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06 20:49 (Thu)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지역 chevron_right 지역일반
일반기사

[명상칼럼] 한줄기 바람 인 것을 - 권이복

권이복(전주 우아성당 주임신부)

나는 한 줄기 바람이다. 한 줌 흙이다.

 

아홉 달을 태중에 머물다가 모진 진통 끝에 태어난 나는 그저 한줄기 바람 , 한 줌의 먼지 이다. 나의 어머니는 바로 이 한줄기 바람 , 한 줌 흙을 출산 하시고 그리도 기뻐하셨다. 그렇게 태어난 나 또한 그런 줄도 모르고 쉰 하고도 4년을 허우적거리며 살다 보니 오늘의 내가 되었다.

 

산다는 것! 참 힘든 일이다. 정말 장난이 아니다. 연극도 아니다 . 만일 연극이라면 결코 4막까지 끌지 않을 것이다. 이미 서막에서 막을 내렸으리라.

 

살아야만 했기에 , 그리고 막연한 희망에 속고 또 속으며 살다보니 오늘이 되었다. 한 해가 가고 또 한해를 맞이할 때마다 나는 소망했다 . 지난해는 그랬지만 새해엔 정말 잘될 것이라고. 그렇게 쉰 하고도 4년을 속고 살았다 .이젠 그만 속고 싶다. 아니, 그만 속아야 한다. 인정하자! 산다는 것, 다 그렇고 그런 것 임 을! 특별히 좋은 일이 일어나 나를 완전히 행복하게 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 이라는 이 엄연한 진실을.

 

오히려 세월이 가면 갈 수 록 더더욱 안 좋아 지리라는 것을 .눈은 갈 수 록 더 어두워질 것이며 관절 삐걱거리는 소리는 더더욱 요란해지고 , 가픈 숨 더 힘들게 몰아쉬며 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나마의 움직임도 끝나고 그저 싸늘한 시체가 될 것임을 .그러면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볼 것이다. 그리고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1953년 3월 21일 새벽에 태어난 나는 그저 한 줌의 먼지였다는 사실을 .. 54년전 나의 어머니는 이 한줌의 먼지를 출산키 위해 그토록 몸부림 쳤고, 또 그렇게 좋아 했음을 .

 

 

많이 변했다. 그 팽팽하던 피부는 거칠어지고 탱크처럼 몰아붙이던 열정은 짚불처럼 사그라졌다 . 다들 어디로 갔는가. 이렇게 변하고 변하다가 한 줄기 바람 , 한 줌 먼지 되어 사라지는가. 이를 위해 그 모진 삶 견뎌 왔던가.

 

아! 그럴 수는 없다. 그래서는 않된다.

 

한 줄기 바람, 한 줌의 먼지 ! 이것이 나의 전부 일 수는 없다. 다른 그 무엇, 또 다른 그 무엇이 있어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이것이라고 꼭 짚어 말할 수는 없어도....그 무엇이 꼭 있어야 한다. 한 줌의 먼지! 진정 그 것이 나의 전부라면 ........ 이는 죽음 그 이상의 절망이 아닐 수 없다.. 결단코 그럴 수는 없다.

 

그런데 , 다행히 !,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이제 서서히 , 가끔가끔 , 그 무엇- 또 다른 세계가 느껴진다. 지그시 눈을 감고 숨을 고르고 앉아 있노라면 , 또 다른 내가 감지된다. 눈, 코 귀 팔 다리 ........눈에 보이는 내가 아난 또 다른 내가 있어 나를 충만케 한다. 이 체험 , 이 깨달음은 깊은 평화의 세계로 나를 인도한다.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는 나! 한 줄기 바람, 한 줌 먼지로 변해가는 내안에 새롭게 탄생하고 있는 또 다른 내가 있어 나는 참 좋다. 참 행복하다.

 

/권이복(전주 우아성당 주임신부)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북일보 desk@jjan.kr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지역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