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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바우골 화가들의 봄 이야기

완주군 용진면 신지리 용복마을에 있는 범바우마을 작업공간 앞에선 조영대 씨(왼쪽)와 최영문 씨. (desk@jjan.kr)

 

그날, 봄바람이 좋았다. 해가 기울자 바람은 사나와졌다. 나지막한 마을 뒷산 언덕빼기 위에 '발딱' 올라앉은 화가의 작업실 귀퉁이는 햇빛 한 자락이 붙잡고 있다. 작업실은 안팎이 모두 그림이다. 액자 안에 갇혀있는 풍경과 창밖 풍경은 모두 작가 소유다. 그래서 늘 행복한 범바우골 화가들이 작업실을 공개했다. 2년만의 결행이다.

 

조영대(45) 최영문(40)씨. '작업실전'과 '일곱 번째 개인전'이란 이름을 앞세운 전시회로 화가의 봄은 한껏 푸르다.

 

"작업 공간을 있는 그대로 보이는 일은 어쨌든 용기가 필요했어요. 특별한 준비 없이 작업실 문을 열어놓는 단순한 과정인데도 마음이 내내 설레었습니다."

 

전주시내에서 봉동 쪽으로 난 길을 차로 달려 30분. 범바우골은 완주군 용진면 신지리 용복마을에 있다. 6년전 먼저 들어온 후배 최씨의 작업실을 드나들면서 복숭아 밭 널찍한 땅을 눈독 들였던 선배는 3년전, 넉넉한 작업실 마련의 꿈을 이루었다. 윗집 아랫집 밤바우골 화가들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전업작가인 조씨와 미술교사(전주중학교)인 최씨는 작품경향이나 생활스타일이 서로 다르다. 조씨가 자연에 주목하여 서정적 세계를 추구하는 반면, 최씨는 실험적인 작업으로 사람살이의 흔적을 다양한 표현으로 담아낸다. 조씨의 작품이 풍경의 세계를 깊이로 천착해가고 있다면, 최씨는 새로운 형식으로 모색한 신선한 표현 언어를 만들어낸다. 그런 과정으로 이어낸 조씨의 작품에는 관조와 사유의 세계가 있고, 최씨의 작품에는 독창적인 발랄함과 생명이 있다. 서로가 갖지 못한 것을 갖고 있다는 것은 선후배 화가의 관계를 긴밀하게 유지시켜 주는 또하나의 끈이다.

 

두 화가의 작품은 2년전 '범바우골 이야기'로 오픈 작업실전을 열었을 때와는 또 다른 변신이다. 조씨의 풍경화에서 작가의 내밀한 세계는 더 깊어졌다. 나목과 꽃과 들판의 풍경은 자연에 심취한 화가의 의식세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외연에 얽매인 풍경의 재현은 이제 그의 것이 아니다. 이미지만으로 충분히 전달되는 언어는 나무와 꽃과 풍경, 그들의 존재 의미에 밀착되어 있다.

 

화폭에 쓰여진 물감도 단출하다. 빨강 파랑 노란색. 화폭 위 무수한 색채들은 이들 삼색의 어울림만으로 생명을 얻었다.

 

"자연은 막연한 것 같지만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요. 어떤 틀에 얽매이지 않고도 분명한 언어를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은 색채를 새롭게 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색에 대한 확신은 그렇게 얻어진 결실이지요.”

 

물감의 물성을 극복해 얻어낸 색의 세계로 한껏 자유로워진 그의 화폭을 두고 화가는 비로소 자연의 생명을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산 그리메 물 그리메'를 주제로 개인전을 잇대어 낸 최씨의 집, 잔디가 깔린 앞마당에는 달과 산, 해와 물, 새가 모였다. 우수와 경칩이 오기 전에 가지치기로 버려지는 복숭아밭 나뭇가지를 얻어두었다가 제작한 소품 설치 작업이다. 오아시스를 활용한 꽃꽂이 방법이 도입된 설치작품들은 화가의 출근길 물주기로 생명을 다시 얻거나, 그 자체로 고정됐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관객을 즐겁게 하는 미덕은 이번 전시에서도 예외 없이 발휘된 셈이다. 실내 전시실 역시 부지런한 그의 작업 결실로 빼곡이 들어찼다. 사람살이를 주제로 한 평면작품들은 변화가 있는 듯 없는 듯 친숙하지만, 흙으로 빚어낸 인물 군상 설치 작업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화가의 특별한 세상 읽기다.

 

봄바람도 쐬고, 그림 감상하며 작가 이야기도 듣는 특별한 봄나들이. 지난 주말부터 시작된 범바우골 작업실 전시(전화261-1576, 262-5196)는 11일까지 열린다.

 

마을로 내려오는 길, 화가가 뒤에서 크게 소리쳤다. "칼 들고 다시 오세요." "예?" 웃음 띤 화가가 가리키는 길 옆을 둘러보니 밭 이랑 사이 사이, 지천이 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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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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