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진(원불교 익산중앙교구장)
대기업에 다닌 남편이 사원감축으로 실직되어 먹고 살려니 어쩔 수 없어서 백여만원 남짓 받고 자그마한 회사에 나가고 있었다. 하루는 출근하면서 양복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아내에게 준다. 아내가 무슨 돈이냐고 물으니 남편은 내 비상금인데 당신의 모습을 보니 너무 핼쑥해서 안쓰럽다며 오늘 혼자 부패에 가서 소고기라고 실컷 먹고 오라고 했다. 만 원짜리 한 장을 펴서 주는 남편을 바라보던 아내의 눈가엔 눈물이 고였다. 고마움과 사랑의 눈물 이였을 것이다.
여보 나 힘들지 않아요. 당신만 이렇게 내 옆에 있어 주면 난 행복해요. 남편은 출근하고 아내는 내가 못 먹고 산지 하루 이틀이 아닌데 하루 세끼 밥 먹으면 되지 하고 노인정에 가시는 아버지 손에 만원을 쥐어 드리면서 아버님 제대로 용돈한번 못 드려서 죄송해요. 작지만 이 돈으로 그 간에 신세진 친구 분하고 약주나 나누세요. 돈을 받은 아버지는 며느리가 너무 고마웠다. 어려운 살림을 힘겹게 끌고 나가는 며느리가 너무 미안했는데 만원까지 받으니 너무 고마워 노인정에서 실컷 며느리 자랑을 했다. 그리고 그 돈을 봉창 깊숙이 넣어 두었다.
설날 할아버지는 손녀의 세배를 받고 미리 준비해둔 만원을 세배 돈으로 주었다. 손녀는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우리 할아버지 최고라고 자랑했다. 봄에 학교에 들어갈 손녀딸은 할아버지한테 받은 세배 돈을 부엌에서 상을 차리는 엄마에게 주면서 엄마 책가방 얼마야 이 돈으로 나 학교가면 책가방 사줘 하며 엄마에게 주었다. 엄마는 그래 우리 지연이 착하지 지연이 학교 가면 이 돈으로 예쁜 책가방 사주지 딸을 칭찬하고 뽀뽀해 주었다. 돈을 받은 아내는 남편이 내색은 안하지만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고 또 도시락 반찬이 매일 신 김치 조각만 싸주는 것이 미안해, 여보 요즘 힘들어 하시는데 내일 맛있는 음식 한 끼 드세요. 라는 메모쪽지와 함께 돈 만원을 남편 속주머니에 넣어 드렸다.
이렇게 하여 돈 만원짜리 한 장이 남편에게서 아내 아내에게서 아버지 손녀로 돌고 돌면서 가족에 사랑을 심어주고 행복을 채워 주었다. 이런 가정에 인생이 사는 기쁨이 있고 사랑이 넘친다. 요즘 경제가 어렵다고 하지만 있는 사람들은 하루 밤 유흥비로 수백 만원도 날린다고 한다. 허나 입만 즐길 뿐 사랑에 굶주리고 정에 굶주린 공허 한 마음은 그 어디에 가도 채울 길이 없으리라, 알고 보면 물질은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니다. 그 물질이 선한 마음과 결부되면 복되고 악한 마음에 조종되면 화를 자초하게 된다.
얼마 전에 70대의 할머니가 평생 버스표와 음료를 팔아 모은 돈 1억천만원을 서울의 모 대학에 기증했다. 나는 비록 배우지 못했지만 젊은이 들은 부지런히 배워야 한다며 “불교의 자비 정신을 받들어 인성교육에 힘써 달라”고 했다고 대학 측은 말한다. 만일 사후에 천당이 있다면 이렇게 착한 마음으로 살고 간 사람들이 가야 할 곳이리라, 성직자들은 신도들에게 천당과 지옥을 말해 겁을 주기 전에 단돈 만원을 가지고도 사랑과 희망을 심어주고 정의가 흐르는 가정이 되게 하며 사회를 맑혀주고 자비한 마음 갖고 사는 사람으로 인도해야 할 것이다.
/이종진(원불교 익산중앙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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