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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마당] 숭례문, 유네스코 마이너스 유산으로 - 이흥재

이흥재(전주정보영상진흥원장)

문화유산은 인간의 지혜에 세월로 옷을 입힌 종합예술이다. 그래서 모든 나라들이 자기네 문화유산을 보물이라고 부르며 자랑한다. 얼마 전까지도 숭례문이 그러했다. 어찌되었건 이제 시커먼 잿더미로 웅크리고 있는 저 숭례문은 더불어 살아오던 우리들의 무지몽매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지혜와 인간의 무지가 극명하게 대비되는 현장이다.

 

서둘러 해체하여 새로 짓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뼈아프게 반성하고 문화유산의 참값을 새롭게 되새겨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새로 잘 만들어 세운다 해도 예전의 숭례문은 없어진 것이 사실이다. 국보대접을 받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복원이 아니고 새로 지을 숭례문이라면 그 곁에 똑같은 모습으로 짓되 현재 모습은 그대로 두는 것이 어떨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그리고 이를 유네스코의 마이너스유산으로 등록하면 어떨까.

 

세계문화유산가운데 마이너스유산이라는 것이 있다. 인간의 어리석은 모습이나 잔혹한 심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상징물을 인류공통의 마이너스 유산으로 지정하는 것이다. 이로서 두 번 다시 똑 같은 과오를 반복하지 않도록 참회하고 맹세하기 위하여 보존하는 것이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가 여기에 해당된다. 2차대전때 원폭이 투하된 원폭 돔도 세계유산 등록에 맞춰 보호법상의 조치로서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그 밖에도 흑인노예매매 중계항이던 세네갈의 고레섬도 마이너스 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는데 1980년대에 복원하여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원주민 노예화를 강요한 광산마을인 볼리비아의 포토시(Potosi) 시가지도 인권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대표적인 마이너스유산이다.

 

이 마이너스유산은 무엇을 뜻하는가. 평화와 인권이라고 하는 영원한 가치가 훼손된 것을 반성하고 교육하는 현장이다. 평화와 인권이라고 하는 가치관에 기초한 일종의 ‘새로운 문화재’인 것이다. 역사적 · 예술적 · 학술적 관점에서 당시의 모습을 말없는 웅변으로 가르쳐주는 것이다.

 

지금 모든 나라들은 물론 지방자치단체들도 다투어 전통문화를 생활화 · 산업화하고 있다. 이른바 문화유산을 활성화 자원으로 활용하는 문화시대이다 보니 없는 문화재는 하나하나가 더없이 소중하다. 그 가치는 가격으로 헤아릴 수도 없는(priceless price) 참값을 지닌다. 이런 시대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인간의 무지함을 회초리를 드는 심정으로 아프게 교육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러 마이너스유산 등록을 생각하게된 것이다.

 

만일 마이너스유산으로 현 상태를 유지한다면 잔해더미위에서 숭례문이 제 모습을 갖추고 위용을 자랑하는 모양이나 불타는 모습을 레이저 조명으로 엄숙하게 보여줄 수도 있겠다. 숭례문의 내부와 상하좌우의 모습을 다각도로 비춰줌으로서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새롭게 보여줄 수 있다. 우리들의 지혜와 무지를 극명하게 대비시켜 주는 또 다른 유산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 국보 1호의 비참한 모습을 그렇게 까발려 내놓아야 하는가에 생각이 미치면 가슴이 아프다. 더구나 처참한 지금 모습이 아무리 문화의 한 단면이라고는 하지만 마이너스 유산의 측면만을 강조하는 것은 너무 얄팍하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실제로 추진하기에는 몇 가지 신중하게 검토해야할 점들이 있다.

 

/이흥재(전주정보영상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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