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07 07:33 (Fri)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지역 chevron_right 지역일반
일반기사

[명상칼럼] 산 곁에서 산이 그립네 - 강숙원

강숙원(원불교 변산 원광선원 원장)

진종일 산을 바라봅니다. 아니 바라보지 않아도 사방을 에워싼 산은 어느 새 내게로 다가와 느긋이 서 있곤 합니다. 아무리 거센 장맛비가 내려도 그는 그 비를 맞으며 꼼짝도 않고 내 곁을 지킵니다.

 

누군가가 곁에 있음이 이렇게 좋은 것 인줄 미처 몰랐습니다. 새벽 잠에서 깨어나 창문을 열면 뿌연 물안개 속에서 이슬을 털고 일어서는 산들의 나직한 기척이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그가 내 곁에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이곳으로 온 후, 산이 있어 내 존재의 나날들이 한결 충만해졌습니다. 그 곁에 있으면 어머니의 모태처럼 마냥 편안하고 아늑해지는 이 느낌은 어디에 근원한 것일까요? 그리하여 날 에워싼 저 산들이 단절이 아닌 그리움의 대상이곤 합니다. 겹겹이 물결을 이룬 저 부드러운 능선들은 아직도 여전히 나에게 꿈꿀 수 있는 영혼을 갖게 합니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고 노래한 시인처럼, 나 또한 산이 곁에 있어도 늘 그 산이 그리워 가슴이 절절해지곤 합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숲에서는 벌써 서늘한 가을 냄새가 납니다. 오동 보랏빛 꽃잎이 지던 날 숲은 많이 뒤척였습니다. 그리고 그 향기가 떠난 자리에는 지금 씨앗이 잉태되고 있습니다. 존재한다는 것은 그렇게 "나 아닌 것들의 배경이 되는" 일인가 봅니다.

 

절정의 삼복더위 속에서 서늘한 음(陰)이 잉태되는 자연의 섭리를 이미 감지하고 있는 듯 요즘 생명의 몸짓들이 부쩍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여름 해가 암만 길어도 그들에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부지런히 영양분을 길어 올려 씨앗을 준비하고 떠날 차비를 해야 하니까요. 생명의 법칙은 그렇게 자신의 기꺼운 헌신과 소멸을 통해 거듭나는 일이며, 아름다운 역설입니다.

 

산과 함께 하루가 시작되고 하루가 저무는 이곳에서 그 생성과 소멸의 질서에 귀를 기울이며 백척간두에 서서 욕망의 끈을 버려 비상을 꿈꿉니다. 자연은 늘 우리가 더 가벼워져야 더 충만하게 존재하는 법을 말해 줍니다.

 

혹여 생의 벼랑 같은 날들이 오면 지체 없이 산으로 오십시요. 산은 절망의 끝이 얼마나 평화로운 것인가를, 그리하여 그 깊은 절망이 곧 길인 것을 보여 줄 테니까요.

 

산의 일부가 되어 산처럼 깊어지고 싶은 날입니다.

 

/강숙원(원불교 변산 원광선원 원장)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북일보 desk@jjan.kr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지역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