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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칼럼] 타인을 위한 삶이 '순교' - 공요셉

공요셉(신부·전주 가톨릭신학원 교수)

길었던 때 아닌 장맛비가 그치고 나니 가을이 성큼 문턱을 넘어옵니다. 한반도의 기후가 아열대로 변해간다는 염려며, 그 기후대에 사는 희귀한 철새가 날아왔다는 뉴스들도 선선해진 바람을 맞으면 모든 것이 무더운 여름날의 신기루 같은 기우였던 것처럼 느껴집니다. 아니 정말 지구 온난화니, 오존층 파괴니, 이상기후니 하는 모든 것들이 괜한 근심걱정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가톨릭교회에는 매월 달마다 붙여지는 이름이 있는 데, 한국 교회에서는 9월을 '순교자 성월'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이 달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한국의 순교자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믿음과 정신을 본받고자 특별히 노력하는 때입니다. 한국의 가톨릭교회 안에는 많은 순교자들이 있습니다. 신유, 기해, 병오, 병인박해로 이어지는 네 번의 대(大)박해 외에도 외교사절을 따라 중국 북경에 가서 세례를 받은 최초의 한국인 신자와 더불어 한국 교회가 탄생한 1784년 이듬해부터 시작된 끊임없는 박해로 인해 약 일만 명에 이르는 순교자들이 생겨났고, 거의 한 세기에 걸친 이 박해에 의해 갓 태동한 한국 교회는 그 절반이나 되는 신자들이 순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전체 인구 10%이상의 신자를 가지게 된 한국 가톨릭교회는 바로 이 순교자들이 흘린 피위에 피어나고 자라는 것이지요. 그 많은 순교자들 중 백세분의 순교자들이 1984년 한국가톨릭교회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전임교황에 의해 '103위 순교성인'이 되셨습니다. 그 중엔 프랑스에서 선교를 위해 오신 세 분의 주교님과 일곱 분의 신부님들도 포함되어 있지요. 그러나 일만 명에 가까운 순교자들의 대부분은 오늘날 그 이름이 전해오지 않는 '무명 순교자'들이랍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때때로 목숨보다 소중한 사람이나 그 무엇을 가지기도 하고, 목숨을 걸고 지켜야할 큰 뜻을 지니게 될 수 있습니다. 크게는 그것이 나라요, 민족이 될 수도 있고, 작게는 사랑하는 가족이나 벗이 될 수도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에게는 선열들과 많은 애국지사의 감동적인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역사가 있으며, 한국전쟁과 해외파병 중에 순국한 전몰용사의 훌륭한 넋들이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가족이나 친구를 위해, 또는 전연 모르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마음을 숙연케 합니다. 그분들이야 말로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 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요한복음 15,13)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몸소 삶으로 보여주신 분들이겠지요. 또한 반드시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지 않더라도 나라와 사회를 위해, 이웃과 나 아닌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많은 이들이 곁에 있어 우리는 행복합니다.

 

순교하기 위해서는 준비와 연습이 필요합니다. 순교하면 바로 하느님나라에 갈 수 있다는 바램하나에 칼날이 목에 들어오는 순간만 눈 질끈 감고 이를 악물며 순교할 순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매 순간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과 나 아닌 타인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간직하며 작은 일로부터 실천해 나가던 사람만이 순교할 수 있었겠지요. 비록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나 아닌 타인을 위해 일하고 봉사하며 사시는 분들은 세상에 사랑을 꽃 피우는 순교의 씨앗을 지니신 분들이라 생각합니다. 곧 민족의 명절인 한가위가 다가옵니다. 연휴기간에도 우리를 위해 봉사하시는 분들도 그런 분들이겠지요. 그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공요셉(신부·전주 가톨릭신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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