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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칼럼] 생명(6) - 정승현

정승현(장계성당 신부)

오늘은 생명에 대한 저의 생각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내 생명은 다른 생명의 희생으로 유지된다는 것이 오늘의 주제입니다. 그렇습니다. 창조주께서는 생명의 희생을 통해 생명이 유지되도록 하셨습니다. 자연계에서는 이를 적자생존 또는 약육강식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는 더 나은 생명체를 출현시키려는 자연의 엄혹한 법칙입니다.

 

인간 생명도 다른 생명의 희생으로 유지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매일 먹는 밥만 해도 그러합니다. 사람은 벼를 타작하여 알곡으로 찧습니다. 흔히는 현미로 먹는 대신 맛을 내기 위해 7부로 깎습니다. 그런 다음 솥에 넣고 끓입니다. 밥이 되면 입에 넣고 침을 섞어 씹어 삼킵니다. 위 속에 들어간 음식은 소화작용을 통해 완전히 우리의 살과 피로 변화합니다. 정미기 속에서, 솥 속에서, 입 속에서, 위 속에서 죽고 또 죽어 우리의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다른 생명을 죽이지 않고서는 내가 살아갈 수 없음을 안다면, 우리 생명의 존재에 대해 뭇 생명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에 걸맞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무렇게나 살아도 좋은 인생은 없습니다. 다른 생명들이 내 생명을 위해 사는 것처럼 나도 다른 생명들을 위해 사는 것 그것이 인생입니다. “자신을 위하여 사는 사람도 없고 자신을 위하여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로마 14,7). 예수께서는 사랑을 이렇게 정의하셨습니다.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 내가 누구를 사랑한다면 기꺼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목숨을 걸지 않고서는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살신성인(殺身成仁)도 같은 말입니다.

 

불교 경전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러 물 속에 뛰어든다고 합시다. 그 결과는 여러 가지일 수 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도 건지러 뛰어든 사람도 다 산다, 물에 빠진 사람도 뛰어든 사람도 다 죽는다, 빠진 사람은 살고 뛰어든 사람은 죽는다, 빠진 사람은 죽고 뛰어든 사람은 산다. 자, 이 가운데 어떤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결과일까요? 답은 사람을 구하러 물 속에 뛰어든 사람은 죽고 물에 빠진 사람은 사는 것이랍니다. 처음 이 답을 들었을 때 저는 고개를 갸우뚱하였습니다. 그러나 좀더 깊이 생각하자 그게 맞는 답임을 알았습니다. 자신이 백퍼센트 죽을 수 있다는 점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감히 물속에 뛰어들지 못할 것입니다.

 

나라와 겨레를 위해 목숨 바친 이들을 기억하는 6월에 다시 한번 우리 자신의 생명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께서는 호국 영령들과 함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바치는 것이다. 나에게는 목숨을 바칠 권리도 있고 다시 얻을 권리도 있다. 이것이 바로 내 아버지에게서 내가 받은 명령이다”(요한 10,18).

 

/정승현(장계성당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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