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론 아랫목이 그리워지는 계절이 되었습니다. 쏟아 붓듯 연이어 내린 비로 익어가던 과일은 떨어져 내리고 고추밭의 고추는 병들어 마르고 자라던 벼는 바닥을 향해 엎드리고 누워 땀 흘리던 농심은 잿빛이 되었으나 그래도 가을은 가을입니다. 아버님이 가시던 날도 맑은 하늘은 높고 바람 선선한 가을이었지요. 하늘에 손수건을 적셔 짜면 푸른 물이 똑똑 떨어질 것 같았고 웃자란 억새풀이 하늘을 쓸어내려 더욱 하늘 푸르른 그런 가을이었지요.
아버님을 가슴에 묻은 지 벌써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반 십년이 지났건만 가을만 되면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당신이 그리워지는 건 왜일까요? 오늘 당신이 생전에 그렇게도 예뻐해 주시던 경아를 데리고 금산사에 갔습니다. 모악산의 품에 안긴 그 곳에서 당신은 나를 꼭 안고, 우리 딸 참 예쁘다 하시며 웃으시곤 하셨지요. 저도 오늘 경아를 대적광전 앞에 새워놓고 사진을 찍어주며 아버님의 음성으로 '우리 딸 참 예쁘다' 했더니 경아가 씽긋 웃으며 '엄마가 할아버지야?' 하고 물었답니다. 며칠 지나면 추석입니다.
그날 이제 제법 자란 경아랑 아버님을 찾아뵙겠습니다. 생전에 좋아하셨던 약주 한 잔과 안주를 정성껏 준비할까요? 그 날은 아버님 가시던 날만큼이나 하늘이 높고 푸르면 참 좋겠습니다. 밤이 늦었습니다. 편히 주무셔요.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