사회체제와 생활문화를 만들고 그것들을 떠받쳐 주는 사상을 엮은 총체가 바로 역사이다. 과거의 태반 속에서 태어난 우리에게 8월은 잊을 수 없는 역사로 가득하다.

 

국치일과 제11회와 25회 올림픽 그리고 제55주년 광복절 등이 모두 8월에 있었으니 그 환희와 설움의 획을 더듬으며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려 보고 그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한다.

 

1910년 8월, 조선이 패망했다. 우리민족은 일본에게 주권을 빼앗겨 인간대우를 받지 못하는 고난의 역사를 시작해야 했다.

 

그러나 또 다른 8월에 우리는 손기정이라는 불세출의 마라톤 영웅으로 인해 감격을 만끽했다. 1936년 8월, 독일 희대의 독재자 희틀러가 자기의 권위와 민족의 우수성을 지속하기 위해 개최한 제11회 세계 올림픽대회에서 손기정은 마라톤에 참가해 우승, 2천3백만 조국 동포들의 가슴을 후련하게 해주는 쾌거를 이뤘다.

 

주지하다시피 손기정 선수는 당시의 지성인(일본 명치대학 법과 출신)답게 경기 후 외국기자가 ‘무서운 속도와 신기록을 낸 비결’을 묻자 “인간의 육체란 불굴의 의지와 정신에 따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불가능한 일을 하게 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불굴의 의지와 정신은 독립을 향한 의지와 정신으로 해석돼 억눌려 살아온 국민들의 가슴을 더욱 뿌듯하게 했다. 손기정 옹은 우리 민족의 기상을 세계 만방에 유감없이 떨쳤으며, 이민족 치하에서 고통받고 있는 우리 민족에게 해방을 향한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시켜준 쾌거였다.

 

◇ 바르셀로나에서 피와 땀으로 이뤄낸 금메달의 감격

 

왜정 치하에서 벗어날 때도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던 1945년 8월이었다. 조상들의 한 맺힌 절규와 환희에 찬 만세가 전국 방방곡곡에 메아리 친 47년의 세월이 흐른 후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치러진 제25회 올림픽 마라톤 경기는 4천5백만 국민들을 흥분케 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역사적인 날이며, 8월의 고열에도 흐트러짐 없이 이겨야 한다는 의지와 투지의 열정으로 숨가쁜 레이스를 펼치며 일본 선수를 막판에 따돌리고 우승한 황영조 선수의 쾌거이기에 더욱 값진 기쁨이었다. 손기정 선수가 스포츠로 세계를 제패한 56년이 흐른 후 영원한 숙적 일본을 이긴 또 하나의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승전보였다.

 

강원도 삼척의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황영조 선수는 알려진 대로 씨름을 거쳐 고교 때부터 육상을 했으며, 연습을 하던 중에도 얼마나 고달팠으면 달리는 자동차 밑으로 들어가 버리고 싶은 충동을 수없이 받았다는 후일담이 있다. 그러다가도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잠시도 연습을 게을리 할 수가 없어 꼭 마라톤의 세계 제패로 성공하자는 굳은 신념이 자신을 올림픽 역사의 반석 위에 자랑스럽게 올려놓은 것이다. 그가 남 모르게 흘린 피와 땀의 결정이 주는 교훈은 한국인의 자긍심을 심는데 부족함이 없었으며, 자신의 신분을 상승시켰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가 이뤄낸 우승의 영예는 평지돌출의 봉우리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들은 기억하며, 황영조라는 봉우리가 솟아오른 것은 우연이 아닌 자기와의 생사를 건 격렬한 싸움의 결과인 것이다.

 

◇ 한 맺힌 이별이 눈물로 정화된 제2의 광복절

 

우리 민족이 21세기에 맞이하는 첫 만남의 광복절. 눈물바다를 이루며 감동의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 55주년 기념행사는 지난날의 광복절과는 또 다른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존재하고 있는 분단의 조국 땅에서 반세기 동안 생이별을 당하고도 생사의 소식을 몰라 밤이나 낮이나 가슴만 태우고 살았던 눈물의 세월이 이제야 매듭이 풀려지면서 지난 6월 남북의 정상들이 만나 이산가족들의 한을 풀어주는 6. 15 남북공동 선언은 민족 통일의 이정표로 세계사적 의미가 담겨져 있다. 이산 가족들의 상봉자가 100명씩으로 최종 확정되면서 희비가 엇갈리고 운명의 소용돌이가 있었지만, 그래도 이만큼이라도 어디냐 ? 생사여부를 알고 만나는 가족은 가족대로 그 기쁨을 필설로는 다하지 못하고, 50여 년 품어온 슬픈 소원을 다음으로 미루는 7만여 가족들은 망연자실하면서도 새로운 상봉의 희망을 안고 내일을 기다릴 수 있어 이제 어떤 어려움이 닥쳐온다 해도 여한이 없다는 이산가족들의 절규의 한을 품도록 우리 다같이 두 손 모아 빌어드리자.

 

수많은 이산 가족들이 생사를 모르는 현실의 아픔이 치유될 수 있는 길을 찾아 정부나 민간단체들은 공식 창구를 통해 하루라도 빨리 서둘러 수시로 상봉할 수 있도록 상설면회소를 설치하여 이산의 아픔을 가진 우리 민족 누구라도 한 맺힌 눈물과 감격의 눈물이 정화된 감정으로 환하게 웃으며, 살아가도록 지혜와 힘을 모아보자. 강대국들의 장단에 서로가 상반된 이념으로 부모형제들끼리 등돌리고서 살아온 슬픈 그날들을 되돌리며 애끓는 사연 속에서 살아 있어준 것만도 감사하게 느낀다는 어느 팔순 노인의 밝은 표정을 보면서 저렇게도 밝고 순수한 모습을 어디에서 다시 볼 수 있을까?

 

한 세기에 걸쳐 점철된 슬픔과 기쁨의 교차가 서울과 평양에서 팔월의 태양아래 펼쳐진 그 날을 기억하면서 이제는 우리 민족 7천만의 소원인 통일된 조국을 기다리며,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제2의 광복을 기원해 본다.

 

/김형중(벽성대 교수)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