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란 전주시정발전연구원 연구원
‘천조자조자(天助自助者)’
‘Heaven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이 경구들은 언어는 달라도 모두 ‘목표를 정하여 노력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이룰 수 있다’는 의미를 지닌 것으로 세계의 많은 이들에게 좌우명으로 새겨지고 있다. 옛 선비들에게도 중용(中庸)의 ‘誠者天之道也 誠之者人之道也(성실함은 하늘의 도요, 성실하게 노력함은 사람의 도이다)’는 신념이자 삶의 지침이었다.
갑자기 한자에 영어까지 써가며 새삼스레 경구의 의미를 들먹거리는 것이 요샛말로 조금은 쌩뚱 맞은지도 모르겠지만, 애써 중용까지 빌어 선인들의 신념을 되새기고자 하는 것은 요즘 우리 사회에 팽배해져 버린 방관자적 풍조와 여기에 묻혀 사라지고 있는 자생적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이다.
전주시의 도심 거리에는 ‘걷고 싶은 거리, 영화의 거리, 차이나거리, 약전거리, 웨딩거리, 공구거리’와 같은 이름들이 붙어 있다. 이 중에는 행정에서 인위적으로 거리를 정비하고 붙인 이름도 있고, 하나둘 유사업종들이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붙여진 이름도 있다. 이름이 자생적인 것이든 인위적인 것이든 어울리기만 한다면야 별 차이 없는 일이겠지만, 자생거리와 그렇지 않은 거리에서 배어 나오는 느낌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가끔씩 거리를 걷다보면 잘 정비되지 않아 허름한 모습인데도 강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곳이 있는가 하면, 어떤 곳은 막대한 예산으로 말쑥하게 치장되었는데도 어떤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 거리가 있다. 굳이 그 이유를 찾자면야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나는 ‘자생’이란 단어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일명 ‘자생거리’라고 불리는 거리에는 오랜 세월 자신들의 거리를 살리려고 애써 온 상인들의 마음과 노력이 배어 있다. 그리고, 그런 마음과 노력이 모여 강한 생명력을 발산시키고, 재생의 잠재력과 활력의 원천이 되고 있다. 하지만, 후자의 거리에는 이런 느낌이 없다. 오히려, 사과나무아래서 입 벌리고 있듯 행정에 대한 의타심만을 키워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곳마저 있다.
이는 비단 도심 거리에서의 현상만은 아니다. 때때로 자신들의 마을을 정비하는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데도 그저 바라만보고 있는 주민들을 볼 때가 많다. 그러나, 주민참여 없이 만들어지는 계획이란 오류가 발생되기 십상이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놓기란 만무하다보니, 사업이 끝난 뒤에서야 주민들은 불평을 늘어놓거나 책임소지를 따지기에 바쁘다. 하지만, 누구의 잘못이냐를 떠나 모든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에게 남게 된다. 결국, 자신의 방관자적 태도가 스스로에게 피해를 가져오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최근, 도시계획분야에서는 ‘건축협정제’라는 용어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건축협정제는 주민들이 스스로 협정을 만들어 자신들의 동네에 유흥주점이나 룸살롱, 고층건물, 나홀로아파트 등을 들어서지 못하게 하거나 마을 경관을 가꾸기 위해 지붕의 형태나 색깔, 간판 등에 대해 자율적으로 규정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도시들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추진되어 지금은 정착단계에 이르고 있다.
건축협정제의 도입에 대해서는 아직 이견이 많지만, 이 제도의 취지처럼 이제 우리사회도 행정주도의 도시계획에서 벗어나 주민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도시계획의 시대로 바뀌어 가야 한다는 점은 공감되고 있다. 단호하게 말하자면, 주민들은 자신의 마을과 도시를 가꾸는데 더 이상 방관의 자세를 고수해서는 안 되며, 행정 또한 이제는 주인을 제쳐두고 앞장서거나 방관하고 있는 이들의 등을 떠밀면서까지 사업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앞으로 행정이 두 손 놓고 있어도 좋다는 것은 아니다. 행정은 ‘주도’가 아닌 ‘지원’의 자세로 전환하여 언제라도 주민들을 도울 수 있도록 채비를 갖춰두어야 한다.
이와 같은 역할 바꾸기가 정착된다면 우리의 도시는 선진도시로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고, 우리 사회에는 노력하는 자들이 성공하는 성숙된 문화가 정착될 수 있을 것이다.
/윤정란(전주시정발전연구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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