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환우 정착 마을에서 음성 나 환우들과 맞이하는 첫 성탄!
우리는 이 거룩한 날을 거룩하게 맞이하려고 한 달여 동안을 준비해 왔었다.
그 피정 마지막 날 나는 교우들에게 힘든 질문을 던졌다.
“교형 자매 여러분,
혹 우리 중에 우리의 이 나병이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고백하실 수 있으십니까?″
이 말이 떨어지는 순간 성당은 뭐라 표현 할 수 없는 기운에 온통 휩싸였다. 찬물을 쫙- 끼얹은 분위기???
한참 동안 차가운 침묵이 흘렀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 할머니가 눈을 지긋이 감은 채 찬찬히, 그러나 또렷이 입을 열었다.
“신부님! 이 몹쓸 병은 하느님의 은총이죠!” 저 쪽 구석에서 또 누군가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은총이죠? “ 맞습니다. 주님이 주신 선물이지요…”
가슴이 벅차 올랐다. 목이 메이고 눈물이 앞을 가려 미사를 계속 할 수가 없었다. 간신히 미사를 마치고 나오는 데 한 자매님이 조용히 다가와 속삭이듯 말하였다.
‘하느님의 은총이죠, 이 병이 아니었다면 내 좋으신 하느님을 어떻게 알았겠어요.
이 병 덕택에 좋으신 하느님 알았으니 …은총이죠“
인간으로 태어난 사람치고 고통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희망이 있다. 왜냐면 고통은 이 사람을 저 사람으로 바꿔 놓는 신비이니까. 고통은 사람으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옮아가게 하는 다리이며 사다리이다 . 사람은 고통을 통해서만 고통으로부터 벗어난다. 인간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고통 밖에 없다. 따라서 고통을 피하거나 고통으로부터 제외 될 수 있다고 가르치는 사람은 사이비이거나 사기꾼이다. 예수의 십자가를 짓밟는 사람이다. 만약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 고통 말고 또 있었다면 하느님은 하나 밖에 없는 당신의 아들에게 고통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십자가의 고통 없이도 부활 할 수 있는 길이 있었다면 분명 그 길을 가게 했을 것이다.
나자렛의 예수나, 싯달타의 샤카무니는 결코 그 길을 가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의사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 온지 어언 55년…
참 많은 아픔이 있었고, 그 아픔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으며 내일도 계속되리라.
새해엔…새해엔… 하며 기원 하지만 나를 때리고 덮칠 파도가 줄줄이 날 기다리고 있다. 그래도 기쁘고 행복한 것은, 그래도 가슴 벅찬 희망으로 한 해를 보내고 또 한해를 맞이하는 것은, 그렇게 나는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죽음에서 부활에로 가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고통이라는 선물 덕택에 나는 지금 다시 태어나고 있다. 썩은 씨앗에서 새싹이 돋듯, 고목나무에서 새 순이 나듯 죽어 사라져 가는 내 속에 다시 태어나는 “나”가 있다. 보이는 나는 서서히 사라져 가고 보이지 않는 내가 익어가고 있다. 죽어 사라지는 생명 속에 영원히 사는 생명이 크고 있다. 고통이라는 거름을 먹고…
작년도 올해도 내년에도 나는 고통이라는 은총을 먹으며 이 세상을 떠나 저 세상으로 옮아가고 있다.
/권이복(전주 우아성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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