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의 치료
기독교의 핵심 교리 중의 하나가 중생(重生)이라는 ‘거듭남’의 진리다. 불량청년이 마음잡고 건전한 생활로 돌아온 경우에 “그 사람 거듭났어!” 하는 행위의 변화 내지, 개과천선(改過遷善)을 의미할 때도 이런 말을 쓴다. 그러나 기독교의 거듭남은 ‘본질적인 변화’를 말한다. 죄인이 의인이 되는 존재의 변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시한부 법칙에 매인 인간이 하나님의 생명을 전수받아 영원한 생명으로 영생할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백성이 되는 신비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중보자(中保者) 없이 자기 힘으로 득도(得道)하려는 종교들과 달리 기독교 신앙은 중보자인 예수님께서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셨고, 그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모든 죄를 무조건 용서해 주시고 구원해 주신다는 진리를 믿으므로, 전혀 새로운 사람이 되는 은혜의 종교다. 그런 까닭으로 목회를 하다보면 참으로 놀랄만한 일이 많이 일어남을 본다. 본질적인 변화가 하나님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인격과 생활의 경이로운 변화와 기적적인 혁명이 가정과 삶 속에 많이 일어남을 본다.
목사는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라 할 수 있다. 단 내 의술이 아니라 성령님의 치료를 받도록 안내해 줄 뿐이다. 죽음의 문제까지 해결받은 자들이기에 기독교인의 특징은 ‘감사와 희망과 희생적 삶’이다.
가끔 교인들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다.
“목사님, 나 혼자만 행복한 것 같아서 죄송해요”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요” “이혼 직전에 있었는데 은혜 받고 이제는 재미있게 살아요”
싸움과 원망, 불평과 욕구불만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확실히 이들은 별종들임에 틀림없다. 목사의 기쁨이 있다면, 교인들이 진리를 깨닫고 인생의 방향을 제대로 정했을 때의 보람일 것이다. 어느 주일에 교인들이 드린 정성스런 예물 봉투에 이러한 글들이 적혀 있는 것을 보고 ‘신앙은 고매한 인격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저희 가정의 평화를 다시 찾아주셨음을 감사 합니다” “숨 쉬는 순간 순간마다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사랑하심에 감사합니다” “눈을 떠 아침을 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숨을 쉬며 찬바람을 맞게 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오묘하신 말씀의 진리를 사모하게 하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낮 동안에는 낮 동안의 어진 지혜를 주시고, 어둠이 오는 동안에는 그 안에서 지혜를 지키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어찌하여야 그 은혜를 갚을 수 있을까요. 참 감사합니다.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더 거룩한 욕심을 품고 나아갈게요”
이들은 평범한 주부들이요 학생이요 서민들에 불과하다. 우리 교인 가운데 한 분은 술꾼이고 여자관계도 그리 말끔하지 못한, 어떻게 보면 바람둥이 같은 골치 덩어리였던 사람이다. 그가 예수님 앞에 와서 회개하였고 그의 변화는 대단하여 얼굴 표정까지 달라졌다. 그의 딸은 “나는 우리 아버지 같은 남자에게 시집가겠다”고 말한다. 또한 그의 부인은 부군의 달라진 모습에 천국생활을 하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고백하고 있다. 이처럼 본질의 변화가 생활의 변혁을 가져오는 강한 힘을 나는 많이 보았다. 지금도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을 치료하고 계심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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