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하(전북대 명예교수 · 서양사)
일찍이 홉스는 인간의 삶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란 글에서, 인간은 무수한
(細胞)로 되어 있고 각 세포는 살아남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적대관계가 성립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반해 록크는 그의 인간 오성론(悟性論)에서 인간의 호의·우정·협력적 성격을 강조하였다. 그런데 씁쓸하지만 홉스의 이론이 매우 이성적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인간 사회에서는 끝없이 대립·불화·전쟁이 지속되고 있다.
세계의 대전쟁들과 북한의 미사일 발사
그 중에서도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사건들은 아테네·스파르타 동족 간의 펠로폰네소스전쟁, 유럽 본토에서의 신구교 간의 30년 전쟁, 러시아혁명, 아편전쟁, 제1,2차세계대전, 전일의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어느 경우는 안타깝게도 갑작스런 충돌이 대전쟁으로 비화되는 것을 억제할 수없었기 때문이었으며, 따라서 오늘날 북한의 계속적인 미사일 발사는 앞으로 돌이킬 수 없는 돌발사건을 야기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한 국지적 충돌이 대사건으로 비화된 실례를 제1차세계대전에서 찾아 보기로 한다. 한때 영국·프랑스를 제외하고 유럽대륙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던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가는 비스마르크의 정략이 지배적이었던 프러시아와의 패권을 위한 결정전에서 패하고 말았다. 때문에 오스트리아는 세력확장의 방향을 남(南)으로 정했고 마침내는 발칸반도의 중심국가인 세르비아와 충돌하게 되었으며, 이 국지적 충돌이 평화적으로 해결되지 못함으로써 제1차세계대전으로 확대된 것이다.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사건을,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앞으로 불의의 대사건으로 비화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함께, 나는 오스트리아 빈(Wien)대학에서 공부한 경험을 살려 대전에로의 비화과정을 아주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즉,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발칸반도 북부의 자국의 속령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슬라브인들의 저항세력을 억제키 위한 군사 퍼레이드 중에 세르비아 청년의 총격으로 사망 하였다. 오스트리아가 전쟁준비의 미비와 결단력의 부족으로 선전포고를 미룬 한 달 동안의 공백기간에 당사자국들과 강대국들이 국지적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는데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오스트리아는 “적극적으로 대응하라”는 독일 빌헬름황제의 격려에 고무되어 마침내 과격한 최후의 통첩을 보내게 되었다.
국지적 충돌의 세계대전에로의 비화와 북한의 미사일 발사의 심각성
이 때문에 러시아에서는 군부가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고, 슬라브국가가 또다시 쓰러지는 모습을 참아 볼 수 없어 전군동원령을 내렸으며 독일이 요구한 동원령의 철회가 실현되지 않음으로써 곧바로 독일이 러시아에 선전포고하였다. 그리고 프랑스가 알사스로렌을 잃은 한(恨) 때문에 전쟁의 경우 러시아 측에 가담할 것을 분명히 하였고 독일은 또한 대 프랑스 선전포고를 단행하였다. 이 밖에 영국은 국론이 통일되지 않은 상태에서 관망하다가 중립소국 벨기에가 독일군에 점령되는 것을 보고 의회의 만장일치의 결의로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이처럼 오·세 간의 국지적 분쟁은 순식간에 제1차세계대전으로 확대되고 말았다.
결론적으로 오·세 간의국지적 분쟁이 해결되지 못하고 대전으로 비화된 것은 “당시 이 문제를 해결할 위대한 정치가가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한 한 권위있는 사가의 평가에서 알 수 있듯이, 북한의 6자회담 미복귀와 계속적인 미사일 발사로 인해서 야기되는 대위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이해 당사국들과 UN의 인내심어린 외교적 노력으로 분쟁의 확대를 강력히 억제해야 하고,양보·타협·호혜의 정신으로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이규하(전북대 명예교수 · 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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