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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칼럼] '광주 사건'의 교훈 - 권이복

권이복(전주 우아성당 주임신부)

´ B- 52 폭격기를 동원 하거나 150㎜ 포를 쏘아서라도 광주를 진압해야 한다. ′ ′ 북한 공작원들이 침투하여 독침을 놓았다.′

 

′ 김 대중 빨갱이 일당의 선동으로 광주가 빨갱이의 도시가 되었다′ 등등.....

 

무수한 얘기들을 하루 종일 듣고 살았다. 소위 정훈 장교라고 하는 숙련된 홍보 담당관들은 우리가 행여 졸을 세라 갖은 유머, 온갖 시청각 자료들을 총 동원하며 군대가 요구하는 정보들을 쉴 새 없이 쏟아 댔다. 처음에는 가증스러웠다.

 

거짓말해서 밥 벌어 먹고 사는 그들이 불쌍했다. 나는 노란 다이아몬드 훈련 준사관이고 그들은 무궁화 두개, 세 개 중령, 대령일지라도 참 딱해 보였다. 그래도 그들은 끊임없이 똑 같은 내용을 반복, 반복 했다. 정말이지 지겹도록 들어줘야 했다.

 

′ 김 대중은 빨갱이의 앞잡이다.′ ′ 광주 사태는 이북 공산당들의 게릴라전의 본보기 이다. ′ ′광주 폭도들을 쓸어내야 한다.′......

 

꾸준히 일관되게 가르치고 또 가르쳤다. 연병장에는 북쪽에서 내려온 수많은 전투병들이 진을 치고 있었고 오후 5시쯤이 되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시민군, 즉 빨갱이라 부르는 젊은이들을 굴비 엮듯이 줄줄이 묶어와 이놈이 치고 저놈이 걷어차다가 연병장 끝에 원산폭격 ( 양팔을 등 뒤로 묶은 채 머리와 발끝으로만 몸을 지탱하게 하는 일종의 벌) 시켜 놓았다. 쉴 새 없이 뜨고 내리는 헬리콥터들, 시퍼렇게 겁에 질린 채 출병하는 병사들.....

 

당시 광주는 완전히 전쟁터였다. 이러한 시간이 하루 이틀....... 일주일, 이주일 한달 여를 지나면서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 어이없는 주장들이 사실이 되어 가면서 나 또한 그들과 꼭 같은 판단과 주장을 펴가는 한 군인이 되어 갔다. 어느 사이 내 입에서도 ′광주 폭도′ ′ 싹 쓸어 버려야 할 광주′ ′북한의 남파 공작원들로부터 보호하지 않으면 안되는 광주′ 가 되어 버렸다. 이 어이없는 오류에서 벗어나기 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대전에서 장교로 임관한 후 다시 광주로 배속되어 통합병원 505 병동에 감금 되어 있던 오 병문, 조 아라 여사 등 평소에 알고 존경하던 재야인사들을 접촉 하면서, 나는 서서히 그 최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또 우리부대에 갇혀 있던 조 비오 신부, 김 성룡 신부, 유 현석 김 대중 측 변호사들로부터 들은 정보들은 나를 새로운 세계로 몰아넣었다. 군인들이 아닌 시민들이 말하는 정보- 그 정보들을 들으면서야 서서히 그 오류로부터 벗어 날 수가 있었다. 그 기간이 대략 반년이 걸렸는데 이는 매우 빠른 변화였다. 같이 근무하던 육군 군종신부는 그 이후까지도 군인이라는 최면에서 벗어나지 못해 수명의 동료 사제들이 자기로 인해서 보안대의 포로로 잡혀가는 모습을 보고서야 그 최면에서 깨어 날수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가슴 저미는 사연들을 통해서야 나는 알게 되었다.

 

사람, 사람은 자신이 듣는 정보, 자신이 살고 있는 무리들이 누구냐에 따라, 그리고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이 어디냐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판단 할 수 있는가! 를.

 

/권이복(전주 우아성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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