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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북한생활'

북한체제가 오래 되다보니 그들 생활은 우리 남한과 전혀 다른면들이 많다

 

예를 든다면 남한 젊은층에서 흔히 있는 연애가 없다. 김일성은 ‘남녀 칠세 부동석’이라하여 초등학교 입학때부터 남녀학생을 다른 학급으로 나누고 중고등학교는 아예 남학교와 여학교로 나누었다.

 

그런데 1960년대 초 외국유학을 다녀온 교육성 간부들이 북한도 유럽처럼 남녀공학을 하자고 제안을 했지만 김일성은 이에 아랑곳없이 이런 제안을 한 간부들을 몰아냈다고 한다. 그러나 김정일의 집권후 부터 남녀공학이 실시되었으나 남녀의 자유스런 연애가 허락된 것은 아니다. 북한에서는 대학에 다니는 동안 연애할수 없다. 만약 이런 사실이 발각되면 청년 동맹회의에서 호된 비판을 받은후 대학에서 추방된다.

 

이런면도 남한적 시각에서 보면 엄청난 인권유린일 것이다. 북한도 하나의 사회이기 때문에 선망의 직업이 있을수 있다. 그 선망의 직업은 북한식 표현으로 하면 무역일꾼과 외교관이다. 이들은 북한주민들이 평생 만질수 없는 달러를 만질수도 있고 그 달러로 외화상점에서 고급물건도 살수 있다.

 

그래서 평양 외국어 대학과 김일성 대학의 외국어 학부는 자기학교 교수들을 각 도(道)의 외국어 학교에 파견하여 입학생을 우선 선발한다. 이때 소위 학부모간의 치열한 뇌물공세가 펼쳐진다. 어떤 방법으로든지 초보 선발에 들어야만이 대외사업에서 일할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북한의 결혼식은 남한과 대조적으로 아주 조촐하다. 김일성이 식량낭비를 막는다고 잔치에 참가하는 인원까지도 제한을 두어 스무명으로 정해놓았다. 신랑 신부 들러리도 각각 한명씩이다.결혼식에 초대받은 사람도 도토리로 만든 소주 한두잔 마시고 냉면 한그릇 먹으면 피로연은 끝이다. 1993년에 북한으로 돌아간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는 북한에서는 영웅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사상이 투철했다기 보다는 북한이 남파 공작원의 가족에게 최상의 대우를 해주는 이점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한마디로 북한에 남겨진 자기 가족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한것이었다. 우리는 북한의 실상에 대해 너무도 빈약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 안타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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