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성범위 이내의 흔들림 '안전'
강하면 쉽게 부러진다고 한다. 그리고 정말 강한 것은 부드러운데서 나온다고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고급무술은 거의 다 물이 흐르는 듯한 유연한 자세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마치 춤동작 같기도 하다. 중국의 쿵푸가 그렇고, 일본의 유도와 또 우리 전래의 태껸과 국선도가 그렇다.
태풍이 오고 폭풍이 불면 굵은 나무들은 부러지거나 뽑혀나가게 되지만, 그 연약해 보이는 풀꽃들은 그저 흔들리기만 할 뿐, 좀처럼 꺽여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대부분 고산준령에는 비바람에 눕고, 눈에 밟힐 줄 아는 작은 풀꽃들만이 생존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건축물도 마찬가지다. 철근과 철골에다가 거푸집 형틀을 짜고 거기에 콘크리트를 부어넣으면, 콘크리트는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열(水和熱)을 내뿜으면서 단단한 돌덩어리처럼 굳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그 강한 구조체위에 우리는 피아노도 올려놓고, 침대도 올려놓고, 또 아무 불안감 없이 그 위에서 일상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런 콘크리트 건축물도 그냥 가만히 서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이리저리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고 한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고, 거침없이 내려쬐는 태양열에도 알게 모르게 조금씩 제 스스로 신축팽창을 거듭하면서 휘청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믿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대표적인 초고층 건축물로 잘 알고 있는 서울의 63빌딩도 처음 설계당시부터 조금씩 흔들리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최고 꼭대기 층은 무려 30cm씩이나 흔들리고 있는데, 그렇게 거대한 제 몸을 조금씩 흔들어가면서 불필요한 외력을 중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용수철을 잡아당겼다가 놓으면 다시 원상태로 되돌아가게 되고, 고무공을 세게 눌렀다가 놓아도 어느 한도까지는 다시 제자리로 재빠르게 돌아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을 탄성(彈性)이라고 한다. 보통 초고층 건축물은 그렇게 제 높이의 1/500 이내에서 조금씩 흔들리도록 설계하고 있다. 그것이 건축물의 구조에 훨씬 더 안전하고, 훨씬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사람마음도 마찬가지다. 거친 풍파 속에서 때로는 흔들리기도 하고 때로는 넘어지기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라지만, 그것이 일단 탄성한계를 넘어서면 문제가 된다. 오욕칠정의 번민에 시달리다보면 어떤 때는 정말 탄성한계를 훌쩍 넘어서, 다시 되돌아올 수 없는 소성(塑性)상태로 접어드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차라리 당초 설계의도대로 탄성범위 이내에서만 흔들리며 살아갈 줄 아는 저 건축물이 부러워지기도 한다.
/삼호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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