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토마토입니다. 혹시 제가 어느 철에 나오는 농산물인지 아시나요? 여러분들은 사시사철 먹을 수 있으니 제 생일이 언제인지는 관심이 없으시겠지요. 저는 여름철에 난답니다. 그런데 요즘은 제철에 나면 괄시를 받아요. 참 슬픈 일이랍니다.
요즘은 사람이나 과일이나 철을 모르는 것 같아요. 이른봄에 여름 참외가 노랗게 시장바닥에 쌓여 있는가 하면 한겨울에 빨간 딸기가 손님들을 부르고 있어요. 사람들은 딸기가 봄에 나고 참외와 수박이 여름에 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욕구를 참고 기다리지 못해 미리미리 앞당기고 싶어하지요.
아이들 교육도 마찬가지지요. 요즘 영재교육에 관심을 가지는 부모들이 영재교육은 태어나자마자 시켜야 한다고 생각해 생후 6개월의 아이들에게 교육을 시킨다면서요. 현재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학원이나 과외를 통해 몇 개 학년의 과정을 건너뛰어 미리미리 앞서가는 학습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어디 농산물이나 교육만 그런가요? 사회의 전반적인 추세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잖아요. 빠르지 않으면 소외되고 속전속결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진다고들 생각하지요. 이런 흐름에 뒤질세라 음식문화도 점점 속성화 되어가고 있지요. 인스턴트 식품이나 패스트푸드가 그렇지요. 주문만 하면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바로 먹을 수 있어 참 편리하지요. 배달음식도 최대한 빨라야 소비자들이 좋아하구요. 이젠 몇 분 안에 배달되지 않으면 돈을 받지 않는다고 큰소리치는 음식점도 생겼다고 하더군요. 갈수록 참을성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생각해보세요. 여러분들이 빨리빨리를 외치는 것이 무엇 때문인가. 어렵게 생각할 필요도 없지요, 뭐. 간단히 말하자면 먹고살기 위해서가 아닌가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여러분들은 먹고살기 위해서 먹는 것을 마구 소홀히 하는 것 같아요.
제철이 되면 자연스럽게 크는 것을, 자랄 조건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억지로 자라게 하려니 비료와 농약, 성장호르몬을 더 많이 치지 않으면 안되겠지요. 게다가 햇빛을 많이 받아야 하는데 계절을 앞서 하우스에서 크게 되니 햇빛 대신 전등불빛이라도 받아야 자랄 수 있잖아요. 그러니 아까운 에너지만 소비되지요. 영양가도 더 없어요. 제맛도 나지 않구요. 언제나 맛볼 수 있으니 새로운 맛을 느끼는 감각도 둔하게 되지요. 참는 힘도 없어져요. 그러니 계절에 앞선 음식을 너무 좋아하지 않는 것이 훨씬 좋아요.
식물들은 씨앗 하나를 싹틔우기 위해 온 우주의 기를 다 동원한답니다. 제철에 나오는 음식을 먹어야 농약을 덜 친 것을 먹을 수 있고, 그 철에 맞는 하늘과 땅의 기를 받아 한 계절을 잘 지낼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답니다. 그것이 바로 신토불이라는 것이지요. 자기가 살고있는 땅에서 난 제철음식을 먹어야 올바른 몸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고 보니 요즘 철없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 철없는 음식만 먹고살아서 그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무리 빨르게 움직여야 살아갈 수 있는 사회라고 하지만 우리 조상들의 느긋한 마음을 이어받아 철든 음식으로 철든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군요. /전주 한울 생활협동조합 이사장 이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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