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법무부 국제법무과장·부장검사)
추석이 다가온다. 아무리 길이 막혀도 고향길은 늘 푸근하다. 푸른 하늘 아래 벼이삭이 일렁이는 김제평야를 가로질러 성묘를 다녀오는 길은 더욱 넉넉한 느낌을 준다. 돌아오는 길에 큰댁에 인사드리고 초등학생 아이들과 논길을 걸어보곤 한다. 익어가는 벼이삭을 신기해하는 아이들에게 몇 개 잘라주자면 작은 아버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설마 그걸 아까워하시랴만 자식 기르듯 한여름 땡볕을 이겨내신 그 노고를 함부로 다루는 것 같아 마음에 걸리기 때문이다.
한국인에게 쌀은 그만큼 각별하다. 언젠가 쌀은 더운 지방의 작물로서 원래는 우리나라 기후에 맞지 않아 재배하기 어려웠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그러나 단위면적당 생산되는 영양가가 어느 곡식보다 높아 좁은 국토에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리기에 쌀만한 것이 없으므로 모내기 등 농법을 개발하고 내한성이 좋은 품종으로 개량하여 어디서든 재배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들은 것 같다. 그만큼 다른 나라에서보다 손이 많이 가고 힘들기 때문에 가을걷이의 보람도 더 크고 가을 들판을 보면 농사를 모르는 내 마음도 덩달아 넉넉해지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처럼 좋은 시기인데도 요즘 농촌에 근심이 많다고 한다. 한미 FTA로 값싼 농산물이 밀려들면 수천년을 이어온 쌀농사도 접어야 하지 않을까 걱정하신다는 것이다. 두 나라의 쌀값차이가 워낙 크기 때문에 걱정하실 만도 하다. 그래서 그동안 한미FTA 협상에 일부 관여하며 알게 된 사실을 알려드리고 근심을 덜어드리고자 한다.
정부는 우리 식량안보와 농가경제에 쌀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감안하여 ‘마지막까지 지킬 품목’으로 정하고 적극 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정부가 펴낸 ‘한미 FTA의 알파와 오메가’라는 자료에 명시되어 있고 실제 협상에서도 다른 어떤 분야보다 철저히 대처하고 있는 것을 직접 보았다. 그리고 쌀을 지키기 위하여 다른 품목은 희생시키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하실 필요가 없다. 품목마다 민감성을 상대방에게 전달하고 논리적으로 대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FTA든 예외가 없을 수 없으며 미국도 민감하게 여기는 품목이 있고 이미 2004년에 우리는 미국에게 쌀의 관세화유예를 관철한 바가 있다. 그리고 피해가 예상되는 부문에 대하여 대대적인 지원을 계획하고 있다. 아직 협상 중이므로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하기 이르지만 철저히 준비하고 있으니 너무 염려하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무역을 확대하면 양국 국민 모두가 잘 살 수 있다는 것은 경제학의 상식이고 우리나라는 무역으로 세계 10위권의 경제를 건설한 경험이 있다. 변화는 두렵기 마련이지만 변화 없이는 발전도 없다. 세계 최대의 시장인 미국을 우리의 시장으로 확보하는 것보다 우리 경제발전에 좋은 계기는 없을 것이다. 이제 한미FTA를 우리 농촌을 선진화하는 기회로 삼는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지금부터 부지런히 경쟁력을 높여가면 언젠가 군산항에서 전북의 쌀이 세계로 수출되는 감격도 맛볼 수 있지 않겠는가?
벌써부터 고향을 향하는 마음을 달래면서 작은 아버님께 아이들이 벼이삭을 잘라가도 혹시 서운해하지 마시라는 말씀을 드린다. 아이들은 낱알을 세어보고 머리에도 꽂아보며 소중히 가지고 놀다가 제 손톱으로 일일이 껍질을 벗겨 밥 지을 때 함께 넣기 때문이다.
/김영준(법무부 국제법무과장·부장검사)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