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춘(익산 갈릴리교회 목사)
아프카니스탄에 갔다가 뜻하지 않게 탈레반에게 붙잡혀 목사가 무참하게 죽고 또 22명의 한국의료 봉사자들이 극한 상황의 고통을 온몸으로 당하고 있습니다.
억류 돼있는 본인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 가족들의 고통을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이런 상황에 기독교 이해의 폭이좁거나 반 기독교적인 사람들은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위험한 나라에 무엇하러 가나? 지구촌에 갈데가 그렇게 없어서 전쟁 지역인 아프카니스탄에 갔다가 온 나라가 벌집 쑤신것 같은 난리를 치루게 하는가, 라고 비난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비난은 기독교란 종교의 특성을 잘 이해 하지 못해서입니다. 우선 기독교의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지구에 오실 때 죽으려고 오신것입니다.
기독교의 시작은 순교의 피로 시작됐고 기독교 2천년 역사속에 예수가 머리된 교회는 피흘리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가 대부분이 순교의 피를 흘렸고 바울이 그러했으며 스데반 제자가 피흘리고 순교 했습니다. 성경이 피흘리는 순교의 역사이기 때문에 조선반도에는 오늘 돌에 맞아 이렇게 복음의 꽃이 피고 풍성한 열매를 거두는 것은 이땅에 순교의 피가 한알의 밀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영국인 선교사 토마스가 중국에서 번역된 조선어 성경을 들고 셔먼호를 타고 대동강에 들어 왔다가 조선 군인이 쏜 불화살에 배가 불이 나는 바람에 배에서 뛰어 내렸고 그의 가슴에 품고 있던 성경을 조선인 군사에게 건네주고 그 자리에서 참수당해 대동강 모래 사장에 순교의피 흘리기 시작했고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묘역에도 수많은 순교자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서울뿐 아니라 전주에도 예수 병원 의료 선교사로 왔다가 꿈도 채 펼쳐 보지 못하고 이땅에 순교의 피를 흘린 순교자 묘가 지금 예수 병원 앞 다가산에 8기나 묻쳐 있습니다. 또한 일제의 만행과 6.25 전쟁으로 조선땅 3천리 반도에 순교의 피를 얼마나 많이 흘렸는지 다 형용 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순교자들의 피의 역사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아프카니스탄에 흘린 순교의 피는 당연한 것이며 예수님의 최후의 명령에 증인이 되라는 말의 라틴어 “말투스”는 순교자의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예수의 생명복음이 증거 되기 위해서는 이 지구촌에 더 많은 순교자 “말투스”가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순교자를 통해 계속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꽃이피고 열매가맺혀져야 할것입니다. 아프칸에 더 많은 예수의 사람들이 가야되고 어떤 고난이와도 기쁨과 따뜻한 사랑으로 하나님나라를 건설해야 합니다.
/이동춘(익산 갈릴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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