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 춤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당혹스런 표정이 얼핏 스쳤다.
"뭐라고 규정할 수 없지만. 저에게 춤은 언어와는 또 다른 표현수단이지요."
현대무용가 최재희씨(34). 그는 현대무용단 'C.D.P'(Coll Dance Project)의 대표다. 2002년 6월 창단공연을 통해 씨디피란 이름을 내놓은지 이제 2년이지만 새내기 무용단의 걸음마는 힘차다. 최대표를 비롯해 탁지혜 임은주 한유경씨 등 4명이 일구어가는 이 신참 무용단의 열정으로부터 지역의 춤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즐겁다.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의지를 모은 덕분이지요. 지역에서 무용단을 이끈다는 것은 생각보다도 훨씬 어렵지만 이 과정까지도 춤을 성숙시켜가는 바탕이라고 생각해요."
무용단을 창단하는 일은 용기가 필요했다.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힘을 준 것은 이혜희 김원교수(전북대 무용과)다. 스승들은 '춤'으로 삶을 꿈꾸는 제자들을 일으켜 세우고, 용기를 주었다. 전북대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한 선후배 젊은 춤꾼들의 굳은 약속은 비로소 실현될 수 있었다.
"첫무대를 올릴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해요. 춤으로 지역의 공연문화를 변화시켜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확인한 것은 큰 행복이었어요."
삼십대 중반에 들어선 최씨에게 무대는 남다른 의미다. 짧지 않았던 방황 속에서 다시 찾은 춤은 그에게 삶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했기 때문이다.
93학번, 무용과 1회 입학생이었던 그는 8년 만에야 대학을 졸업한 늦깎이다. 1학년을 반학기 지냈을 무렵 찾아온 갈등과 번민으로 휴학을 선택했던 그는 4년을 무위도식하며 지냈다. 삶의 무력증은 여전히 덜어지지 않았고, 당연히 희망도 없었다. 학교로 돌아가는 일 역시 용기가 필요했다. 1학년 2학기, 대학생활은 그에게 새로운 출구였다. 곡절있었던 만큼 춤이 그에게 주는 행복과 힘은 기대보다 컸다.
"4년이란 세월이 짧지는 않았지만 저에게는 꼭 필요한 시기였어요. 그만큼 춤을 절실하게 바라보게 되었죠."
그의 춤은 메시지가 강하다. 주제로 앞세우는 형식적 메시지가 아니라 울림이 있고, 그래서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공감할 수 있는, 그런 내면적인 메시지다. 다양한 테크닉의 구사, 원숙한 기량을 목표로 삼지만 그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춤의 세계는 언어로서의 기능을 완성하는 것.
"예술은 더 이상 자기 만족을 위한 표현의 수단이 아니죠. 일방적이든 쌍방향이든 그것은 무엇인가를 전달하는 통로가 되어야 해요." 감동과 메시지를 주지 못한다면 자기 고통을 동반하는 치열한 과정 자체가 무의미해진다고 말하는 그는 춤양식의 탈장르화를 흥미롭게 받아들이면서도 유행처럼 밀려왔다 사라지는 온갖 형식들의 흐름에 합류하는 일은 스스로 경계한다.
CDP는 지난해 서울 무대에 입성했다. 무용계의 평은 기대 이상이었고 최대표는 특별한 눈길을 모았다.
오는 4월 열리는 제 23회 국제현대무용제와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인 '제 4회 임프로비제이션 댄스 페스티벌'에 무대 경험이 굵지 않은 그가 연달아 초청된 것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과분한 무대예요. 임프로비제이션 페스티발은 초청된 다섯명 무용수들이 솔로나 듀엣으로 즉흥춤을 이어가는 형식이어서 특별한 순발력과 기량이 요구되지요. 더 치열한 연습이 있어야 해요."
그는 혹독한 자기연습만이 미래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다. 2월 한달간 뉴욕 맨하탄의 댄스스페이스의 연수에 참여하는 그는 지난 24일 예정대로 큰 가방 매고 뉴욕으로 떠났다. 트레이닝 옷 차림이 잘 어울렸던 그는 인터뷰 말미, 좋은 테크닉을 얻어 오겠다고 했다. 밝은 웃음이 미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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