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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窓]미디어 선거의 함정

이경재 편집국장

 

갓 탄생한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한때 70%까지 껑충 뛴 건 '탄핵국회' 탓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미디어의 공헌이 있었다. 매스미디어 특히 영상매체는 지난 3월12일 벌어진 탄핵국회의 장면을 마치 영화처럼 생생하게, 그리고 반복해서 보여주었다. 다양한 특집과 토론, 해설기사들이 뒷받침됐다. 그 결과 지난 1월11일 창당된 열린우리당은 숫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두달만에 국민지지율 1위의 자리에 올라 총선까지 이어지고 있다. 오늘날 매스미디어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인시켜 준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5대 대선때에는 DJ(김대중 전 대통령)가 한 TV 아침프로그램에 나와 사별한 전 부인 이야기를 하던 도중 잠시 눈물을 비쳤는데 이 장면이 주부들의 심금을 울려 150만 여성표를 모았다. 실제 DJ의 지지율은 당시 20.7%였지만 이 방송 이후 28.9%로 높아졌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16대 대선때에는 노무현 후보의 눈물이 흘러내리는 장면을 담은 정치광고가 등장해 감성을 자극하기도 했다.

 

과거 정치의 중심 역할은 정당이었지만 이젠 미디어가 그 자리를 차고 앉았다. 이른바 미디어 선거, 미디어 정치시대가 뿌리내리면서 이미지 업(UP)에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이미지 정치의 성공사례로는 영화배우 출신인 레이건을 꼽는다. 그에겐 매일밤 암기해야 할 큐카드가 주어졌고 대통령 임기 대부분을 스크립터들이 제공한 대본에 따라 연기했다. 잡담이나 농담, 전화통화까지도 각본화됐다. 실제로는 무능했지만 미디어 덕분에 그는 유능하게 비쳐졌다.

 

개정된 새 선거법에 따라 치러지는 이번 총선도 미디어 선거로 특징지울 수 있다. 유권자와 접촉할 수 있는 기회와 수단이 대폭 억제된 반면 TV를 통한 선거운동의 문이 크게 열렸다. 국민 세금을 방송사에 지원, 토론회를 열도록 함으로써 정견을 발표하고 후보들을 비교평가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미디어 선거는 그 폐단도 많아 함정에 빠질 우려가 있다. 정치적 능력이나 정책 등의 본질적인 문제보다는 피상적 이미지에 의해 후보가 가려질 개연성이 크다. 국회의원이 용모와 표정, 말솜씨, 연기력에 의해 가려져서야 되겠는가. TV 앵커출신인 정동영 의장의 화려한 이벤트 정치, 박근혜 대표의 눈물, 추미애 선대위원장의 삼보일배와 휠체어 등등은 매스미디어의 눈길을 잡기에 충분하다. 그렇지만 이미지만 남을뿐 도무지 '본질'을 얻을 수 없다는 게 문제다.

 

미디어 선거의 핵심인 방송토론회는 또 어떤가. 유권자들이 시청하기 어려운 시간대 편성과 천편일률적 진행 때문에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밤 10시쯤 편성해서 후보들끼리 침 튀기는 논쟁의 장을 마련, '밑천'이 드러나도록 확 뜯어고쳐야 생산적인 토론회가 될 것이다. 사회자의 역할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그럴때 재미있다는 반응이 나오고 상업성도 확보될 것이다.

 

유권자들이 이미지 정치, 미디어 선거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상당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부실한 내용물이 그럴듯한 포장지에 싸인 걸 꿰뚫어 보는 안목과 꼼꼼히 살피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정치인만 탓할 게 아니라 그 정치인을 뽑은 건 유권자 자신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국회의원은 연기 잘 하는 사람, 잘 생긴 사람, 말 잘하는 사람을 뽑는 게 아니다. 어떻게 살아왔고 지향하는 바가 무엇이며 도덕적 인프라는 갖춰져 있는지, 그리고 정책과 공약은 무엇이며 내용과 질이 어떻게 다른지 끈질지게 추적할 때 이미지의 허상도 벗겨질 것이다. 이는 유권자의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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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재 kjlee@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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