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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메아리] 독선의 정치 포용의 정치

 

최근 내가 읽은 책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을 꼽아 보라고 한다면 단연코 "예수는 없다(현암사 간)"가 그 첫 번째이다. 캐나다에서 비교종교학을 가르치고 있는 오강남 교수가 쓴 이 책은 그 도발적인 제목만큼이나, 독자가 기독교 신자이건 아니건 간에 우리가 믿고 있는 종교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지금 믿고 있는 종교는 '예수 자신의 가르침'인가, 아니면 '예수에 관한 서구 신학자들의 가르침'인가? 우리가 지금 따르고자 하는 것은 '예수의 말씀'인가, 아니면 '예수를 대리한 교회의 말씀'인가? 다른 나라에서도 성경을 하늘에서 뚝 떨어진 책으로 여기고 그 신화적 어구 하나 하나를 신의 음성으로 생각하며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중세적 종교관을 유지하고 있는가?

 

 

하지만 내가 이 책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신학적 논쟁이 아니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기본 바탕에는 주류(主流) 종교로 자리잡은 한국 기독교의 맹목적 신앙과 배타주의적 자세, 그리고 몸집 불리기에 여념이 없는 한국 교회의 성장 제일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있다.

 

 

지난 1992년에 고(故) 변선환 박사가 한국에 팽배한 기독교 배타주의를 비판하고 종교 다원주의를 선창하다가 신학교 학장직은 물론 목사직까지 박탈당한 사례가 있었다. 그 이후 10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이 책에 대한 반응은 한국 기독교계와 신자들이 얼마나 성숙했는지 여부를 판가름하는 척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 서구 신학계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종교간의 대화를 강조하고 있고 종교다원주의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한다. 굳이 1961년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혁명적 선언을 언급하지 않는다 해도, 단군상을 훼손하고 절에 불을 지르는 모습이 아니라 추기경이 사찰을 방문해 법문을 하고 스님이 성당에 초청돼 강론을 하는 모습에서 우리 사회의 구원(救援)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다원주의'와 '포용의 철학'은 비단 종교의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정치와 사회의 영역에서 더욱 절실하다. 그만큼 우리 사회 곳곳이 맹목적이고 배타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는 반증이다.

 

 

아직도 가정의 중심은 남성이어야 한다고 믿는 남성 근본주의자, 아직도 냉전시대의 논리를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이념 근본주의자, 세상은 오직 시장의 원리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고 믿는 시장 근본주의자, 과거의 것을 모두 부정하며 자신들에 의해서만 세상이 개조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개혁 지상주의자 등 수많은 근본주의자가 있다. 우리 사회가 좀 더 열린 사회가 되려면 이러한 근본주의적 독선부터 청산돼야 할 것이다.

 

 

김대중 정권의 마감이 채 1년 반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권을 포함하여 사회 각층에는 증오와 적대, 충돌과 혼미의 자욱한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다. 여야도, 재계도, 학계도, 노동계도, 교육계도, 언론계도 심지어 관료사회도 "이번 정권만 끝나면 두고 봐라", "죽지 않으려면 재집권해야 한다"는 피해의식과 적대의식이 널리 퍼져 있는 듯하다. 내년 5월과 12월에 전국적인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어 한국사회 내부의 편가름·적대의식은 더 깊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럴 때일수록 포용의 정치가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그리고 자기 주장의 상대성을 인정하고 상호공존을 모색할 줄 아는 탄력적인 리더십을 절실히 원하고 있다. 이 탄력적인 리더십은 자신의 세력이 자신을 비판하는 세력보다 항상 절대적으로 강하지 않다는 겸손한 인식에서 출발한다.

 

 

/ 이왕준 (인천 사랑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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