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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마당] 어느 화가의 무덤 - 송상모

송상모(전 진안부군수)

전주의 남쪽에는 유서 깊은 남고산성이 있다. 이 산성을 황학봉으로 오르다 보면 흑석골 공동묘지가 있고 거기서 30보쯤 오르다 보면 왼쪽에 잘 보이지 않는 무덤 하나가 있다. 외양은 비문과 상석을 갖추었고 봉분 또한 초라하지 않게 28년 전에 가꾸어 놓았다.

 

‘묵로 이용우화백의 묘’가 바로 그 무덤이다. 수년전부터 그 비문을 읽고 고향은 서울이지만 이곳 전주에서 살다가 타계한 걸출한 화백 한분이 묻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돌보는 이 없는 혼백을 위하여 묘지 주변에 자라난 가시덩굴과 낙엽을 치우고 머리를 숙여 왔다. 금년에도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잡초가 무성하고 낙엽이 쌓이는 것을 지켜보면서 씁쓸한 마음 가눌 길이 없었다.

 

이용우(李用雨) 화백은 호가 묵로(墨鷺) 또는 춘전(春田) 이라 불리었고 조선중기의 정승을 역임한 오성부원군 백사 이항복의 후손이다. 1904년 서울 종로구 당주동에서 태어나 10세의 나이에 당시 미술학원인 경성서화미술원 1기생으로 입학하여 고종의 초상화를 그린 소림 조석진과 전통화의 대가인 심전 안중식 선생에게서 사사하였고 16세에 서화협회 창립 최연소 정회원이 되었다. 18세에는 산수화가 정재 오일영화백과 함께 창덕궁에 대형벽화를 그려 낸 조선말기 미술계의 거장이다.

 

그는 활달하고 빠른 필치와 감각적인 화풍으로 여러차례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천재적 소질을 인정받았다. 경성과 강릉사범학교에서 미술 교사로 봉직하면서 조국의 광복과 더불어 국전 심사위원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이화백은 기품이 호탕하여 술은 청탁을 불문하였다. 취흥이 도도하면 밑그림 없이 작품을 다루었고 그 필운은 극치를 이루었다고 한다. 산수와 인물, 화조에 뛰어났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삼고초려’와 대전 소야장학재단의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신선도’ 그리고 창덕궁 대조전의 침전에 오일영화백과 같이 그린 ‘봉황도’(179×579㎝)가 근대 화가들의 다섯 작품과 함께 웅장한 모습으로 80년을 넘게 보존되어 왔다. 그중 그가 가장 아끼면서 소장해 왔던 삼고초려는 중국의 고사를 그린 작품이다.

 

그런데 단편 ‘표본실의 청개구리’로 유명한 당시 매일신보의 정치부장이자 소설가인 염상섭과 막역지우로 지내던 그는 1939년 매일신보에 역사소설을 연재하기 위하여 월탄 박종화 선생 댁을 여러 차례 같이 방문하였으나 거절당하자 본인의 대표작으로 꼽았던 ‘삼고초려’를 기증하고서야 ‘금삼(錦衫)의 피’라는 소설이 탄생하게 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이화백은 1.4후퇴 때 가족과 함께 전주에 내려와 다가동과 전동에서 셋방을 전전하면서 술과 더불어 많은 작품 활동을 하면서 여러 일화를 남기기도 하였으나 아깝게도 천수를 다하지 못하고 49세를 일기로 교동에서 타계하였다. 그후 한국화단을 이끌어 온 벽천 나상목 선생과 강영희 선생, 한국의 서예대가 강암 송성용 선생 등 당대의 문화예술인들과 유지들이 뜻을 모아 실전의 위기에 있는 이화백의 묘소를 1978년 황학봉 자락에 이장하고 비문을 통해 그분을 기억하도록 정성을 들인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화백이 작고한지 53년이 지난 지금 미술계의 어른이 묻혀있는 초라한 묘소는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한다. 이제라도 전북의 화단을 지키는 분들과 교단 그리고 지역사회가 이에 관심을 갖고 이화백과 그의 작품세계를 재조명해 보는 것은 아주 보람 있는 일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그분의 유택을 마련한 선각자들의 깊은 뜻에 보답하고, 문화와 예술의 혼을 다시 한 번 일깨우는 한편 전북의 땅에 외롭게 묻혀있는 혼백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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