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의원들은 유권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라는 명제를 말하고 싶다. 의원들이 유권자를 두려워하네, 어쩌네 하는 말은 사실 유권자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의원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그렇게 말하면 자신들이 아주 겸손하게 보이는 줄 알거나 주민에 의해 당선된 사람으로 기본 양식을 갖춘 줄 알기 때문이다.
사실 의원들이 유권자를 두려워하기는 한다. 그러나 그것은 선거와 관련되었을 때뿐이다. 의원들이 의회에서 의사를 결정하는 과정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유권자를 우습게 아는가를 바로 알 수 있다. 유권자들이 반대하는 사안들이 속속 집행되고, 시민단체가 저항하는 조례안들이 거의 통과된다. 유권자들의 바람, 유권자들의 분노, 유권자들의 허탈감 같은 것은 의원들의 귓가에 부는 바람만도 못한 것이 되고 만다.
의원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의회 안에서의 권력 관계, 지역 사회에서 이해득실을 주고받는 인간 관계, 의회와 집행부간의 거래이다. 그것들이 먼 곳에서 중구난방하고 있는 유권자들의 의견보다 더 가깝고, 자신의 영향력을 스스로 과대평가하는 시민단체보다 확실하게 영향력을 미친다. 거기에 의원이 된 자신의 성격과 가치관이 권위가 되어 누구의 말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의원이 주민의 대표라는 것도 어불성설일 수밖에 없다.
물론 의원들이 필사적으로 매달려 의결하는 것 안에도 다 유권자의 뜻이 있다. 그러나 어떤 유권자들인가. 단적으로 말하면 업자와 지주들이다. 지난 1년 동안 전주시의회의 결정을 보면 이런 결론을 내지 않을 수 없다. 전주시의원들이 과연 전주시의 미래와 환경 그리고 공동체적인 삶에 대한 비전이나 책임이 있는 사람들인가 생각을 달리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린벨트 해제의 투사가 되더니 과거 의회가 어렵사리 규제해온 고도제한을 폐지했다. 자기 지역에 장례식장이나 장애인 시설이 들어선다면 허가청인 구청에 주민들을 끌고 들어가 삭발식을 하는 사람이 시의원이다. 시민단체가 뒤늦게나마 관심을 갖고 한 목소리로 반대했던 경전철 사업 관련 예산 승인을 놓고 수 개월 변죽만 올리다가 결국 집행부와의 담합에 이용한 것 같다는 방송까지 나오게 만든다.
무엇보다 압권은 주민의 일조권과 조망권을 침해하는 방향으로 건축용적율을 확대시켜준 헤아릴 수없이 넓은 아량이다. 제정조례안 입안을 다반사로 할 수 있지도 않은 역량을 가지고 고도제한 폐지 청원에 앞장서거나 용적율을 더 못 넓혀서 집행부의 안을 수정까지 하는 그런 눈물겨운 수고를 전주시의회가 하고 있는 것이다.
내세우는 명분이야 어찌 되었건 그들이 그렇게 하는 목적은 뻔하다. 평생 의원을 하고 싶어서이다. 그것이 지역 이기주의가 되었건, 한 두 명 목소리 큰 지주나 호형호제하며 지내는 업자의 이익을 보호해 주는 것이 되었건 민원을 해결한다고 나서주면 또 당선될 줄 알기 때문이다. 의원들이 이렇게 유권자에게 하나하나 분산되어 있던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쓰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보고 앉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원들은 결코 수치심이나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 의원들의 이러한 당당한 의식을 표현해주는 말이 있다. '공동책임은 무책임'이다. 시민사회와 언론이 비판을 하고 지역의 주민들이 항의를 하면 의원들은 대답한다. '내'가 그런 것이 아니라 그것은 '의회의 결정'이라고.
/이재천(전 전주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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