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07 05:18 (Fri)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새벽메아리
일반기사

[새벽메아리] 이성과 감성의 조화(로운 삶)

 

 

 

격정·환희·감동―.

텔레비전과 신문 지면은 물론 사이버 공간까지도 온통 월드컵의 물결이다. 온 누리는 붉은 색깔 하나로 홍수를 이루고, 남녀노소 할것없이 '대·한·민·국'의 네 음절과 '짝짝-짝짝-짝'의 다섯 번 박수가 범람하고 있다.

 

 

엊그제 16강의 벽을 넘어 기적같은 8강 진입을 성취한 직후, 자정 가까운 무렵에 팔달로와 객사 주변 풍경을 둘러보았다. 가슴이 벅차서 한 마디도 표현할 수 없었다. 우리가 언제 이렇게 벅찬 감격을 누린 적이 있었던가. 우리가 언제 이렇게 하나된 적이 있었던가.

 

 

그야말로 온 국민이 한몸이며 한마음인 것을 실감할 수 있었고, 그리고 자꾸만 울먹이는 격정의 눈시울을 진정할 수가 없었다.

월드컵 4강 격정·환희·감동―.

 

 

내친김에 4강까지도, 그리하여 마침내 우승까지도 달성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신화 창조의 순간에 광주 거리는, 저 일본의 거리는 과연 어떤 풍경을 연출할 것인가. 작은 공 하나의 위력이 온 지구촌을 이렇게도 울고 웃게 하고, 지옥에서 천국으로 뒤바뀌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 글은 4강 진입여부가 판가름난 뒤에 게재될 테지만―)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이 순간 {서경}의 한 구절이 떠오르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만초손 겸수익(滿招損 謙受益)', 곧 모든 일은 가득 차면 기울고, 따라서 겸손하면 이익이 따른다는 뜻이다. 달도 차면 기우는 법, 삼천대천세계의 만상삼라가 극도로 번성하면 반드시 쇠미해질 날도 있지 아니한가.

 

 

우리가 4강 진입에서, 아니면 우승의 문턱에서 실패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감격스러운 것은 당연하지만, 우리 모두가 한쪽 면만을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16강전 연장경기에서 스웨덴의 슈팅은 골대를 맞고 튀어나오고, 세네갈의 공은 골대를 맞춘 뒤 빨려들어 가는 것을 우리는 보았다. 이 경우 두 나라의 실력 차이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승자에게 꽃다발을 바치고 축복의 박수를 보내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진정한 후원자는 패자를 위로하고 감싸안을 수 있는 훈훈한 가슴의 소유자이리라.

 

 

내용과 형식의 조화. 영혼과 육체의 쌍전.

 

 

가장 바람직한 아름다움은 조화와 겸비와 병행에 있다. 축구를 통해서 하나된 이 마음이 조국의 번영을 위하여 총화를 이룰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나라의 정치가 멋지게 이루어지고 있다면, 축구 하나로도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도약과 비상을 얻어낼 수 있었을 것을. 이 정권의 지도자들이 '만초손 겸수익'을 깊이 새기지 못한 점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흥분의 도가니, 열광의 파도, 환호성의 홍수에서 어떤 이성적 사고나 냉철한 분별력도 읽을 수 없었다면 내가 잘못 판단한 것일까. 진정한 승자는 이성과 감성의 조화가 없이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환희와 감동의 이면에는 좌절과 실의의 그림자도 엄연하게 존재한다.

 

 

우선 나부터 좀더 진정할 필요가 있다. 안분(安分)과 함께 세상살이의 순경 역경을 통찰할 줄 아는 지혜를 터득해야겠다.

 

 

패자에게 따뜻한 위로를

 

 

도덕과 과학을 함께 갖추어야 하듯이, 정신과 육체를 아울러 건강하게 가꾸어야 하리라. 온전한 인격은 지·정·의의 통합에서만 가능하다. 우리의 태극전사들에게 박수를 보내면서도, 프랑스나 포르투갈을 생각해 보고, 일본과 이탈리아를 헤아려 보아야 할 것이다. 겸손과 양보에는 덕이 있고, 관용과 사랑에는 보다 큰 성취가 함께할 것이다. 그러므로 {서경}은 '겸수익'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이용숙(시인·전주교대 교수)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