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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창] 점잖은, 너무나 점잖은

이경재 편집국장

 

 

'전북은 존재가치도 없다'
전북에 대한 중앙정부의 인식이 어느 정도인가를 묻는 말에 중앙정부의 한 고급 공무원은 이런 반구로 응대했다. 전국의 각 자치단체들이 경쟁하면서 서로 끈끈하게 인맥을 다지고 지역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하다시피 하는 곳이 정부 각 부처다.

 

예산과 사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북에 대한 중앙 정부의 관리들 인식이 이런 정도라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전북은 존재가치도 없는가

 

왜 이런 현상이 나오게 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정권이 바뀌면 국정 틀을 개조하는 작업이 이뤄지기 마련이고 그 과정에는 힘의 논리가 끼어든다. 뒤숭숭하고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제 밥그릇은 자기가 챙겨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마땅히 찾아먹어야 할 밥그릇을 챙기지 않고 방치해 둔다면 다른 한켠에서는 이를 홀대하거나 얕잡아볼 게 뻔하다. 밥그릇 챙기기는 정치권이나 지역을 대변하는 사람들이 해야 하는데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찾아먹을 것도 못찾아 먹고 우리 몫을 다른 지역에 빼앗겨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참여정부 들어 호남소외론이 불거졌을 때 호남의 실체는 광주나 전남이었지 전북은 아니었다. 성난 호남민심을 달랜답시고 청와대와 정부인사들이 맨 먼저 찾아간 곳이 광주였다. 정찬용 청와대 인사보좌관이 그쪽 지역의 언론사 편집 보도국장들에게 한번 만나자는 청을 보냈지만 그들은 이를 거절, 대통령 측근의 체면을 사정없이 구겨놓았다.

 

인사정책에서 소외된 실상을 대통령에 제대로 알리지 않는 사람하고는 면대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지만 따지고 보면 호남을 소외시킨 게 괘씸하다는 액션이었다. 어느 장관이 전남을 방문해 언론사 사장들과 자리를 같이 했을 때에도 언론사 사장들은 호남소외 문제로 그 장관을 '혼쭐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런 시기에 청와대 춘추관에서는 기자들 사이에 '전북은 뭐하느냐'는 비아냥이 나왔다. 똑같이 소외당하는 판에 전북은 발길에 채여도 성질 한번 내보지 못하고 '오∼, 예'만 되뇌이고 있으니 그런 비아냥이 나올만하다. 점잖은, 너무나 점잖은 양반고을의 전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후.  행자부는 2.3급 인사에서 교육에 들어간 전남출신 2급공무원을 본부로 끌어들이는 '파격인사'를 선사해 공직사회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행자부 본부에 1.2급 공무원의 자원이 없기는 전북이나 전남이나 마찬가지인데 유독 전남에 대해 후의를 베풀고 있다. 반면 전북의 인적 자원은 외곽으로 빼버리고….

 

3년동안 국가예산을 1백억원이나 지원해 주는 소도읍 선정도 전북과 전남은 아주 대조적이다. 전북은 진안 정읍 두곳을 추천해 진안 한곳이 선정됐지만 전남은 추천한 4곳 모두 선정돼 전남의 입을 함박만큼 벌어지게 만들었다. 시장 군수들이 엄청난 로비를 벌일 만큼 메리트가 있는 사업이다. 탈락된 곳과 선정된 곳의 개발격차는 현격할 것이기 때문에 자치단체들이 눈독을 들였고 행자부는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주는 식으로 전남에 눈 딱 감고 4개를 배려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성 낼 줄도 모르는 기질

 

이런 사례를 열거하는 건 전남을 시샘해서가 아니다. 왜 우리 전북은 가만이 앉아 강건너 불구경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떨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치단체간 경쟁시대에 성낼 줄도 모르고 쏘아붙일 줄도 모르는 점잖은 기질이 싫은 것이다. 정부를 탓해야 하는 건 두번째 일이다.

 

참여정부에서 이른바 잘 나간다는 장치인들은 어디서 무얼 하는지, 지역을 대표해 일하겠다고 사자후를 토해 내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갔는지 분통터지는 일이다. 5월은 내년도 사업과 예산의 밑그림이 완성되는 시기이다. 이런 식으로 가만이 앉아 있다간 예산정책에서도 전북은 존재가치도 없게 될 것이다.

 

/이경재(본사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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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재 kjlee@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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