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진 정치부장
"점점 희끗해지고 듬성듬성 빠지는 머리카락, 늘어만 가는 허리둘레, 줄어드는 소득…. 이 모든 것과의 대면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마침내 피할 수 없는, 예전의 자신과는 전혀 다른 '노인'이란 새로운 존재로의 전환을 맞은 것이다. "
집없는 사람에게 집을 지어주는 해비타트운동으로 유명한 미국의 39대 대통령 지미 카터가 자신의 책 '나이 드는 것의 미덕'에서 한 말이다. 그는 재임기간중 치적만 놓고 보면 '실패한 대통령'중 하나로 꼽힌다. 국제인권분야에서 성공을 거두었지만 국내정책의 실패와 외교분야의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퇴임후 오히려 더 호평을 받고 있다. 세계 곳곳을 돌며 평화의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고, 활발한 자원봉사활동으로 가는 곳마다 대 환영이다. 가장 '성공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그런 그도 나이 들며 느끼는 신체적 변화와 노인 등에 쏟아지는 편견 등으로 "나이 드는 것이 두려웠다"고 고백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잘 나가는 미국의 전직 대통령이 그럴진대 필부(匹夫)들이야 말해 무엇할 것인가.
지난해 이맘때쯤 전주노인복지병원을 취재차 들른 적이 있다. 전주시 삼천동에 자리한 도내 유일의 치매전문병원이다. 이곳에는 65세 이상의 치매와 중풍(뇌졸증) 환자 150여명을 수용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중증환자로 35%는 기초생활수급자여서 무료이지만 65%는 치료비와 간병비 등으로 매달 120만원 가량을 내는 유료환자였다. 보건복지부가 노년 삶의 질을 위해 전국에서 5번째로 설립해서 그런지 전망도 좋았고 시설이 깨끗했다. 모악산이 눈앞에 펼쳐져 외견상 노인을 위한 파라다이스처럼 보였다.
하지만 병원내부로 들어가 보니 딴판이었다. 일부 활동하는 분들도 계셨지만 중증환자실에는 침대마다 식물인간 같은 환자들이 즐비하게 누워있었다. 파리한 형광불빛 아래 숨만 쉬는 모습이 고요한 바다속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 하루종일 누운 상태에서 콧줄을 통해 미음만을 넘기는 모습에서 죽음의 냄새가 강하게 묻어났다.
원불교 교무인 이 병원 강대행 원장은 "환자들의 85%가 기저귀를 차고 있는데 이것을 뜯어 먹거나 과격한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려줬다. 또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돌보는 일이 쉽지 않다"고 말했었다.
한국보건사회복지연구원에 따르면 노인 10명중 8-9명은 노인성 만성질환을 갖고 있다고 한다. 특히 65세 이상 노인의 21%인 80여만명은 치매 중풍 등에 걸려, 목욕 세수 식사 옷갈아입기 등을 혼자서 하기 힘들어 요양시설의 보호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중 병원이나 요양시설에서 보호를 받는 노인은 2만3천여명에 불과하다.
어찌 보면 요양시설에 있는 분들은 그래도 선택된 분들이다. 나 몰라라 방치되거나 집안에서 학대받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그런 요양시설에 있는 노인들도 20-30%는 자식과 연락이 끊긴 상태라고 한다. 부모가 죽어도 찾아오지 않는 자식들도 점점 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저소득층일수록 노인성 만성질환자가 많다는 점이다.
병원을 나서며 나이 드는 것이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들이 바로 나의 부모요, 20-30년후 나의 자화상이었기 때문이다.
2일은 유엔이 정한 노인의 날이었다. 곳곳에서 행사가 열리고 언론도 고령화에 대한 보도가 요란했다. 나이 드는 것이 두렵지 않은 사회,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죽을 수 있는 사회는 요원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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