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막 속에서 한미조약 조인
(5월 22일)
①신식군대 별기군 발족
우리나라에 신식군대가 창군된 것은 1881년의 오늘이다. 별기군이란 이름으로 발족했는데 교관은 일본에서 초빙해온 공병소위 호리모토였다. 처음은 100명으로 편성하여 훈련시켰다. 그러나 1882년, 구식군대의 봉기로 일어난 임오군란에 의해 폐지되고 말았다.
②한미수호 조약 조인
한·미 수호통상조약이 정식으로 체결된 것은 1882년의 오늘이었다. 이날 9시30분, 제물포 앞바다에 정박 중인 군함에서 나선 미국 전권대사 슈펠트 제독은 우리 측에서 마련한 임시 장막에 찾아와서 조인을 마쳤다. 우리 측 정사는 신헌, 부사는 김홍집이었다.
③5만 프랑을 빈민에
1885년 5월 22일, 이날은 번개와 우박이 번득이는 궂은 날씨였다. 그러한 속에서도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군중들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빅토리?유고의 유언은 너무도 간결했다. "나는 5만 프랑을 빈민에게 줄 것이다. 나는 신을 믿는다."고 … 그의 명작은 역시 레 미제라블'.
④백정기 의사 순국
조국의 독립을 위해 중국에 망명, 항일투쟁을 한 백정기 의사. 그는 1933년 3월, 상해에서 일본 고위 외교관을 암살하려다가 실패로 나가사키 형무소에서 복역 중 1936년의 오늘, 41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백의사는 전북에서 태어난 농부의 아들이었다.
⑤남편과 딸을 버리고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출연 1939년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은 비비안리는 변호사인 남편과 어린 딸을 버리고, 외간남자와 동거 중이었다. 그 상대는 영국인 명우 로렌스 오리비에였다. 오리비에는 1907년의 오늘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이래 1989년 죽을 때까지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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