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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메아리] 농업고등학교 간 딸아이

올해 고등학생이 되는 딸아이랑 지난달에 신입생 학부모 연수를 1박2일 다녀왔는데 그때 보고 듣고 한 감동이 여태 계속되고 있다.

 

농업고등학교라 구석진 시골에 학교가 있었다. 농업고등학교가 시골에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감동 먹을 일도 아니다. 감동은 엉뚱한데서 시작되었다.

 

입구에서 학부모를 안내하는 재학생들이 인사를 하는데 ‘맑았습니다.’라고 하는 게 아닌가.

 

‘이놈들아 맑긴 뭐가 맑아? 날이 흐렸구먼.’ 이라고 했더니 자기들은 인사를 그렇게 한다고 했다. 그럼 저녁인사는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고요합니다.’라고 알려주었다.

 

생각할수록 인사말이 기특(?)했다.

 

맑고 고요하게 살아가라는 말일까? 세상은 본래 맑고 고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일까? 날씨는 갰다 궂었다 해도 마음은 늘 맑게 닦으라는 가르침인가?

 

그 학교의 독특한 인사법은 시작에 불과했다. 학부모연수가 진행되는 1박2일 동안 이와 유사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노래를 배우는 시간에 꼴찌가 되라는 노래를 불렀다. 어설픈 1등보다는 당당한 꼴찌가 되라고 했다. 교장선생님은 말하기를 훌륭한 사람, 위대한 사람이 되지 말고 그냥 평민이 되라고 했다. 보통사람이 되라는 말인데, 오래전 군사정권의 대통령이 자신의 쿠데타경력을 감추기 위해 사용했던 기억과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학생들에게 상식을 알고 예의를 갖춘 그냥 보통사람으로 살아가라고 한 그 교장선생님은 정작 ‘보통교장’같아 보이지 않았다. 학생들이랑 뒤섞여 책걸상도 나르고 식판을 닦고 녹차를 탔다. 교장실도 따로 없고 교무실에 다른 선생님들 책상과 같이 교장책상이 있었다.

 

개교 50주년을 맞는 학교의 역사와 전통이 굴절 없이 계속될 수 있었던 원동력을 보는 듯 했다.

 

학생과 학부모들이 한 가정씩 나와서 인사를 할 때도 순서가 독특했다. 자료집에는 1번부터 26번까지 기록되어 있었지만 나오는 순서는 앞에서 한사람 뒤에서 한사람씩 나오게 했다. 학교가 내세우는 ‘무두무미(無頭無尾)’라는 교육이념이 떠올랐다. 선배들은 신입생들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했다.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대표가 참석한다고 한다.

 

하룻밤을 자고나서 딸아이에게 물어봤다. 아빠는 학교가 마음에 드는데 너는 어떠냐고 했더니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실망했어요. 너무 절망적이에요.’라는 게 아닌가. 이 학교를 가고 싶다고 해서 입학시켰는데 절망적이라니? 여자(!)에게 또 배신을 당하는구나 싶어 가슴이 철렁했다.

 

‘애들이 실상사작은학교가 뭔지도 모르고 이우학교를 아는 애도 하나밖에 없어요.’라는 게 딸아이 절망의 수준이었다. 아빠의 수준을 비웃는 순간이었다.

 

/전희식(농부·전주라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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