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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의 현장 후대에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죠"...'전북민주화운동展' 박창신 신부

17일까지 전북대 삼성문화횐관

1990년 보안사불법사찰규탄투쟁시대때 박창신 신부(왼쪽), 1987년 6월항쟁 당시 전주 풍년제과 앞 도로(중앙). (desk@jjan.kr)

박창신(65·정읍연지동성당 주임신부)신부. 광주민중항쟁관련 국가유공자인 그는 한쪽 다리가 불편하다. 80년 5월, 광주 소식을 전주교구 신부들과 유인물을 제작해 배포하고 이를 방송한 탓에 테러를 당했다. 불편한 다리는 민주화운동 훈장인 셈이다.

 

이후 그는 더욱 열심히 시위·농성현장을 다녔다. 85년 가톨릭농민들이 중심이 된 농축산물 수입 반대집회, 85년 오송회 구속자석방을 위한 기도회, 같은해 외국 농축산물수입반대 가톨릭농민대회, 86년 백양메리야스 노동운동, 민주헌법쟁취 결의대회, 87년 4.13호헌조치반대 사제단 단식기도, 6월 민주항쟁, 평화민주당 김대중후보 전주유세, 88년 고추 제값받기 투쟁 등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숨가쁘게 이어진 각종 투쟁현장을 쫓아다녔다. 늘 카메라를 들고서였다.

 

“80년 테러이후 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아픔이 있는 현장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각종 시위현장을 누비고 다녔어요. 당시 전북연합 의장이라는 직분이 있어서 시위대에겐 해코지 당하지 않았죠. 물론 카메라를 뺏겨 훼손된 장면도 많습니다. 그래도 꽤 많은 현장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신부라는 특수한 직분도 도움이 됐던 것 같습니다.”

 

그가 카메라를 들고 현장으로 간 것은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다리가 불편해 현장을 자유롭게 누빌수 없었던 것도 카메라를 든 이유다. 이렇게 해서 그가 기록한 각종 투쟁현장은 5000여장에 달한다. 이를 지난 여름 전북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기증했다.

 

전북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대표 박창신 서지영 오경숙 이수금 조성용 한규채)가 17일까지 전북대삼성문화회관 갤러리에서 전시하는 '민주·인권 사진전 1-사진으로 보는 전북민주화운동'은 바로 박신부와 이영호 전북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고문이 내놓은 사진 중 200여점을 추려 전시하는 것이다. 사진전은 미래를 이어갈 새 세대에게 우리사회 민주화의 역사를 알리기 위해 마련한 것으로, 84년부터 95년까지 전북지역에서 일어났던 정치 사회 뿐 아니라 농민 노동 학생 종교의 인권운동과 민주화 활동의 기록이다.

 

“민주화운동의 가치와 의미가 올바로 평가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사진을 통해 지난 30년간의 역사를 기억하고 계승하는 일은 아주 의미있는 일입니다. 특히 전북지역민주화운동의 뿌리와 생생한 현장을 사진을 통해 돌이켜 보며 그 날의 분노와 함성, 그리고 작은 승리의 기쁨을 느낀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죠. 사진전을 통해 기억속에 머물러 있던 사건들이, 또 강제로 잊어야만 했던 사건과 현장, 함께 했던 사람들이 사진을 통해 오늘의 삶으로 복원되기를 바랍니다.”

 

박 신부는 민주화사진전을 통해 평등과 공생의 가치를 되새김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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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정 euns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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