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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메아리] 함께 가야만 하는 길

 

 

 

지난 주 토요일, 길을 걷다가 쌀값 보장과 개방 농정 철폐 및 정부의 중장기 쌀 대책 철회를 요구하며 거리를 행진하는 농민들의 행렬을 만났다. 그 중의 한 농민 가족이 나를 보더니 대열에서 빠져 나와 인사를 했다. 부안에서 쌀 농사를 하는 가족이었다. 동참하지 못하는 데에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느끼며 나도 인사를 했다.

 

 

작년 12월에 배추값 폭락에 분노하는 농민들을 보고 가슴이 아팠는데, 이번에 또 절망에 빠진 그들을 보니 가슴이 저려 온다.

 

 

100여 년 전 동학농민혁명 때 그들은 생존을 위해 학정에 항거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1930년대에 씌어진 소설 '상록수'를 보면 그 당시의 농업환경 역시 매우 열악했음을 엿볼 수가 있다.

 

 

경제는 현재 그때보다 엄청난 수준으로 발전했지만 그에 비해 농촌환경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지난 30년간은 쌀이 모자라는 상태였는데도 정부는 저미가(低米價) 정책으로 농민들을 저소득층으로 내몰았고, 이제는 풍년이 들었는데도 쌀이 남아돈다는 이유로 그들을 벼랑 끝에 서게 했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이후 농산물 개방이 확정되면서 농촌은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제 쌀을 전면 개방하는 시기가 되면 상황은 지금보다 더 절망적이리라.

 

 

1991년 소련이 붕괴되었을 때, 쿠바는 큰 타격을 받았다. 미국의 경제봉쇄정책으로 그러잖아도 어려움을 겪고있던 터에, 소련이 무너지니 그 동안 소련에서 들여오던 화학비료, 농약, 트랙터나 기계부품 등의 공급이 중단되었고, 게다가 식량의 60%를 수입에 의존해오다가 막히게 되니 그야말로 식량위기라는 비상사태에 돌입하게 되었다.

 

 

그들은 특별시기라는 이름으로 식량자급을 최우선 과제로 하는 농업의 대전환을 도모하게 되었다. 그들은 맨손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즉 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법으로 짓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1980년대부터 그들은 이미 비료와 농약에 의존한 대규모 농업이 병충해 발생, 수질오염, 토양의 굳어짐, 토양침식, 생산감소, 환경오염 등의 피해를 초래한다는 문제점을 깨닫고 연구를 해오던 터였으므로 유기농업으로 전환하는 작업은 쉬웠을 것이다.

 

 

그들은 마침내 식량자급에 성공했으며, 이로 인해 쿠바의 유기농조직인 GAO는 스웨덴 의회에서 수여하는 '바른생활상'(대안적 노벨상이라고 함)을 받음으로써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았고, 21세기의 새로운 모델로 우뚝 서게 되었다.

 

 

우리 농민들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늘 악순환으로 되풀이되고 있는 이 상황에서 더 이상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정부에서 강한 의지를 가지고 농민의 생존권을 보장해주는 대책을 적극 세워야겠지만, 농민들도 정부에만 의존하지 말고 자구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지금 풍년이 들어서 쌀이 남아돈다고 하지만 농약과 비료를 치지 않은 유기농쌀은 전국적으로 모자라는 형편이다.

 

 

유기농업으로 전환을 한다면 수입쌀과도 차별성이 있고, 가격도 어느 정도 보장받을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땅과 물 등 환경을 살려 우리 국민과 후손들에게 건강한 삶터를 물려줄 수 있으니 얼마나 떳떳하고 흐뭇한 일이랴.

 

 

이 길은 농민만이 걷는 길이 아니라 온 국민이 힘을 합해 함께 가야만 하는 길이다.

 

 

/ 이덕자 (전주 한울생활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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