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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칼럼] 처음처럼 - 송연홍

송연홍(전주 동산동성당 주임신부)

처음처럼

 

오늘 오후에 중앙성당에서 사제서품식이 있다. 7명의 청년들이 오로지 하느님과 신자들을 위해서 일생 독신을 지키는 신부로 살겠다고 하느님과 교회 앞에서 서약을 한다. 사제서품식에서 모든 사람의 눈물을 흘리게 하는 예식은 신부가 될 후보자들이 땅에 엎드려 성인들의 간구를 기도하는 때이다. 후보자들은 자신을 최대한 낮추어서 모든 사람의 종으로 모든 사람을 섬기면서 살겠다고 하느님께 기도드린다.

 

12년 전에 나도 중앙성당 바닥에 엎드렸을 때 모든 사람을 위한 봉사자로 살아가겠다고 하느님과 성인들의 전구를 기도했다. 신부가 되기 위해서 군대까지 포함해서 10년이라는 시간을 준비했지만, 엎드려 있는 지금은 두려움이 먼저 앞섰기 때문에 더욱 간절한 기도였다. 어떻게 내가 다른 사람들을 섬기면서 살 수 있을까? 나 자신을 완전히 비우고 모든 사람을 내 안에 채워서 그들을 위한 봉사와 사랑과 일치의 삶을 살 수 있을까?

 

하지만 이때 그 두려움을 없앨 수 있는 힘을 준 것은 엎드린 예식이 끝난 다음에 있는 서품식에 참석한 모든 신부님들의 안수를 받을 때였다. 제대 앞에 무릎을 꿇으면 신부님들께서 한 사람 한 사람 정성껏 안수와 기도를 해주신다. 무릎이 아파오고 허리가 아파와도 눈물이 먼저 흐른다. 나보다 먼저 신부의 길을 걸어가신 분들께서 나를 한 형제로 받아들이고 힘든 봉사의 길을 함께 가자고 기도로 힘을 주신다. 이 기도의 힘으로 부족하지만 힘껏 사람들을 위해서 살겠다고 결심했다.

 

12년이 지난 지금 처음 신부가 되었을 때의 마음이 사라졌음을 느낀다. 매일 드리는 미사와 기도는 습관적으로 형식적으로 드리게 되고, 신자들과 사람들을 만날 때는 마치 왕이나 군주가 된 것처럼 만날 때가 있다. 성당의 일도 사람들의 생각과 의견을 들어서 하기 보다는 내 생각 위주로 이끌어갈 때가 있다.

 

‘처음처럼’ 이라는 말이 자꾸 떠오르는 것은 이 같은 내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든 처음 시작하는 마음은 순수하고 열정적이다. 세상에 갓 나온 어린아이는 순수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 순수함은 사라지고 만다. 마찬가지로 모든 일의 처음의 열정과 순수함은 자신의 삶과 환경에 순응해서 기계적이고 수동적이 되어간다.

 

‘처음처럼’ 언제나 순수한 마음을 지니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처음의 순수함과 열정을 계속 지니기 위해서는 나만의 삶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나 자신만을 위해서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삶에 적응하고 처음의 마음은 사라지게 된다. 주위에 살아가는 사람들 바라보고 내 안으로 끌어들여서 받아들이면 처음의 순수함과 열정이 언제든 다시 살아날 것이다. ‘처음처럼’ 살기 위해서 ‘내’가 아닌 ‘너’가 내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반성해본다.

 

 

▶ 송년홍 신부 약력

 

1995년 2월 광주가톨릭 대학교 졸업

 

1995년 2월 사제서품

 

1995년 2월 - 1996년 7월 복자성당, 중앙성당, 효자동 성당 보좌신부

 

1996년 7월 - 2004년 6월 스위스 프리브룩 대학 유학

 

2004년 8월 - 2005년 4월 부안 성당 공소 전담신부

 

2005년 4월 - 현재 동산동 성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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