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훈(한국소리문화전당 예술사업팀장)
예전에는 영화나 공연을 보러 가서 티켓을 사면 그 중 일정 금액이 문예진흥기금으로 징수된다는 문구가 뒷면에 써 있곤 했던 것을 기억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문화예술을 진흥하기 위한 기금을 정작 혜택을 받아야 할 문화예술 소비자로부터 염출한다는 비판 여론에 의해 2004년부터 문예진흥기금 모금 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문화예술위원회(구 문예진흥원)는 로또복권의 수익금(복권기금) 중 일부를 문예진흥기금의 대체 재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연간 1조원 정도의 복권기금 중 70%를 공익사업에 사용토록 규정된 복권기금법에 따라 7천억원 정도가 임대주택 건설 등 저소득층 주거안정 지원사업이나 국가유공자 및 각종 소외계층의 복지사업에 사용되는데, 통상 그 중 5% 정도가 문화예술 진흥을 위한 각종 사업 기금으로 사용된다. 문화소외계층의 문화복지 신장, 지역주민 생활밀착형 문화향유권 신장, 문화예술의 창의적 기반조성 등을 모토로 복권기금 예술사업이 시행되던 첫 해(2004년)에는 소외지역을 찾아가는 문화향수 프로그램, 사회취약계층 대상 문화예술 교육, 소외지역 공동체 문화환경 조성 등 문화복지 신장 사업에 165억원, 지방 문화원, 문예회관, 문화의집, 박물관, 미술관을 대상으로 하는 체험, 공연, 전시 프로그램 등 문화향유권 신장 사업에 229억원 등 총 440억원 정도가 복권기금 예술사업으로 지원되었고, 이후 매년 500억원 정도의 규모를 유지해오고 있다.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문예회관 건립 등 문화예술을 위한 하드웨어 구축에 많은 비용을 들이지만, 정작 그 공간들을 채우고 실질적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과 그것들을 조직하고 운영할 전문인력 등 소프트웨어 구축에는 인색한 상황에서 위와 같은 복권기금 예술사업은 문화시설 운영 활성화에 상당한 도움과 자극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또한 복권기금 예술사업 시행 첫 해부터 전국문예회관연합회에서 집행하는 지역 문화기반시설 활용 문예프로그램 지원 사업을 통해 우수공연 및 우수교육 프로그램 초청, 기획공연 및 예술교육 제작 등의 전액 및 일부 지원 혜택을 받아 왔다. 제한된 사업예산으로 인해 엄두를 내기 어려운 공연, 전시, 예술교육 프로그램 등 컨텐츠의 생산 및 저렴한 비용의 보급과 같은 공공 공연장의 책무를 수행하는 데 일조를 하는 셈이다. 실제로 규모가 작은 중소도시 및 군단위 문예회관들의 경우, 공공 공연장 운영의 책임을 모두 민간 예술단체에게 떠맡긴 채 시설 대관 위주로만 운영되는 사례가 많았는데, 복권기금 예술사업의 영향으로 기획공연 및 예술교육 보급이 점차 활성화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업 시행 첫 해 140억원 정도 규모로 시작된 지역 문예회관 활성화 사업 규모는 점차 줄어들어 올해는 절반 수준인 70억원 정도로 축소되었고, 내년에는 대선을 겨냥한 저소득층 주거안정 지원사업의 확대로 인해 사업 자체가 존폐의 기로를 헤매다가 겨우 반토막난 30억원 규모로 집행될 예정이다. 당연히, 기획공연 및 예술교육 제작 등 비용이 많이 들고 단기간에 효과가 나지 않는 사업들은 폐지되고 우수공연 프로그램 초청사업만이 명맥을 유지할 모양이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시급한데 한가하게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을 논하고 있느냐는 비판 앞에서 대선 후보 중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임기 내에 세계 몇 대 문화선진국에 진입하겠다는 식의 허황된 공약이 아니라, 급변하는 미래 환경에서 창조산업의 생산성과 가치를 예견하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모든 국민의 문화복지(풍요롭고 가치 있는 삶)를 위해 차분히 밑바닥에서부터 그 기반 조성을 위한 투자를 늘려가겠다고 당차게 주장하는 대선 공약과 미래형 지도자를 꿈꾸어 본다.
/박병훈(한국소리문화의전당 예술사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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