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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선 무형문화재 방충근 선생의 전수자 방화선씨 "현대적 감각으로 재탄생되길 기대"

2006전라미술연구회 심포지엄 '한국부채의 어제와 오늘'

3일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열린 2006전라미술연구회 심포지엄에서 방화선씨(왼쪽에서 3번째)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desk@jjan.kr)

“일제말에는 태극선 제작이 금지됐는가 하면, 6·25때는 인민군들이 태극선을 모아 불태운다는 소식을 듣고 만들어둔 태극선을 황급히 감추고 피난을 떠나기도 했던 기억이 있어. 일제시대 때는 부채에 국화꽃도 못 놓았지. 국화를 놓으면 잡아가서 징역 살려버려. 그러니 태극선인들 만들 수 있었겠어?”

 

 

태극선 무형문화재 방충근 선생의 딸인 방화선(51, 가나부채공예연구 대표)씨가 태극선의 수난사를 직접 경험한 아버지의 말씀을 이렇게 전했다.

 

3일 오후 2시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열린 2006전라미술연구회 심포지엄 ‘한국부채의 어제와 오늘’. ‘전주에만 남아있는 부채 장인들’을 발표한 방씨는 “선자청에 근무하던 장인들은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당시 부채를 도매로 전국에 공급하던 송지방을 비롯해 삼화상회와 무궁화공예사 등이 자리잡고 있는 지금의 중앙동에 터를 잡았다”고 말했다.

 

그는 “단선 쪽에는 한경필 선생과 그의 제자인 방충근 선생이 주를 이루고, 죽선 쪽에는 문준하 선생과 그의 아버지가 많은 일꾼을 거느리고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중앙동이 발전하면서 부채 장인들은 인후동의 가재미와 안골, 아중리의 석수리로 터를 옮기게 됐다”고 전주 부채의 역사를 생생하게 증언했다.

 

“마지막까지 선자청이 남아있던 경상감영과 전라감영 중 경상감영은 한지 제작의 맥이 끊기면서 자연히 부채를 만들 수 없게 됐지만, 전라감영은 남원과 담양의 풍부한 대나무와 전주 한지의 맥이 이어지면서 조선 말기까지 선자청이 존재했습니다.”

 

방씨는 “전주에만 남아있는 우리 부채의 역사가 새롭게 조명되고, 미적인 형태가 현대적 감각과 어우러져 재탄생되기를 기대한다”는 말로 전주부채의 발전 방안을 제시했다.

 

한편,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엄기석씨(한국전통문화고 교사)는 “부채의 체계적인 연구와 보존을 위해 정부가 부채 박물관을 설립하고 부채 장인의 기술 전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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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휘정 desk@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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