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대학 명예교수?
나와 집사람이 별로 명예도 없으면서 일생동안 명예교수직을 갖게 되었는데, 교수들 사회에서는 65세 정년 이후를 ‘인생의 이모작’이라고 한다. 옛날과는 달리 평균수명이 크게 늘어나 정년을 지나고도 30년 이상의 생활계획을 세우는 선배교수님도 많이 보았다. 퇴직교수들 사이에서 명예교수를 농담으로 풍자하면서 장기근속하기를 바라는 유행어가 있다.
정년퇴직하고 요즘 어떻게 소일하는가 하고 물으면, 흔히 ‘화백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언제부터 화가가 되었는가 물으면 껄껄 웃는다. ‘화백’이란 ‘화려한 백수’를 일컫는 유행어다. 더욱이 ‘하바드대학의 명예교수가 되었다’고도 한다. 놀랄 수밖에 없는데, 그 뜻인즉 ‘하는 일 없이 바쁘게 드나드는 생활’을 농담조로 지칭하는 말이다. 현직 때와 달리 강의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명예교수가 되면 하는 일이 없어져 자연히 갈 곳이 많아지니까 바빠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하바드대학 명예교수’시절이면 괜찮은 편이다. 80대가 되면 하바드대학에서 하와이대학으로 바뀐다. ‘하와이대학 명예교수’란 하루종일 와이프하고 이리저리 어슬렁거리는 신세가 된다는 뜻이다. 나도 요즘은 자주 웃으면서 ‘하바드대학의 명예교수’라 스스로를 소개하기도 한다. 연구도 별로 하지 않으면서 요즘처럼 바쁘게 생활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27년 전 하바드대학 객원교수로 있었던 내가 이제 ‘하바드대학의 명예교수’라고 했다 해서 관명사칭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하와이대학 명예교수’시절도 지나고 90대가 되면, 이제는 ‘동경대학 명예교수’가 되는 것이다. 몸이 쇠약해져서 외부활동을 자주 하지 못하고 겨우 동네 경로당에나 드나드는 신세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도 나이가 들어 마을의 경로당 정도나 드나들게 되는 때가 올 것으로 생각한다. 실제로도 18년 전 동경대학에서 객원교수로 강의를 한 적이 있었던 터라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동경대학 명예교수’라 말할 날도 기다려 본다.
동네 경로당에라도 나다닐 정도면 그래도 건강한 노후생활이라고 여길 수 있을 것이다. 더 오래 살다보면 결국 ‘방콕대학의 명예교수’가 되는 날도 올 것이다.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서 외출도 못하고 방안에만 콕 갇혀 살아야 하는 때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벌써 노인복지문제가 사회적 관심사가 되고 있으며, 나 역시 노인이기 때문에 보통사람들의 노후생활을 걱정하면서 아직도 몇 단계가 남은 명예교수생활을 즐겨볼까 한다.
20여 년 전만 해도 한국경제는 열 사람 이상의 젊은이들이 일하여 한 사람의 노인을 먹여 살렸던 확대재생산의 성장경제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여섯 사람, 10년 후에는 세 사람의 젊은이들이 일하여 한 사람의 노인을 먹여 살려야 하는 축소재생산의 소비경제시대로 변하게 될 것이다. 우리도 선진국과 같이 가정에서는 부양가족이 늘어나고 기업에서는 비용이 증가하며 정부에서는 재정적자가 늘어나는 등 적자경제시대를 맞이하여 경제가 어려워질 것이다. 이제 우리도 나 같은 노인들이 늘어나기 때문에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경제의 틀을 만들고 새로운 정책을 펴지 않으면 장래가 불안한 고령화사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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