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은(전주시의회 시의원)
“바쁘시죠?”
요즘 내가 듣는 첫 번째 질문이다.
만약 만난 사람이 여성이라면 두 번째, 또는 세 번째 질문은 “아이는 누가 봐요?”이다.
나도 또한 다른 분들에게 묻곤 한다. 남성 의원들에게는 누구도 하지 않는 질문을 왜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하고, 듣고 있는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직장의 유무와 관계없이 엄마가 아이의 육아를 담당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또 실제로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엄마들의 고민이 육아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속한 사회문화위원회에는 세 명의 여성의원이 있다. 의회가 열리지 않을 때, 묘하게도 세 명의 여성의원은 시간대는 다르지만 거의 날마다 의회 사무실에 나온다. 8명의 남성의원들은 좀처럼 만나기 어렵지만 당도 서로 다른 여성의원들은 거의 날마다 얼굴을 보게 된다.
어느날, 한 여성의원이 혼잣말로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거야? 하는 일도 없는데…”라고 해서 속으로 웃었다. 왜냐하면 지금 내 심정이 그렇기 때문이다. 의회에 막상 들어와보니 알아야할 내용, 공부해야할 분야가 너무 많았다. 마음은 급했다. 지역으로 돌아오면 만나야할 사람들, 꼭 찾아봬야할 분이 너무 많았다. 꼭 참여해야할 행사, 가봐야 할 세미나도 많았다. 고민스러웠다. 집에 돌아오면 처리해야 할 일 또한 너무 많았다. 그러기에 지나가는 시간이 야속했다.
한 여성의원은 집에서 가사일을 하다가 화가 나서 하던 일을 그만두고 자료를 보았다고 한다. 남성의원들은 하루종일 의정활동에 전념할 수 있지만 여성의원들은 어쩌면 소모적으로 느껴지는 가사활동을 병행해야하니 갑자기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얼마전, 인터넷을 달군 된장녀 논란, 그 핵심에 아나운서 노현정의 결혼소식이 있었다. 노현정의 결혼소식 밑에는 축하 메시지보다 각종 악플이 달려 있었다. 누구든지 자신의 결혼을 선택할 자유가 있으니 뭐라고 말 할 수는 없지만 그동안 애써 키워온 자신의 일은 뒷전으로 밀어버리고 재벌과의 결혼을 선택한 그녀가 자신의 일을 성취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대다수 여성들의 이미지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여성의원들은 노현정만큼 예쁘지도 똑똑하지도(?) 않지만 적어도 다른 여성들을 대표한다는 책임감만큼은 무거우리만치 느끼고 있다. 기존의 연구에 의하면 여성은 정치적 동기에서 남성들보다 “정치가”라기 보다는 주민들에게 봉사하는 ‘공복’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정치에 임한다고 한다.(Antolini 1984) 또한 여성은 남성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의정활동에 소비하며 더 열심히 활동한다고 했다.(Merritt 1980)
제8대 전주시의회가 개원한지 3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많은 사람들이 여성의원들이 많아진 것을 반가워하며 기대를 걸고 있다. 짧은 3개월의 시간을 함께 지내다보니 여성의원들은 성실성과 꼼꼼함, 그리고 강자보다는 약자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모두 초선이지만 그러기에 관습에 물들지않고, 문제제기를 할 수 있었고, 공부의 중요성을 크게 느껴 초선의원연구모임을 만들어 주도해가고 있다. 부족한 부분을 함께 메우기위해 당별 여성지방의회협의회를 만들어 모범사례를 공유하고 여성정책과 현안에 대한 정책도 마련하기위해 노력하고 있다.
물론 아직 부족한 부분도 많다. 그러나 가사와 육아와 의정활동을 병행해야하는 어려움속에서도 흘러가는 시간을 안타까워하는 여성의원들은 신혼여행지에 사직서를 제출한 노현정과는 달리 오늘도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걷고 있다. 내일은 더 많은 여성의원들이 걸어가, 지금은 작은 오솔길이 4년후, 8년후에는 탄탄대로가 되기를 희망하며….
/구성은(전주시의회 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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