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참패 직후 갑자기 조기총선을 승부수로 띄운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가 사면초가(四面楚歌) 상태에 빠졌다.
슈뢰더 총리와 사회민주당 지도부가 당초 내년 9월로 예정됐던 총선을 1년 앞당기자고 제안한 기본 이유는 어차피 지방선거 참패의 주원인인 경제난과 대량실업이 내년 연방 하원의원 선거 전 까지 크게 나아지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었다.
아울러 보수 야당이나 상당수 일반 국민들 뿐아니라 사민당 내 좌파가 서로 다른 이유에서 공격하는 자신의 개혁정책을 계속 펴나가기 어려운 상황에서 과연 정책방향이 잘못되거나 총리로서 부적합한 인물인 지 물어야 할 필요성도 느꼈음직하다.
어차피 어렵다면 자신이 단순한 정파적 인물이 아니라 국가 장래를 고심하는 지도자임을 부각시키는 한편 보수 야당으로의 정권 교체 위기의식을 고양, 사민당을 결집시키고 총선 준비가 안된 야권을 분열시키면 승산이 있다는 생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계산이 현실적인 장애물들에 부닥치고 녹색당과의 적녹(赤綠)연정에 균열이 생기면서 슈뢰더 총리와 사민당으로선 새로운 위기에 처한 형국이다.
사민당의 낮은 지지율과 최대의 `텃밭'에서도 39년 만에 처음 패배한 일, 상원을 야당이 장악해 주요 법안들이 하원을 통과해도 상원에서 부결돼 국정 운영에 혼란이 예상된다는 점 등은 `정치적'으론 신임을 물을 수 있는 조건이 된다. .
하지만 법률적 그리고 현실적으로는 불신임과 의회 해산이 그리 간단치 않다. 독일 헌법 상 조기 총선을 위해선 총리에 대한 불신임 결의안이 상ㆍ하원에서 각각 통과되고,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여 의회를 해산해야 한다.
총리에 대한 불신임은 총리 개인 또는 구체적 주요 정책에 대해 물을 수 있다. 히틀러 시대에 의회 해산요건을 완화해 나치 독재로 치달았던 경험이 현재의 헌법 조항에 의회 해산과 조기총선 요건 강화로 반영돼 있는 것이다.
문제는 7월 1일 께로 예상되는 연방하원 불신임 투표 대상을 슈뢰더 총리 개인에 대한 것으로 할 경우 논리적으로 불신임된 이후 실시될 올 가을 총선에서 슈뢰더가 총리 후보로 나설 명문이나 근거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결국 스스로의 정책을 불신임해달라고 요구해야 하지만 사민당과 녹색당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하원에 적녹연정이 추구해온 정책을 내세우기 어렵다.
그나마 유력한 안은 녹색당이 반대해온 법인세 인하 정책인데 이 역시 녹색당이 인하정책 자체엔 반대하지 않지만 세수 결손을 어떻게 보충할 것이냐는 점에서 사민당 당권파와 의견이 다르다는 점에서 불신임을 묻기가 궁색하다.
크리스타 자거 녹색당 하원 원내총무는 "슈뢰더의 불신임 투표를 위해 쓸 데 없는 희생양을 만들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녹색당 주요 당료들은 "슈뢰더가 편법을 강행하면 헌법소원을 제기해 막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보수 야당인 자유민주당은 `일시적 필요성 때문에 헌법을 개정하는 일은 말도 안된다"며 비판하는 입장이다.
조기 총선 추진 발표 이후 이미 녹색당과 사민당은 연정 상대를 직간접 비판하며 각자의 살 길을 모색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민당은 야당과의 대연정 가능성도 내비치고 있으나 여론 조사결과는 야당 단독 집권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더욱이 늘 `찻잔 속의 태풍'으로만 무시해왔던 사민당 내 좌파가 선거에서 약진할 가능성이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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