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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칼럼] 여유는 믿음에서 나온다 - 김동건

김동건(전주중부교회 원로목사)

사람이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은 일에 성을 벌컥 냅니다. 조그마한 어려움을 당해도 발을 동동 구르며 당황해합니다. 어려운 난관에 부딪치면 에라! 죽어나 버릴까? 이러한 막다른 생각을 가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아무리 어려운 곤경에 빠져도 지긋하게 참는 사람도 있습니다. 당장에 끝장이 날 일이 코앞에 닥쳐와 있는데도 늠름하고 태연하게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지고 한 가닥 실마리를 풀어가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이러한 여유를 가진 사람은 칠전팔기, 백전불구의 의지를 가진 사람입니다. 오뚜기 인생입니다.

 

실패라는 것은 무엇인가 해보려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두번씩은 경험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실패를 여유 있게 되받아 씹어가며 창조적으로 극복해 나갈 수 있느냐는 것이 문제인 줄 압니다. 오늘 실패하더라도 이 실패를 거울삼아 내일 또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하는 각오와 마음의 여유를 가질 때 다시 그 일을 성공시킬 수 있는 줄 압니다.

 

「알베르뜨 까뮤」는 말하기를 이 세상에 세가지 유형의 사람이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회라는 감방 속에 이 세 사람이 함께 누워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자기가 감방에 갇혀있는 것이 너무나 분하고 억울하여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북받치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마구 벽을 주먹으로 내려칩니다. 이 돌벽을 도저히 뚫을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몸부림치고 발악을 합니다. 하늘을 원망하고 땅을 저주하며 눈물을 흘리다가 자기도 모르게 그만 기진맥진하여 그대로 쓰러져 버리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 사람은 덜컥 사회라는 감방에 갇히게 되자 아예 처음부터 팔자타령을 하며 이렇게 갇힌 것이 태어나기 전부터 결정된 운명이기 때문에 인간의 노력으로 저항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면서 깨끗이 단념하고 자포자기하는 태도로 그냥 벌떡 누워있는 사람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사람은 자기가 철통같은 감방에 억울하게 갇힌 것을 잘 압니다. 자기는 어떻게 해서라도 이 감방을 빠져나가야 산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대로 앉아있다가는 그만 죽고 말 것이라는 것도 압니다. 내가 이제 태양이 비치는 곳으로 해방이 되어 나가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꿈과 계획을 포기하지만 세워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유 있는 마음에 담력을 가지고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첫 번째 사람과 같이 무모하게 자기의 힘과 노력을 허비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두 번째 사람과 같이 자포자기 해버리지 않습니다.

 

매일 불안한 시간이 흐릅니다. 현재로써는 내일의 소망도 없습니다. 그저 한없이 괴롭기만 합니다. 그러나 참고 견뎌나가면서 의미와 가치를 생각하고 앞으로 어떤 기회와 시기가 주어질 때까지 마음에 긴장을 늦추지 않고 치밀한 계획을 세워 놓고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무서운 현실을 하나의 즐거움으로 바꾸는 유일한 길은 규칙적인 계획을 세우며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끝까지 기다리는 것임을 알고 그는 그저 드러누울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 감방 앞에 지나가다 들여다본다면 이 세 사람은 같은 환경에 갇혀있는 것으로 보고 똑같이 절망적인 사람으로 보며 동정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 한사람은 내일을 향한 꿈과 희망을 가지고 생명력이 넘쳐있는 것이었습니다.

 

사회라는 감방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 생활양식이 같습니다. 그러나 승리는 마음의 담력을 가지고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묵묵히 구체적으로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며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참고 견디며 기다리는 사람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담력과 여유 있는 마음은 하나님을 믿는 독실한 신앙인에게서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은 난관에 부딛칠때 쉽게 절망합니다. 포기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사람은 하나님이 배경이 되어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움을 청하며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지고 견딥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네 하나님 나 여호와가 함께 하느니라”그랬습니다.

 

한번은 제가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집에 들어서려고 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하였습니다. 내 집에 다섯 살인 아들이 7~8살의 동네 아이들과 섞여 놀다가 발로 걷어차이고 주먹으로 뺨을 얻어맞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순간 나는 내 아들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랬더니 지금까지 꼼짝도 못하고 움츠리고 얻어맞고 있던 아들이 아버지의 얼굴도 뒤돌아 볼 것도 없이 지금까지 자기를 때렸던 3살이나 많은 큰 아이를 달려가서 자기도 발로 걷어차고 주먹으로 힘껏 내려 갈기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이 어린아이의 용기와 담력이 어디서부터 생겼다고 생각되십니까?

 

우리에게는 배경이 있어야 합니다. 힘있는 배경을 의식하게 될 때 마음의 여유와 담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 봤습니다.

 

마음의 여유는 담력이 밑받침이 되어야 하고 담력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생겨나는 것이라 볼 때 인간은 참된 종교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김동건(전주중부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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