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말보다 '아빠'라는 말을 더 많이 해본 아이였습니다. 소풍을 가장 기다리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소풍을 가장 싫어하던 아이였습니다. 삐뚤삐뚤 엉망의 김밥이 창피했습니다. 운동회가 열리는 날이 되면 차라리 아파 학교에 안 나왔음 했습니다. 각자 자기네 엄마를 기다리며 있던 아이들 중 "너희 엄만 언제 오셔?"라고 말이라도 건네는 아이라도 있으면 곧 싸움으로 이어져 늘 엉망이 되던 운동회였습니다. 그리고 점심이 되면 바쁜 아빠 대신 동네 아줌마가 싸오신 점심으로 운동회를 마쳐야 했습니다. 그렇게 학교가 끝나 집에 돌아오면 텅 빈 집에서 혼자 TV를 켜고 아빠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아빠가 일이 늦게 끝나 늦게 들어오시는 날이면 아빠를 기다리다 지쳐 혼자서 잠이 들기 일쑤였습니다.
우리 집은 아빠, 나 이렇게 두 가족뿐입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엄마의 잦은 가출로 인해 결국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부모님은 이혼을 하셨습니다. 이혼이 무엇인지도 왜 엄마와 따로 살아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왜 엄마가 보고싶다 말해서는 안 되는지도 몰랐습니다. 그저 아빠가 싫어하기에 말하지 않았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학년이 올라갈수록 이혼이 무엇인지 알고부터 왜 엄마와 따로 살아야 하는지, 왜 엄마가 보고싶다고 말하면 왜 안 되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유없이 엄마가 싫어졌습니다. 증오감과 혐오감만 늘어났습니다. 그런 아버진 설마라도 제가 어디가 엄마없어 그런다는 소리라도 들어 상처받을까 늘 다른 아이들보다 배는 더 잘해주셨습니다. 아빠와 나 둘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어느 누가 부럽지도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엄마 없다 놀리고 따돌려도 집에만 오면 행복했습니다. 아빠가 있기에.
내가 막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항상 아빠가 집을 비우시는 날이면 큰댁에 가자곤 했기에 그 날도 아빠가 집을 비우신다 하셔서 큰집에서 자는 날이었습니다. 그 날은 이유없이 아팠던 날이기도 하였습니다. 이유없는 고열로 밤새 잠을 못 이룬 채 눈물이 범벅이 된 베개를 안고 겨우 잠이 들었던 날이었습니다. 다음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그리 내키지 않았습니다. 무척이나 무거웠습니다. 방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려 했던 내 몸이 멈춰버렸습니다.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아빠와 낯선 아줌마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며 늦은 아침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빠의 말이 이어졌습니다. "들어와서 인사드려라. 새 엄마 되신다." 나에게 한 마디 상의도 없으셨습니다. 처음 보는 낯선 아줌마에게 아빤 새엄마라며 인사를 시키셨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아빠를 미워한 날이었습니다. 그 날 밤, 아빠를 미워하는 마음과 함께 밤새도록 내 눈물샘은 쉬지도 않고 눈물을 쏟아내었습니다.
며칠이 안되어서 나의 가족은 둘에서 셋으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나의 새엄마. 또 한 번 엄마란 존재를 미워하고 증오하게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때까지 내 손으로 아무 것도 해보지 않았습니다. 시키는 이도 없었습니다. 가르치는 이 또한 없었습니다. 그때까지 모든 일은 다 아빠가 하셨습니다. 하지만 새 엄마가 오고부터는 아니었습니다. 아침이면 밥도 해야했고 세탁기도 돌려야 했으며, 청소도 해야했습니다. 모두다 새엄마가 나가기 전 시키고 가신 일이었습니다. 새엄마가 해야할 일을 나에게 시키는 거 같아 더더욱 새엄마가 싫어졌습니다. 새엄마께서는 절대 칭찬이라곤 없으셨습니다. 늘 나의 부족함을 탓하기 일쑤였습니다. 내게서 아빠를 빼앗아간 계모, 자신은 아무것도 안 하면서 늘 나에게 일을 다 시키는 계모. 차가운 얼음 계모.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새엄마에 대한 미움만 쌓여가고, 나에게도 뒤늦은 사춘기라는 게 다가왔습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집에 들어가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새 엄마가 싫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삐뚤어지게 나가면 새엄마도 결국엔 집에서 나갈 줄 알았습니다. 지쳐 돌아갈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습니다. 점점 삐뚤어져 가는 내 모습을 보고 지치기는커녕 더욱더 잔소리만 늘어만 갔고 사사건건 내 일에 참견하는 날이 늘어만 갔습니다. 그럴수록 나는 더욱더 나쁜 행동들만 골라하였습니다. 학생으로선 하지 말아야 할 것들만 골라했습니다. 하지만 지치는 쪽은 새엄마가 아닌 나였습니다. 그리고 내 일에 일일이 참견하는 새엄마가 더욱더 미워져야 하는데, 나도 모르는 새 점점 좋아지고 있었습니다. 애써 그걸 부정하려 해도 부정할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어느 날은 너무 많이 변해버린 나를 느낀 뒤 깜짝 놀라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아이가 이젠 누가 시키지 않은 일들을 하고 있고, 혼자서 생각해 판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새엄마께서 왜 내게 그리도 칭찬을 아끼셨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딸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건 수학 공식도 아닙니다. 영어 해석 문제도 아닙니다.
오로지 나의 엄마만이 간직한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자기 방식대로 가르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나의 짧은 방황은 끝이 나고 지금은 세상 어느 모녀보다 다정한 모녀가 되었습니다. 아직까지 나는 나의 새엄마에게 죄송하다 말 한 번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엄만 자신의 딸이기에 모든 걸 용서하셨습니다. 그런 엄마의 사랑을 눈으로 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게 또한 아닙니다 오로지 가슴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딸을 사랑하는 따뜻한 엄마의 사랑을. 오늘도 엄마의 잔소리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서초희(부안여상 3학년)
▷[글을 읽고]코끝 찡한 이야기... 방황모습은 추상적
성장기에 있어 가장 소중한 '가족이야기'이다. 초희는 어린 나이에 뜻하지 않은 부모의 이혼으로 아빠와 단둘이 살아가는 처지가 된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지극한 보살핌으로 그리 외롭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새엄마가 생기게 되면서 초희는 방황하게 된다. 아버지도 빼앗기고 하지 않던 일도 해야된다. 사춘기에 겪었을 고통은 직접 드러나진 않지만 남들보다 훨씬 심했으리라 짐작하게 한다. 얼마간 겪던 방황은 자신의 깨달음으로 끝나고 새엄마와 화해하고 둘만이 느끼던 행복을 셋이 누린다는 이야기이다. 이 글은 쉽사리 드러내기 어려운 부모의 이혼과 재혼 새엄마와의 갈등을 솔직하게 그리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혼자 어려움을 헤쳐가는 모습은 코끝을 찡하게 한다. 좀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초희가 생각해봐야 할 점은 물론 제한 된 원고 이어서 그랬겠지만,
방황하는 모습이 너무 추상적이다. '학생으로선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든지 또한 새엄마와의 갈등 해소 부분이 안일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용범(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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