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묵(군산여상고 교장)
늦가을 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걷노라니, 겨울이면 솔방울로 난로불을 붙이던 교실이 생각나는구나. 새내기 선생이 되어 79명의 너희들과 함께 했던 날들이 어쩌면 내 생의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바다가 보이는 학교에서 봄이면 보리 베기와 모내기에 동원되어 공부보다는 일을 더 많이 했고, 여름에는 퇴비증산에 동원되어 산으로 향하곤 했지. 무엇보다도 물리면 즉사하는 독사를 맨손으로 잡아서 나를 경악하게 하던 너희들, 솔방울 채취를 한답시고 흰 눈이 무릅까지 쌓인 산에서 토끼몰이를 하던 일이 지금도 생생하단다.
조금은 지루해 하던 수업시간에 코딱지 열심히 후비다가 들켜 코구멍에 백묵을 끼워 벌을 주어도 그저 마음 좋게 웃던 너희들이 이 가을, 너무나 보고 싶구나. 나의 풋내 나는 열정과 의욕으로 인해 조금은 고달팠을 너희들에게 이 지면을 빌려 용서를 구한단다. 사실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회초리였다는 것을...
33년이 꿈속 같이 지나가 버린 지금, 어느덧 장성하여 사회 곳곳에서 나라의 일꾼으로 일하고 있겠지? 빗자루 옆에 끼고 ‘피리 부는 사나이’를 연주하던 그 아이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첫 사랑, 나의 제자들아.
/임경묵(군산여상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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