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수필가)
꺼꾸리 아저씨. 지금 어느 하늘아래 계신지요?
이맘때면 다시 생각나는 당신의 얼굴입니다.
동란이 일어나고 다시 9.28수복이 된 뒤, 지리산 공비들이 밤이면 마을을 찾아왔었습니다. 그들은 자식 같이 아끼던 소를 끌고 갔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죄 없는 사람들을 산으로 데리고 가기도 했었습니다. 그 때, 꺼꾸리 아저씨도 함께 갔었습니다. 제 나이 열 살 때 이었으니까 그 모습이 잊혀질 리가 없습니다.
가난한 아저씨는 마을일을 도맡아 하셨습니다. 궂은일 마다하지 않고 무슨 일이든지 가리지 않고 일을 하셨던 부지런한 아저씨, 철없었던 우리들에게도 가끔 동무를 해주기도 해주셨던 기억이 가슴을 저리게 합니다. “아저씨, 왜 꺼꾸리라 했어요?”
그렇게 물으면 ‘뱃속에서 나올 때 거꾸로 나와서 그런단다.’ 하면서 함께 웃어 주었던 호박같이 둥글둥글하셨던 그 얼굴이 눈감으면 선합니다.
꺼꾸리 아저씨. 살아계신다면 미수의 연세이십니다. 죄도 없이 따라나섰으니 어딘가에 꼭 살아계시리라 믿어집니다. 풍편에라도 소식을 전해 주셨으면 합니다.
지난 여름 마을 뒤의 언덕 배기에 산딸기가 붉게 익고 있었습니다. 풀 지게 모서리에 꽂아 두었다가 ‘아가, 딸기다.’ 하시던 말씀, 다시 한 번 듣고 싶습니다.
/이규태(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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