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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철의 건축이야기] 여유 연출하던 옛건축

한눈에 다 들어오는 것보다 조금씩 ‘보일 듯 말 듯’하면 사람들은 더 관심을 갖게 된다. 그래서 호기심 많은 사춘기시절에는 ‘보일 듯 말 듯’하는 세상이치 때문에 밤잠을 설치기도 하고 보일 듯 하다가도 뒤돌아서면 금방 닫혀버리는 소년소녀시절의 그 알 수 없는 마음 때문에 애를 태우기도 했을 것이다. 또 조금만 더 성찰하면 쉽게 깨닫는 것 같다가도 주위여건에 따라서 이리저리 마구 흔들리는 인생철학 때문에 혼란스러워 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 인생만 그런 것이 아니다. 간단하게 찾아가서 음풍농월하며 잠시 쉬어가던 정자(亭子)도 마찬가지다. 옛날에는 산모퉁이 한 쪽에 다소곳이 비켜서서 정말 ‘보일 듯 말 듯’하게 건물을 배치했는데 지금은 대부분 산봉우리 한 정수리에 육각정이나 팔각정으로 우뚝우뚝 서있다. 전망대가 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산천경계를 찾아가서 쉬고 싶은 것은 비슷하지만 집을 짓는 조영사상이 달라졌기 때문일까.

 

옛날 한옥의 담 높이도 생각할수록 참 절묘하다. 그렇게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다. 말 그대로 휴먼스케일이 돋보이는 인간중심의 설계다. 골목길을 그냥 지나다닐 때는 잘 보이지 않다가도 조금만 관심을 갖고 발뒤꿈치를 꼿꼿이 쳐들면 집안이 슬쩍 들여다 보인다. 그것도 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정말 ‘보일 듯 말 듯’하게 건물을 배치해 놓았다.

 

다 보여주지 않고 일부러 ‘보일 듯 말 듯’하게 만들어서 조금씩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건축기법은 사찰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주문에서 금강문과 사천왕문을 지나 만세루와 대웅전까지 죽 이어지는 축선은 자연지형을 따라 그저 간단하게 늘어놓은 것 같으면서도 자세히 살펴보면 곳곳마다 세심한 장치가 숨겨져 있다. 현대건축처럼 한꺼번에 다 보여주기보다는 또 높은 담으로 외부세계와 완전히 차단해 스스로 단절을 선택하기보다는 행인들의 관심도에 따라서 때로는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가려지기를 원했던 그 여유와 정취가 새삼 그리워진다.

 

/삼호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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