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진 정치부장
오늘은 봄이 대문 앞에 선다는 입춘이다. 24절기 가운데 첫째로, 새봄과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다. 요새 며칠 입춘을 시샘하는 폭설이 도내 곳곳에 쏟아졌지만 땅밑에는 봄기운이 밀려오고 있다.
어렸을 적 입춘이 다가오면 작고하신 아버지께서는 집안팎 청소를 마친뒤 지필묵을 꺼내셨다. 입춘방을 써 붙이기 위해서다. 아버지는 형제들을 불러 먹을 갈게 하고 선지에 글씨를 쓰도록 했다. 그때 글귀가 입춘첩으로 많이 쓰이는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이 봄에 기쁘고 좋은 일 많아라)이었다. 먼저 신문지를 펴놓고 몇번을 연습하게 한후 선지에 옮겨 썼다. 하지만 먹물을 듬뿍 묻힌 붓끝은 왜 그리 제멋대로이던지…. 삐뚤빼뚤 하다 보면 손과 옷이 먹물로 시커멓게 돼 버렸다.
그러면 아버지는 어김없이 붓을 쥔 손위에 당신의 손을 겹쳐 잡고, 바르게 쓸 수 있도록 도와 주셨다. 그리고 나서 당신은 국태민안(國泰民安), 부모천년수 자손만대영(父母千年壽 子孫萬代榮), 소지황금출 개문만복래(掃地黃金出 開門萬福來) 등을 한참동안 쓰셨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서 그것들을 대문과 문설주에 붙이셨다. 나는 그 글귀를 보면서 마치 내가 쓴양 어깨가 으쓱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버지의 온기가 지금도 살아있는듯 싶다.
지난해는 전북에게 엄동설한 같은 한 해였다. 굵직한 현안치고 되는게 없었기 때문이다. 새만금간척사업이 그렇고 방사성폐기물처리장이 그러했다. 또 동계올림픽도 물 건너가고 말았다. 14년을 끌어온 새만금사업은 올 들어서도 백척간두에 서 있는 형편이다. 두번에 걸쳐 2년6개월 동안 중단된 바 있는 이 사업이 또 다시 세번째 중단위기를 맞고 있다. 도민들은 오늘 서울 행정법원이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지,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92년부터 준비했던 동계올림픽 후보지 유치도 지난해말 강원도로 돌아갔다. 도민들의 줄이은 서명도 무주에서 서울까지의 행진도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말았다. 뒤늦게 뛰어 든 강원도에 연거푸 되치기를 당해 버렸다.
방폐장문제는 더 심각했다. 동남아를 휩쓸어 버린 쓰나미처럼 부안 민심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400여명의 전과자를 양산했고 주민과 경찰 등 1000여명이 넘는 부상자를 낳았다.
그러나 지난해 연말 전북에는 기쁜 소식도 없지 않았다. 태권도공원 무주유치가 성사되었고 LG전선 등 기업유치에도 밝은 빛을 보였다. 천신만고 끝에 유치한 태권도공원은 절망감에 빠져있던 도민들에게 커다란 희망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제대로 된 성지를 만들어 세계 180개 국가, 5000만명에 이른다는 태권도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일만 남았다. 그 일은 올해부터가 시작이다.
올들어 우리 경제는 불황의 긴 터널에서 탈출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내 증시가 활황세를 보이고 잔뜩 움추러 들었던 소비시장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제조업실사지수(BSI)도 봄바람을 타고 있고 400만명에 육박하던 신용불량자도 줄어들고 있다. 전체 임금근로자의 37%인 540만명에 이르는 비정규직문제나, 청년실업, 양극화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해결의 단초는 우리가 갖고 있다.
머지않아 메마른 나뭇가지에 움이 트고, 얼어붙은 강물이 다시 소리를 내고 흐를 것이다. 껍질속에 갇혀있던 벌레들도 몸을 일으켜 새 봄을 맞을 것이다. 입춘방을 쓰는 마음으로 대길(大吉)과 다경(多慶)을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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