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규(전북대 사학과 교수)
하버드대학에서 생각한 것들
(4)이름의 마력
‘19세기 후반에 한 중년부부가 죽은 아들을 위해 하버드에 거액을 기증하러 갔으나 이 대학의 거만한 태도로 자신들이 직접 대학을 지은 것이 스탠포드대학이다’, ‘하버드를 상징하는 ‘자주색’은 원래 뉴욕의 포드햄대학도 같이 사용하던 것으로 양교는 결국 야구경기로 사용권을 정하려 했으나 포드햄의 승리에도 하버드가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오히려 포드햄이 색을 바꾸었다.’ 전자는 꽤 알려진 이야기이나 완전한 허구이고 후자는 사실로 보인다.
최고의 자리는 언제나 도전과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들은 어쩐지 하버드의 독선을 경계하고 있는 것 같다. 최근에 하버드 최초의 여성 총장이 탄생한 것도 전임 총장의 여성 비하 발언의 결과였다. 급기야 이 사태를 놓고 한 평론가는 그동안의 하버드의 ‘오만’을 비난하면서 그 이름이 실제보다 과장되어 왔음을 밝히려 했다. 그는 근 50년간 미국대통령을 배출한 수가 2명에 불과한 점, 실업계에서 나타난 CEO점유율의 하락, 미국 경제 및 대외정책 수립에서 영향력 감소 등으로 하버드가 더 이상 완전한 대학이 아님을 강조하고 그럼에도 이 대학이 각광을 받는 이유는 언론계를 장악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하버드에도 허상은 많다. 가장 의외는 그 신입생 중 10~15%, 즉 수백 명이 자신의 부모형제가 하버드를 졸업했다는 이유로 입학이 다른 학생보다 3배정도 유리하다는 점이다. 물론 여기에는 비판의 소리가 있지만 하버드는 ‘동문가정이 기부금을 더 많이 내고 애교심도 강하다’는 이유를 대고 있다.
한국에서라면 시끄럽게 논란거리가 됐을 이 같은 귀족주의적, 금권주의적 면모는 하버드의 또 다른 일면이다. 또 하버드학생들은 최근까지 재학생의 50%이상이 A학점이상을 받고 있고 졸업할 때는 90%정도가 각종 ‘우등생’ 명목으로 졸업한다는 통계가 있다. 케네디집안 사람들이 모두 하버드대학을 졸업했던 이유, 또 하버드를 졸업한 유명인사들 다수가 ‘우등’으로 졸업한 데에도 이러한 이유가 있었던 것인가? ‘명품’에는 ‘마력’이 작용해 이를 추종하는 부류를 낳기 마련이다. ‘명품’지상주의와 교육열 높은 한국인들에게 하버드는 ‘완벽’의 대명사처럼 되어 버린 지 오래다.
대학평가를 자주하는 미국에서는 ‘더 좋은(better)’이나 ‘더 나쁜(worse)’보다 ‘더 큰’이나 ‘더 작은’이라는 표현을 더 자주 쓴다. 원래 ‘컬리지’로 시작한 하버드도 대학원과 전문학교를 더해 ‘유니버서티’로 발전함으로써 ‘더 큰'대학이 되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컬리지’만으로는 하버드에 손색없는 곳이 전국에 걸쳐 많고 학생들도 이 같은 ‘컬리지’에 입학했다가 대학원을 ‘더 큰’곳으로 옮기는 것이 드문 현상이 아니다. 하버드에 학부학생을 뺀 대학원학생 또는 교수들 중에 ‘본교’ 출신자가 오히려 소수인 이유는 이와 무관하지 않다. 최근 타임지에서는 ‘누가 하버드를 가나?’라는 특집기사를 통해 많은 학생들이 ‘더 작고’, ‘덜 알려진’ 대학에서 ‘더 큰’대학의 학생들보다 ‘더 행복’하게 지낸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하버드의 합격통지서를 포기하고 ‘더 작은’ 곳을 택한 한 학생은 자신의 선택을 두고 ‘(하버드에 있었다면)스타 과학자들의 비이커를 닦을 행운은 있었겠지만 교수와 공동으로 연구보고서를 출판할 기회는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학생의 결정을 우리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
/김성규(전북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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