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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어쩌다 교육이 여기까지 왔는가 - 이강녕

이강녕(전 전라북도 교육연구원장)

필자는 며칠 전 모악산을 오르는 길에 같이 근무한 적이 있는 전주시내 모 학교의 기능직과의 만남에서 교육에 대한 현주소를 듣고 심한 충격에 빠졌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설사 많은 학교 중 손가락으로 헤일 정도로 소수라고 하더라도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되었는가를 생각할 때 깊은 좌절감에 빠진 것이다. 그 이야기를 여기에 간단히 옮긴다.

 

어떤 초등학교에 세 명의 어린이가 전학을 왔다. 그 학교는 소규모 학교라 학생 하나가 아쉬웠다. 학생이 몇 명만 늘어도 학급수가 늘어나고, 예산이 늘어나고 하는 그러한 입장이어서 대 환영을 했는데 뜻 밖의 일이 벌어졌다. 전학 온 3남매 가운데 제일 맞이인 상급생을 담임한 교사가 그 어린이를 도저히 맡을 수 없다고 교장에게 하소연을 해 온 것이다. 교사의 말인즉 학급 내에서 그 어린이의 행동이 도저히 교사로서 어쩔 수 없는 방종에 가까워 그렇다는 것이었다. 교장은 자기가 직접 지도해 볼 테니 다음날부터 그 어린이를 교장실로 보내라고 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다음날부터 그 어린이는 교장실에 책가방만 갖다 놓고서는 이내 밖으로 나가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이었다. 교장이 그 어린이를 찾아가 불러들이려고 하면 그 어린이는 자기를 찾아오는 교장에게 ‘매롱! 매롱!’ 하면서 뛰어 다니니 학생 수 불어난다고 전학 온 것을 환영했던 그 교장은 아연 절망에 빠졌다는 이야기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기능직은 중학교로 직장을 옮겼다. 거기서도 놀란 것은 중학교 학생들의 스승에 대한 자세다. 어떤 학생은 종례시간에 담임교사의 말이 길어지자 큰 소리고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선생님 잔소리가 왜 그렇게 길어요! 빨리 끝내줘요!” 했다는 것이다. 공부도 제대로 못하면서 학교생활에 불량 끼가 많은 이 학생의 항변에 가까운 항의 아닌 항의를 들은 교사는 그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물론 이러한 사례는 그야말로 극단적인 극소수에 불과 할 것이라는 데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스승을 경시하는 풍토는 어제오늘도, 소수의 학교도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면서 전직 교직자로서 절망감에 빠지는 것이다. 최근 간혹 언론에 보도되는 뉴스 속에는 교사가 학생을 폭행했다는 보도가 눈에 띈다. 논평을 곁들인 이 뉴스 속에는 교사가 학생을 폭행했다는 내용을 시작으로 교사의 폭행 사실만 부각되기 일수다. 교사는 공자도 아니고 신도 아닌 평범한 사회인이다. 교사가 평범한 사회인과는 다른 그야말로 교육학, 심리학 등 전문직 교육을 받았다고 치자. 그러나 그들도 감정의 동물인 인간이다.

 

필자가 느끼는 최근의 교육계의 문제는 스승을 스승 같지 않게 아는 풍토가 아닌가 한다. 교육도 적당한 압력이 있어야 성공 할 수 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잘 해도 그만 못해도 그만인 학교사회에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옛날에는 ‘스승의 그림자도 함부로 밟지 않는다’고 했다. 필자가 권위주의 시대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매 한 대라도 잘못 때리면 문제될 것을 염려해 차라리 모르는 척 하는 것이 상책이다라는 풍토가 있다면 나라의 장래가 어떻게 되겠는가. 물론 교사도 변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변화가 요구되는 분야는 인간이야 어떻게 되던 ‘자식 기 안 죽인다’고 생각하는 편협 된 학부모의 의식이 더 급하지 않은가 생각된다.

 

/이강녕(전 전라북도 교육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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